책 제 목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 (철학,과학,예술,종교,신비)
저 자 : 채사장
출 판 사 : 한빛비즈 (2015. 2. 4)
읽 은 때 : 2016년 6월
한줄감상 : (★★★★★)
책소개
힘 있는 지식인이 되기 위한 필수 기초 교양!
어김없이 오늘도 우리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어제 본 드라마부터 시작되는 대화는 늘 같은 패턴이지만, 오늘따라 왜인지 시시한 기분이 든다. 곧 색다른 주제의 대화를 이어가려 하지만 금방 지식에 한계가 오는 듯하다. 문득 자신의 부족한 지식수준을 채우기 위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절감하지만, 금세 막막해져온다. 대체 어디서부터 얼마만큼 알아야 하는 걸까?
여기, 철학과 과학, 예술, 종교나 신비는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다며 애써 외면하던 사람들을 위한 책이 출간되었다.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팟캐스트 방송 《지대넓얕》을 책으로 재구성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으로, 역사부터 윤리까지의 방대한 영역을 다루면서도 각 분야의 구조적 연계성을 고려하여 출간된 지 열흘 만에 큰 화제를 모았던 전편에 이은 후속이다.
저자는 철학·과학·예술·종교·신비의 전 과정을 하나의 천일야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거칠고 거대한 흐름을 꿰다보면, 그 과정에서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를 중심으로 구조화된 진리에 대한 세 가지 견해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찾으며 의미를 갖는다. 책을 덮는 순간, 현실너머의 진리에 대해 당당한 지적 목소리를 내는 진짜 지식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채사장은 정보가 폐품처럼 쌓여가는 시대다.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의 과잉이 사람의 행동을 제약할 정도다. 그래서 가게를 열었다. 널려 있는 정보들 중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가장 가치 있는 지식만을 선별해서 쉽고 단순하게 손질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진열했다. 저자 채사장은 새롭게 오픈한 지식 가게의 사장이다.
성균관대에서 공부했으며 학창시절 내내 하루 한 권의 책을 읽을 정도로 지독하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문학과 철학, 종교부터 서양미술과 현대물리학을 거쳐 역사, 사회, 경제에 이르는 다양한 지적편력은 오늘 지식가게를 오픈할 자양분이 되었다.
현재는 글쓰기와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넓고 얕은 지식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팟캐스트 [지대넓얕] 진행자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나의 감상
지대넓얕 1권에 감동받아서 2권도 바로 읽게 되었다.
2권은 철학,과학,예술,종교,신비 편으로 또한 새로운 사실들, 또는 기존에 막연히 스쳐알고 있어서 정리가 안된 사실들을 잘 알게 되었다. 특히, 종교부분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크리스찬이 아닌 나로서는 한번도 성경쪽을 접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 책으로 그 분야에 조금은 접근하게 되었다.
책 내용
0. 진리
진리란 무엇인가? 절대적이고 보편적이며 불변하는 것
진리에 대한 태도로 있다는 절대주의라고 하며, 진리가 없다고 보는 입장을 상대주의라고 한다. 진리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인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될 것이다. 또한, 모르겠다는 답변도 가능한데 이를 불가지론이라고 부른다. 불가지론은 인간의 감각을 뛰어넘는 존재나 진리와 같은 초월적인 본질은 결코 알 수 없다는 견해다. 또한, 진리에 대한 태도로 상관없다는 태도는 당장 써먹을 수도 없는 진리는 꺼지라고 해라는 입장으로 실용주의라고 한다. 예를 들어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신의 개념이 나에게 주는 영향이 좋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천국이 있다고 믿고 있기에, 나를 괴롭히는 김부장이 언젠가는 죽어서 벌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면, 천국의 의미는 이미 충분하다. 오늘날 한국은 철학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극단화된 미국식 실용주의가 완벽하게 장악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진리의 역사 : 자연신에서 포스트모던까지
원시(자연신) => 고대(신화) => 중세(유일신) => 근대(이성)
결국 근대에 이르러 진리의 왕좌는 이성이 차지했다. 이성은 구체적으로 3가지 근본적인 학문을 의미한다. 수학, 물리학, 철학이 그것이다.
하지만, 근대 합리성의 낙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근대는 매우 빠르게 붕괴되었다. 그원인은 외적으로는 세계대전과 산업화의 부작용이 내적으로는, 1)수학 : 불완전성 정리 2)물리학 : 불확정성 원리, 3)철학 : 인신론적 무정부주의라 할수 있다.
물리학 :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기술의 발전과 함꼐 점차 측정 가능해진 작은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거대한 세계의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자는 거리(s) = 속력(v) * 시간(t)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에 와서 과학자들은 소립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물리학의 기본은 특정 물체를 위치와 속도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립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기존의 물리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했다.
철학 : 파이어아벤트의 인신론적 무정부주의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는 천동설을 부인하고 태양을 우주의 중심으로 둔 것은 어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경험적 자료들을 종합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단순히 그렇게 하는 것이 행성들의 공전이 더 단순하고 예쁘게 표현되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파이어아벤트에게 과학은 신화나 점성술, 미신에 비해 더 우월한 방법론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네 멋대로 해라!”라고 외친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던이 중세와 근대를 비판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중세와 근대의 이분법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가치가 다른 가치를 억압하는 폭력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포스트모던은 이분법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한다. 세계를 강압적으로 둘로 쪼갤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들을 인정하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은 1960년대를 휩쓴 문화운동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실천적 운동이었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여성운동, 인종차별 철폐, 학생운동 등의 정치, 사회운동과 함께 회화, 사진, 미디어, 패션에 이르는 예술, 문화적 운동을 동반했다.
1. 철학
세가지 중심개념 :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
회의주의는 단일한 진리를 부정하는 면에서 상대주의와 유사하지만, 더 극단적으로 인간이 진리에 도달할 방법 자체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고대철학 : 소피스트, 소크라테스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시작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자연철학자 소피스트로부터 시작한다. 우선 자연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에 살던 사람들로 이들은 세계의 본질에 대해서 물었다. 구체적으로 눈앞에 놓인 사물들, 의자, 책상, 연필, 침대처럼 직접적으로 보이는 세계를 철학자들은 현상이라고 부른다. 반면, 이들의 본래 기원인 나무처럼 개별 존재자의 공통 속성은 본질이라고 부른다.
절대주의적 측면을 갖는 자연철학자 이후 등장한 소피스트들은 상대주의와 회의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세계 각 지역에서 모인 지혜로운 사람들의 집단으로 대표적 인물로 프로타고라스가 있다. 기원전 5세기 활동했던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로, 진리가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회의적인 관점을 잘 드러낸다.
소피스트들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인물이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의 상대주의와 회의주의 입장을 비판하고 진리의 절대적인 토대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과의 문답법을 통해 누구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지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질문과 답을 통해 진리에 다가가는 방법을산파법이라고 한다. 절대주의 사상은 소크라테스트의 제자 플라톤에게 이어졌다.
플라톤의 이데아 : (본질(이데아) => 현상(그림자)) 플라톤은 본질적이고 영원한 이데아 세계를 제시함으로써 절대주의 철학의 시조가 되었다. 서구 철학 전통의 거대한 축을 담당하는 절대주의는 모두 변형된 형태의 이데아 사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스승의 생각에 불만이 있었다. 플라톤이 절대적인 하늘 위의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하는 땅 위의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보편적인 지식이나 초월적인 관점은 어느정도 인정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현실의 존재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는 실체가 없는 이데아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했다. 세계에 존재하는 개체들을 질료와 형상이라는 개념으로 구분해서 파악했다. 질료는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재료로, 가능성의 상태다. 예를 들면 찰흙은 질료다. 다음으로 형상은 질료를 통해 만들어지는 실현의 상태로 찰흙그릇은 형상이고 현실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은 물질적인 질료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플라톤이 물질적 기반이 필요없는 이데아에서부터 세계를 이해했던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서구 자연과학과 경험주의 철학의 기원이 되며, 플라톤과 함꼐 서구 철학의 양대산맥으로 위치한다.
중세철학 : 교부철학, 스콜라철학
교부철학 : 이데아 세계의 궁극적 근원은 일자(一者)에 가서 닿는다. 일자로부터 세계가 분화되어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리스도교의 유일신 사상에 쉽게 대응할 수 있었으며, 원시적인 그리스도교가 스스로의 사상적 체계를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현대철학의 문을 연 니체는 그리스도교가 대중을 위한 플라톤주의에 다름 아님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4-5세기 아우구스티누스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인물로, 중세 기독사상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스콜라철학 : 교부철학의 뒤를 잇는 그리스도교 철학의 흐름으로 9세기부터 중세가 무너지는 17세기 까지로 보편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이 얼토당토않은 질문이 중세 그리스도교 철학을 이끌었다.
근대철학 : 데카르트(합리론), 베이컨(경험론), 칸트(종합), 니체
근대철학의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논쟁으로 변형된다.
여기서 잠시 철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 다음 근대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자. 존재론이‘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라면, 인식론은‘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존재론은 ...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그의 답변은 있다와 없다로 나타날 수 있을것이고, 인식론은 ...을 어떻게 아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그의 답변은 이성을 통해 경험을 통해로 귀결될수 있을 것이다.
고대에서 중세까지는 존재론이 중심이었다면 근대철학에와서는 인식론이 중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인식론의 두 측면으로 합리론과 경험론이 있다.
합리론은 개별적으로 관찰되는 개체보다는 변하지 않는 수학적이고 관념적인 이성을 중요시했다. 이에 반해, 경험론은 역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 세계의 개체를 관찰하고 탐구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고대-중세 : 존재론
근대 이후 : 인식론 : 합리론(데카르트), 경험론(베이컨)
합리론 – 데카르트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방향 전환한 대표적 인물이 데카르트다. 데카르트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확고한 진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절대적인 진리를 찾는 방법으로, 그는 반대로 모은 것을 의심해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의심하다 보면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절대적 진리가 발견된다면 그때부터 이 단단한 기반을 토대로 모든 학문 체계를 재정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카르트의 방법을‘방법적 회의’라고 한다.
결국 데카르트는 어떠한 극단적인 가정으로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결국 나는 생각한다는 의심할 수 없고, 나는 존재한다는 것도 의심할 수 없는 필연적으로 증명된다. 데카르트는 나를 증명했고, 내 관념 속에서 발견되는 완전함이라는 개념을 근거로 외부에 신이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제 세계를 증명할 차례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신은 개념상 완벽하기 때문에 이 겨냄 안에는 성실함도 포함될 것이다. 신의 개념상 신은 방만하거나 불성실하거나 나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성실한 신은 나를 속이지 않고 이 세계를 존재하게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이 있다면 세계는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차례로 나, 신, 세계를 증명했다.
무신론자이거나 신자유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도대체 이게 무슨 증명인가 싶겠지만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를 통해 나와 세계를 증명하는 과정은 그 내용보다는 형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데카르트 이전까지의 시대는 신 중심의 중세였다. 당시에는 신이 중요할 뿐, 인간은 가치나 중요성을 갖지 않았다. 인간과 현실 세계는 신의 피조물로서, 인간의 존재 의미는 신으로부터 도출되었다. 신이 제1원인자이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존재가 인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사유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모든 세계의 증명을 시작한다.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나의 의심과 회의를 통해서이고, 나의 존재 증명이 신과 세계의 존재 증명보다 앞선다. 즉, 인간의 이성이 우선이고, 신과 세계는 이로부터 파생되어 증명되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아직도 신을 언급함에도 불구하고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험론 - 베이컨
경험론의 대표적인 인물은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베이컨 : 기존학문 비판(우상론 : 네가지 우상) => 새학문방법(귀납법)
우선 종족의 우상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편견으로 꽃이 웃는다거나 새들이 노래한다라는 문장이 이에 해당된다.
동굴의 우상은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동굴을 갖고 있고, 동굴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동안은 외부의 실제 빛이 아니라 동굴의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제한된 빛으로 동굴 안을 본다. 이러한 주관성이 극복될 때 편견없는 학문탐구가 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시장의 우상은 잘못된 언어사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보통 주어에 들어가는 단어가 실제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신, 악마, 요정, 도깨비 등의 단어가 존재하면 실제로 그에 부합되는 대상이 있을 거라고 여기는 것이다.
극장의 우상은 권위에 수긍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으로, 사람들은 미신, 신학, 철학 등 기존에 전통으로 확립되어 있는 이론들의 권위에 의지하려는 태도를 갖는다는 것이다.
베이컨은 네가지 우상을 통해 기존 학문 체계를 비판한 후 그에 대한 대안으로 새로운 학문의 방법인 귀납법을 제시했다.
연역법은 보편에 대하여만 알면 무수히 많은 개체의 속성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도대체 보편에 대한 지식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건 어쩔 수 없이 특수한 개별자를 일일이 확인해서 알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를 지적하며 등장한 사람이 경험론자 베이컨이다.
베이컨은 개별적인 특수를 종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보편명제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베이컨의 경험주의는 자연과학이 발전하는데 철학적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관념론 – 칸트
근대 합리론과 경험론은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한 탐구였다. 합리론은 보편적 이성을, 경험론은 개별적 경험을 그 방법으로 제시했다. 이 두 제시를 종합함으로써 소모적인 논쟁을 끝마친 인물이 칸트다.
칸트는 2000년 넘게 이어져오던 거대한 철학적 논쟁을 종결지은 것이다. 18세기에 활동했던 이 경이적인 인물의 업적은 관념론으로 알려져 있다.
철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의식에 대한 탐구가 진행되면서 내 눈앞에 있는 세계가 실제 세계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점차 확산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예민하게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관념론이 실제 세상을 더 정확히 묘사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세계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칸트의 관념론이 도움이 될 것이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 손 위의 사과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손은, 당신 눈앞의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현명한 답은 이것이다. 사과와 세계는 내 머릿속에 있다. 나는 내 머릿속의 이미지를 보고 있다. 본다는 것은 외부의 사물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머릿소에서 해석된 그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칸트의 관념론을 이해하기 위한 준비는 끝났다. 천천히 더 알아보자.
칸트에 따르면 결국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상뿐이고, 사물의 실체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이미로서의 사과일 뿐,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실제 사과는 결코 감각할 수 없다. 여기까지 들으면 우리는 실제의 경험 세계를 포기하고 나의 관념 속에 갇힌 것만 같ᄃᆞ.
하지만 칸트는 이렇게 주관주의로 빠질 위험에 처한 자신의 이론을 현명하게 구제해냈다. 여기에 칸트의 혁신적인 면이 있다. 답부터 말하면, 칸트는 모두의 사고 구조가 보편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세계가 개인의 주관에 함몰되는 문제를 극복했다. 즉, 우리 각자가 자신의 머릿속 세상인 현상 세계만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현상세계를 드러내는 사고의 구조 혹은 뇌의 형식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사실은 유사한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의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드러나는 세계도 동일하다.
결론적으로 진리는 세계밖의 경험에서 혹은 내 안의 주관적 이성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 합리론자들이 말하는 이성은 주관적인 독단에 빠지기 쉬워서 위험하고, 경험론자들이 말하는 경험은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으니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사고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고의 형식을 분석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칸트는 자신의 방법이 주관과 객관을 동시에 구제함으로써 진리를 드러냈음을 자신한 것이다. 그는 세상을 판단하고 있는 주체의 판단 구조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객관적 경험에만 관심을 갖는 경험론과 주관적 이성에만 관심을 갖는 합리론을 종합해냈다.
이후 칸트의 관념론은 헤겔에 이르러 극단적으로 완성되고, 헤겔의 철학은 마르크스로 이어진다.
니체
니체의 별명은 망치를 든 철학자로 별명에 맞게 그는 근대의 서구 문화 전체를 전복하려고 했다. 니체는 그리스도교 전통에 기반한 윤리관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좋음과 선은 다르다. 예를 들어 명품 핸드백은 좋은 것이지만 선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싸구려 핸드백은 나쁜 것이지만, 악한 것은 아니다. 니체도 이를 구분해서 사용했다.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는 선악의 구분대신 좋음과 나쁨의 구분만이 있었다. 좋은 것은 주인의 생활방식이고, 나쁜 것은 노예의 생활방식이다.
순종적이고 겸손하고 착해야 하는 계급은 노예계급이다. 그런데 니체는 이러한 노예 도덕의 본질이 분노와 원한임을 밝혔다. 주인이 되지 못하고 주인에게 현실적으로 복수하지 못하는 억눌린 노예들의 원한이 그들의 도덕의 본질인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노예도덕을 원한의 도덕이라고 생각했으며, 건장하지 못한 도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바로 이 원한의 도덕을 근본으로 한다고 주장했다.
고대 이집트부터 로마 시기의 노예는 구체적으로 유대민족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도덕은 원한으로 시작되고 부자연스러운 형태를 띈다. 주인에 대한 그들의 원한은 점차 왜곡되고 이상화되어 결국에는 독특한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재탄생한다. 즉 노예들은 자신들이 가진 도덕인 겸손, 근면, 순종, 순응 등을 선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뒤바꾼다. 그리고 주인의 진취성, 결단력, 창조력 등은 악이라는 개념으로 가치 절하한다. 마음속으로 소심하게 복수하는 것이다. 결국 유대인들에 의해 좋음은 악이 되고 나쁨은 선이 되는 가치 전도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에게서 발생한 그리스도교가 이러한 선과 악의 개념을 공고히 했다는 데 있다. 그리스도교는 유럽 사회 전체를 장악하면서 유럽인들에게 선과 악이라는 원한의 도덕관을 뿌리 깊게 심어놓았다. 무엇인가 억눌리고 금욕적이며 겸손하고 희생하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로 유럽이 병들어가고 있다고 니체는 판단했다. 그에 따르면, 주인의 도덕은 자신에 대한 무한한 긍정에서 출발하는 건강한 도덕이지만, 노예의 도덕은 타인에 대한 원한에서 비롯된 병은 도덕이다.
병든 사회에 대한 니체의 처방은 그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제사된 초인사상과 영원회귀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영원회귀는 같은 우주가 무한히 처음으로 동일하게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니체 사상의 주요개념이다. 쉽게 말해서 영원회귀에 따르면 나는 나의 삶이 끝나고 정확하게 나의 삶을 그대로 다시 살게 된다. 이것은 힌두교나 불교에서의 윤회와는 다르다. 윤회는 다른 존재로 환생하는 것이지만, 영원회귀는 지금 자신의 삶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다. 따라서,그는 먼 미래의 불확실한 목표를 향해 지금 이 순간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금 이 순간을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은 내 평생의 삶보다 훨씬 긴, 무한히 반복될 영원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비밀을 깨닫게 된 존재는 지금까지의 삶을 초월한 초인의 모습에 한 걸음 다가선다.
현대철학 :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실존주의(사르트르)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요하게 언급했으나 그 이후에 다뤄지지 않은 존재라는 무거운 주제를 20세기에 다시 꺼내 들었다. 하이데거는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존재가 고대 그리스 이후로는 한번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철하게서 가장 중요한 논점이 존재와 존재자의 구분에 있다.
눈 앞의 존재자들(의자, 책상, 컵, 사과)는 도대체 어떻게 존재하는가? 바로 나의 의식의 장에서 드러난다. 의식의 열린 장에서 존재자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존재자들이 드러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의식의 장을 하이데거의 용어로 존재, 비은폐성, 진라라고 부를 수 있다. 의식의 열린 장이 존재자를 존재자이게 하는 존재인 것이다.
사과(존재자)가 있다(존재)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가 존재에 대해서 탐구했다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에 대해서 탐구했다. 기존의 철학, 종교, 윤리,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신, 영혼, 자아, 도덕은 실제 그것과 대응하는 것이 없어서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런데도 실제 세계와 대응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해왔기 때문에 철학은 복잡하고 고통스러워졌다. 이제 철학자의 의무는 잘못된 언어 사용 방식을 지적하고 이를 해소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끝을 맺는다. 세계와 대응하지 않는 언어는 말할 수 없고 보여줄 수만 있다.
실존주의(사르트르)
인간은 의자나 돼지처럼 단일한 본질을 갖지 않는다. 이렇게 고정된 본질을 갖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존재자에 대한 이름이 실존이다. 인간은 실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규정되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을 억압적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집단들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 사회, 가족, 관습, 도덕, 종교, 철학, 과학은 우리를 본질로 규정하려고 한다. 우리는 국민으로 아들롸 딸로 피조물로 회사원으로 규정되어 왔고 스스로 그것이 자신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나에게 뒤집어씌워진 본질을 하나씩 벗어내고 어떠한 규정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나에게는 단지 세가지만이 남게 된다. 그것은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규정되지 않고 절대적으로 자유로우며 실존하는 존재다.
2. 과학
과학의 역사 : 절대주의에 대한 낙관
고대과학 :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중세과학 : 과학의 잠복기와 오컴
근대과학 : 갈리레이의 지동설 그리고 수학적 근거
중세말이 되어서야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등장과 함께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탐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동설을 처음 공론화한 인물은 코페르니쿠스이지만 지동설을 실제 과학적으로 주장한 사람은 갈릴레이가 된다. 16-17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그는 경험적 관찰 자료와 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지동설을 지지한다.
수학이 이렇게 항상 유의미하게 진리를 내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이 동어반복이기 때문에 항상 진리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충무공은 이순신이다. 백묵은 흰 분필이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문장은 다른 문장들과는 달리 술어의 정보가 주어의 정보와 같다. 이 문장들은 실제로 확인해보지 않아도 진리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명제를 간단하게 기호로 표시하면 가=가 정도가 된다. 가는 가다는 논리적으로 언제나 참일 수 밖에 없다.
데카르트 이전에는 수학의 두 분야인 기하학과 대수학이 따로 발전해가는 학문이었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이를 연결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그가 고안해낸 방법은 좌표평면이다. 즉 동그라미, 삼각형, 직선 등 기하학의 대상이 숫자와 문자로 표현되었다. 해석기가학의 탄생이 의미하는 것은 기하학이 된 자연세계가 문자와 숫자의 방정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류는 이제 복잡하고 다양한 자연 세계를 수학의 언어로 온전히 서술할 수 있게 되었다.
뉴턴 : 존재에서 관계로, 물리학의 확장
자연과학의 수학적 적용은 뉴턴에 이르러 절정을 맞이했다. 갈릴레이가 죽은 해인 1642년 영국에서 태어난 뉴턴은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였다.
뉴턴의 업적은 중력을 보편적인 힘인 만유인력으로 정의하고 이것이 달이나 다른 천체에까지 작용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뉴턴이 관심을 가진 만유인력이나 힘에 대한 역학은 기존의 과학이 가지고 있던 관심사를 확장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갈릴레이나 케플러가 기하학을 통해서 자연적 사물들을 수학화했다면 뉴턴은 사물들 간의 보이지 않는 힘을 수학적으로 정리해낸 것이다. 철학적으로 표현해보자면 기존의 물리학이 존재자에 관심을 갖고 그 존재자를 수학으로 표현하려 했다면, 뉴턴은 특정 존재자와 다른 존재자가 맺고 있는 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뉴턴으로 인해 물리학은 존재부터 관계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수학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뉴턴은 자연이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거대한 기계라고 선언했다. 물리학의 모든 문제는 이제 해결되었다.
아이슈타인 :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
19세기말이 되면서 전자기파로서 빛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1887년에 마이컬슨과 몰 리가 지구의 운동과는 무관하게 빛의 속도가 항상 일정하게 관측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빛의 속도는 항상 초속 30만킬로미터로 고정되어 있다. 즉, 빛은 관찰자 상태와는 무관하게 언제나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속도를 갖는다.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빛과 동일한 속도로 날아가면서 빛을 추적한다면 빛은 어떻게 보일까? 빛이 날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일까? 그렇지 않다. 내가 빛의 속도로 빛을 쫓는다고 해도 나를 기준으로 빛은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 반면 외부에서 나를 관찰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나와 빛이 나란하게 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빛에 와서 우리의 속도 개념과 상식은 무너진다.
20세기 아이슈타인은 이러한 빛의 성질을 토대로 놀라운 결론을 도출해낸다.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알려진 이 이론은 우선 두가지를 전제로 한다.
하나는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킬로미터로 절대적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이렇게 빛의 속도가 고정되어 측정된다면 시간과 공간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물리학의 가장 기초적인 함수인 거리 = 속도 * 시간에서 속도가 고정된다면 나머지 변수인 거리와 시간이 조정되어야만 한다.
갑과 을을 통해 실험해 보자. 갑은 우주선에 계속 타고 있다. 을은 달에서 우주선을 보고 있다. 둘 모두 이번에는 시계를 들고 있다. 시계는 광자시계로 단순한 원리로 시간을 잰다. 정육면체 모양의 시계 윗면에서 출발한 광자가 바닥에 충돌한 후 윗면으로 다시 올라올 때 1초가 흐른다고 가정하자. 을은 우주선 속의 갑의 시계와 자신의 시계를 함께 보고 있다. 우주선이 빠르게 움직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빛의 속도는 일정하므로 달위에 서 있는 을의 시계속 광자가 윗면에서 바닥에 닿고 다시 윗면으로 이동하는 동안, 날아가는 갑의 시계속 광자는 그 만큼의 거리를 가지 못한다. 을의 1초가 흐르는 동안 갑은 아직 1초가 흐르지 않는 것이다. 즉 속도가 고정되면 시간이나 공간을 조정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1) 빛의 속도에 근접할수록 시간이 느려진다. 2) 빛의 속도에 근접할수록 길이가 짧아진다. 3) 빛의 속도에 근접할수록 질량이 증가한다.
물론, 상대성이론에서는 관측자에 ᄄᆞ라 시공간이 상대적이므로, 갑 당사자는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기간과 길의 질량에 대한 변화값은 이를 관찰하고 있는 외부의 을에 의해서 측정된다.
일반상대성이론
1905년에 발표된 특수 상대성이론 이후 십여년이 지난 1916년 아이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다. 특수 상대성 이론이 빛에 대한 이론이었다고 한다면, 일반상대성 이론은 중력에 대한 이론이라고 할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력현상이 실제로 공간의 휘어짐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중력이 질량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의 곡률이라는 아이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1919년 개기일식 중 멀리서 오는 별빛이 태양 주변을 지나면서 구부러지는 현상이 관측되면서 증명되었고, 학계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빛은 질량이 없으므로 뉴턴역학에 따르면 중력의 영향을 받는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빛이 중력에 의해서 휘어졌다는 것은 중력이 특정한 힘이 아니라 공간의 휘어짐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현대과학 : 결정되지 않은 우주의 미래
물리학에서 상대주의적 성향을 띄는 견해를 찾는다면 그것은 아이슈타인 이후 현대의 양자역학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양자역학의 결과 역시 수학적으로 정리되고 예측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양자역학의 결과값은 확률로만 예측될 뿐 확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양자역학의 세계는 비결정론적 세계다. 우주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과학철학 : 과학은 진보하지 않는다.
우리가 과학적 믿음에 찬물을 끼얹고, 과학적 진보라는 것은 허구이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검증을 통해서 과학이 발전한 것이 아님을 밝힌 인물이 토마스 쿠니다.
쿤에 의하면 대중의 기대와는 달리 과학의 발전은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다. 우리는 과학이 실험과 관찰 그리고 수학적 적용에 따른 논리적 진보일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쿤이 과학의 역사를 면밀히 살펴본 결과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쿤에 의하면 과학혁명은 과학적이지 않고 정치적 권력 투쟁의 결과다. 과학의 역사는 점진적인 진보의 역사가 아니라, 혁명적인 단절의 역사였다. 이는 진화론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과도 유사하다. 대중적으로 이해되는 진화론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개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로 다윈의 진화개념은 점진적인 발전이 아니라, 당시 그 환경에 부합하는 수평적인 변화일 뿐이다. 그래서 진화론에 대한 비판중에 고릴라도 수십만년 후 인간이 되는가라는 비판은 진화에 대한 개념의 오해에서 기반한 질문이 된다. 이 질문은 고릴라보다 인간이 더 발전된 존재이고, 진화란 발전된 방향으로 진보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실제 다윈의 진화개념은 발전이 아니다. 고릴라도 수십만년 후에는 진화할 테지만 그것은 예측하지 힘든 방식으로의 변화일 것이고, 인간도 수십만년 후에 다른 방향으로 진보가 아닌 진화를 하게 될 것이다.
3. 예술
예술의 구분
시간의 형식을 따르는 예술은 문학, 음악, 무용이고, 공간의 형식을 따르는 예술은 회화, 조각, 건축이다.
예술의 진리에 대한 입장 : 어떤 그림이 훌룡한가
고대미술 :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고대 그리스의 미술작품은 조각이나 건축에서 성과가 컸다. 파르테논 신전이나 에렉테움 신전이 이를 대표한다.
그리스 미술이 한층 더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대제국 건설이었다.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건설된 대제국의 문화를 헬레니즘이라고 한다. 헬레니즘 미술은 그리스의 조화와 균형을 기반으로 할 뿐 아니라 동양적인 특성을 반영했다. 라오콘, 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가 대표적이다. 대제국의 헬레니즘 문화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33살에 요절하면서 와해되어갔고, 결국 신생 제국으로 떠오르던 로마에 흡수되었다.
이탈리아 반도의 작은 마을에서 출발한 로마는 1세기 무렵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을 지배했다. 실제로 당시 로마 면적은 현재 미국의 2/3에 해당한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정복에 성공함으로써, 평소에 갖고 있었던 그리스 미술에 대한 동경을 현실에서 단번에 접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콜로세움, 판테온 신전등이 유명하다.
중세미술 : 초기그리스도교미술, 로마네스크, 고딕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추구했던 그리스로마 미술은 중세가 되면서 자취를 감춘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우선 중세초기 500여년간 전쟁돠 약탈이 반복되는 정치적 혼란기였고, 내적인 측면으로 그리스도교의 탄생배경과 관련된다.
11세기 후반 그리스도교가 유럽전역을 장악하자 거대한 교회건축이 빈번해지고 이에 따라 건축술과 예술도 함께 발전한다. 당시 건축과 미술양식을 로마네스크라고 한다. 로마풍정도가 되겠다. 이탈리아의 피사 대성당이 유명하다.
11세기-12세기 2백여년동안 로마네스크 양식이 유행했다면 이후 2백년간은 고딕양식이 유행했다. 벽의 두께는 얇아지고 높고 아찔한 철탑들이 들어섰다. 그래서 건물은 한결 가벼워 보인다. 벽이 얇아지면서 큰 창문을 낼수 있게 되었고, 창을 막은 유리에 장식을 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크고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파리의 사르트로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한국의 명동성당 등이 고딕양식이다.
중세미술을 종합해보면, 신과 교회에 종속되고, 교회 건축의 발전과 함께한다고 말할수 있겠다.
르네상스 미술 :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교회와 유일신에 대항하는 인간적 가치가 필요했던 부르조아들은 고대 사회로 관심을 돌렸고, 고대 문화들을 재탐색하는 분위기가 학계와 예술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를 르네상스라고 한다. 르네상스는 부활, 다시 태어남을 뜻하는데 여기서의 부활과 재생은 고대문화의 부활과 재생을 말하며, 동시에 인간적 가치의 부활과 재생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이 문예부흥운동은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최근에는 르네상스를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르네상스를 근대의 시작보다는 중세의 마지막에 등장한 문화로 평가하고자 하는 견해가 그것이다. 우리는 다만 중세와 근대 사이에 르네상스가 있어서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변화가 시도되었다는 정도만 기억하면 되겠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15세기에서 16세기초까지 활약했다. 그는 공기원근법의 이론을 정립해서 2차원의 평면에 깊이감을 강화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모나리자가 있다.
또한, 이외에 미켈란젤로가 있다. 그는 주로 조각에 집중했다. 피에타, 다비드상, 모세상, 최후의 심판 등 작품이 있다.
14-16세기 르네상스 미술이후 17-18세기는 각각 바로크와 로코코의 시대였다. 르네상스 미술이 이성적 측면이 강했다면, 바로크와 로코코는 감성에 호소하는 예술 사조였다. 바로크는 다소 무겁고 어두운 반면 로코코는 밝고 가볍다는 차이가 있긴하다.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는 루베슨로 십자가에서 내려지심이란 작품을 남겼고, 우리가 영화에서 프랑스의 화려하고 장식이 많으며 향락적인 사교계를 흔히 볼수 있는데, 그 때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는 시기가 로코코 시대라 할수 있다. 대표적인 화가로 부셰의 비너스의 화장이 있다.
초기 근대미술 :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앵그르 그랑 오달리스크
낭만주의
창작자의 주관과 표현을 강조하고 자유로운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그림의 대상으로 하는 낭만주의 미술을 감서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바로크, 로코코와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화려하고 장식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화가의 강렬한 내면을 외부세계에 투영한다는 측면이 강했다.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등이 있다.
후기 근대미술 : 사실주의, 인상주의
사실주의에서 사실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똑같이 그려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릴 대상을 선정하는데 있어서의 사실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우리의 남루한 현실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사실이 되는 것이다. 사실주의 미술은 진짜 사실을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노동자의 남루한 삶이나, 옆집의 가난한 이웃, 노동의 고됨을 가감없이 묘사했다.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 아이작 브로드스키 노동자의 붉은 군대를 향한 연설중인 레닌 등
낭만주의의 비현실적이고 과장적인 화풍을 거부하고 일상적인 삶과 자연을 그려내려고 한 인상주의는, 사실주의가 민중의 가난과 노동이라는 정치, 경제적인 측면의 소재를 채택함으로써 이념적인 측면이 드러난다면, 인상주의는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가감없이 그려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하고자 했던 일은 개념이나 이념을 걷어내고 순수하게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흰색 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태양 아래서 이리저리 순간적으로 반짝이고 변화하는 컵 표면의 색깔을 그리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의 컵의 인상을 빠른 붓놀림으로 화폭에 담으려 한 것이다. 인상주의의 대표적 인물은 모네, 마네, 르누아르, 드가, 로댕 등이 있다.
이들은 보통 전기 인상주의로 불린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는 고흐, 고갱, 세잔 등이 있다.
세잔의 정물화가 관점이 어긋나 보이는 것은 사물 그 자체의 본질로, 그림의 주인공은 사물이 본질이 되므로, 생각해보면 사물은 관찰자의 시선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세잔의 이러한 선구적인 작업은 후에 현대 입체파와 추상미술을 탄생하게 함으로써 현대 미술이 시작하는 계기를 알린다.
근대 미술을 정리해 보면, 초기와 후기로 나뉜다. 초기는 이성을 중시하는 신고전주의와 감성을 강조하는 낭만주의 대결이었고, 후기에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등장하며,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현대미술 : 입체파와 추상미술
후기 인상주의 이후 20세기가 되면서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미술형식과 예술 철학들이 다채롭게 발생한다. 고흐와 고갱이 원색적인 색채와 화가 내면의 강렬한 정신은 각각 야수파와 독일의 표현주의로 발전하고, 세잔의 사물을 분석하고 하나의 화폭에 두 개 이상의 시점을 한번에 담아내는 표현은 입체파로 계승된다.
큐비즘이라고도 부른 입체파는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신 운동으로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세잔이 사물의 기하학적 분석과 다양한 시점의 적용을 도입한 이래로,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 큐비즘이다.
대표적 입체파 작가로 피카소가 있다.
추상미술로는 칸딘스키의 노랑 빨강 파랑이 있다.
오늘날의 미술 : 예술의 주체를 흔들다.
잭슨 폴락의 액션페인팅
4. 종교
종교의 구분 : 절대적 유일신교와 상대적 다신교
세계3대 종교라 하면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말한다. 이 세 종교를 믿는 인구가 전체 인류의 2/3이상이다. 이 3대 종교는 성서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구분된다. 성서는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된다. 구약은 천지창조부터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이후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대체로 기원전 1,000년경부터 정리되어 왔다. 신약은 서기 1세기 무렵에 활동한 예수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구약과 신약에 대한 입장에 따라 세 종교는 구분된다.
우선 유대교는 구약을 절대시하지만, 신약은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구약을 믿고 동시에 신약을 절대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의 지위에서 이해하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태도다.
이슬람은 구약을 절대적으로 믿지만, 신약을 절대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유대교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예수라는 인물은 여러 예언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최종적으로 신이 보낸 인물로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남겨준 코란을 절대시한다.
그리스도교를 세분화하면 로마카톨릭, 프로테스탄트, 동방정교회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각각 로마카톨릭은 천주교로, 프로테스탄트는 개신교로 번역되었고 동방정교회는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
절대적 유일신교로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있고, 상대적 다신교로는 힌두교, 불교, 티벳불교가 있다.
절대적 유일신교 :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는 유대인들의 민족종교를 말한다. 전체 신도수로 보면 보잘 것 없지만,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기원이 되는 종교로서 현재가지 존속한다는 측면에서 종교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유대교는 일반적으로 최초의 유일신 사상으로 평가된다. 교리의 핵심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신으로서 야훼를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로서 메시아 사상을 따른다는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이 메시아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메시아가 이미 왔다고 분리해서 나온 종교가 그리스도교인 것이다.
창세기(아담부터 요셉까지)
아담
창세기의 내용은 절대적 존재로서의 야훼,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첫째날 가장 먼저 빛을 만들고 이어서 낮과 밤을 정한다. 두 번째 날 하늘이 만들어지고 위쪽의 물과 아래쪽의 물이 나누어졌다. 세 번째날에 아래쪽에 있는 물을 모아서 바다와 땅을 나누고 그위에 식물이 심어지게 했다. 네 번째 날이 되어서야 해와 달 그리고 별이 탄생했다. 다섯 번째 날에는 바다의 생물들과 하늘의 새들이 만들어지고, 여섯 번째 날에 땅의 짐승들이 만들어지고 마지막 날에 사람이 탄생했다. 일곱 번째 날에 신께서는 안식에 취하셨다.
야훼는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했는데, 남성인 아담은 흙으로 빚어 만들고 여성인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만들었다. 다만 유대 신화에서는 이브 이전에 릴리트라는 여성이 아담과 동시에 창조된 것으로 나온다. 릴리트는 성관계를 중심으로 한 여성 평등을 주장하다가 아담과 갈등을 겪고 결국 홍해로 가서 악마가 된다. 릴리트가 떠나고 혼자 외로워하는 아담을 위해 아담의 갈비뼈로 온순한 이브가 창조되었다.
아담과 이브가 첫 번째 가정을 이뤄 태고의 낙원 에덴에 살고 있을 무렵, 이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야훼께서 금지하신 규율로서, 선악을 구별하는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열매를 먹게 되었고, 또한 아담도 이브와 함께 죄를 지음으로써 이들은 행복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벌을 받게 된다.
아담과 이브는 이후에 카인과 아벨을 낳았다. 카인은 농부가 되고 아벨은 양치기가 되었다. 둘은 하느님에게 각자 제물을 바쳤는데, 하느님이 아벨의 것을 취하고 카인의 것은 받지 않자, 카인은 질투심에 아벨을 살해했다. 이후 카인은 세상을 떠돌았고, 아담과 이브는 세 번째 자녀인 셋을 낳았다.
노아
이후 성경에는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야훼가 홍수 심판을 내린 것은 사람들의 죄 때문이었다. 이때 유일하게 의인이었던 노아와 그 가족만이 심판을 피할 수 있었다. 노아는 신의 말씀에 따라 방주를 짓고 그 안에 가족들과 땅의 모든 생물을 태워 죽음을 면했다. 홍수기간은 40일이었고, 방주는 물이 빠질 때까지 150일을 기다렸다가 현재 터키에 위치한 아라랏 산에 정박했다. 하느님은 이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그 증표로 무지개를 남겼다.
바벨탑
그 다음 이야기는 바벨탑에 대한 것이다. 홍수 심판 이후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은 바빌로니아 땅에 정착했다. 이들은 도시를 건축하고 벽돌로 피라미드 형태의 탑을 세우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을 세워 자긍심을 높이고, 혹시 모를 야훼의 심판을 피하리 위해서였다. 하지만 야훼는 이들의 의도에 노해, 사람들의 언어를 다르게 만들었다. 말이 혼란스러워지자 사람들은 작업을 멈추고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뿔뿔이 흩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아브라함
이후 구약성서 전체의 주인공급 인물인 아브라함이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3대종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의 공통된 조상이다. 아브라함은 현재 이라크 지역 수메르의 도시 우르에서 다른 신을 섬기며 살다가 야훼는 그에게 가나안으로 가라고 명하자, 아브라함은 유일신 야훼만을 섬기기로 약속하고 그의 명령에 따랐다. 야훼는 아브라함에게 수많은 자손을 약속했는데, 그의 아내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86세때 이집트인 여종 하갈을 첩으로 들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리고 100세가 되어 아내 사라에게세 아들 이삭을 얻었다. 나중에 정실부인 사라의 질투와 시기로 여종 하갈과 이스마엘은 사막을 떠나게 된다. 장자 이스마엘은 이슬람의 직계 조상이 되고, 둘째 아들 이삭은 유대인의 직계 조상이 된다.
시간이 지나 이삭이 성장했을 때,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소중한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게 했다. 이때 신실했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정말로 이삭을 칼로 내리쳐 죽이려고 했다. 이에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고는 이삭 대신 옆에 있던 염소를 제물로 바치게 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복 받을 것임을 약속했다.
야곱
아브라함의 둘째 아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해서 쌍둥이를 낳았다. 형은 에서라고 이름지었고, 동생은 야곱이라고 이름 지었다. 형에서는 사냥꾼으로 아버지의 신임을 받았고, 동생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총애를 받았다. 에서는 털도 많고 남성스로운 스타일이었고, 야곱은 여성스러웠다.
어느날 사냥에서 돌아와 배가 고팠던 상남자 에서는 때마침 팥죽을 끓이고 있던 동생 야곱에게 팥죽을 달라고 했다. 야곱은 그 대가로 장자의 권리를 달라고 했다. 장자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에서는 팥죽의 대가로 장자권을 넘겼다. 여기서 야곱의 팥죽이라는 말이 생겼는데, 이는 어리석은 거래의 상황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이후 이삭이 늙어 장남 에서를 축복하기 위해서 불렀는데, 아내 리브가는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고 싶어서 야곱을 에서처럼 꾸미고 이삭에게 가게 했다. 이삭은 눈이 침침했던 까닭에 야곱을 축복해 주었다. 나중에 에서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장자권과 축복을 모두 빼앗긴 것에 화가나서 야곱을 죽이려고 했고, 이에 야곱은 하란 땅의 삼촌 라바의 집으로 도망쳤다.
도망친 야곱은 삼촌 라바의 둘째 딸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서 그의 집에서 칠년간 무임금으로 노동을 했다. 하지만 삼촌 라반은 야곱을 속이고 첫날밤에 첫째 딸 레아를 들여보냈다. 야곱이 이에 항의하자 삼촌 라반은 첫째 딸을 먼저 출가시키는 풍습을 들어 칠년을 더 일하는 조건으로 라헬도 함께 야곱에게 주었다. 이후 아내들과 그 전까지 일한 대가인 가축들을 제리고 삼촌의 집에서 도망나온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형 에서가 자신을 헤칠 것이 두려웠던 야곱은 먼저 가축과 선물을 보내고, 다음으로 아내와 자식을 보냈다. 야곱은 홀로 남아 있다가 우연히 어떤 사람과 밤세 씨름을 하게 되는데, 날이 샐때까지 끈질기게 그를 놓아주지 않자 그는 야곱에게 복을 주기로 약속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스라엘로 개명한 야곱은 아버지 집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형 에서는 야곱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요셉
야곱에게는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야곱은 그중 요셉을 가장 사랑했다. 어느날 요셉은 자신이 왕이 되는 꿈을 꾸었다. 꿈 이야기를 형제들에게 하자, 형제들은 안 그래도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요셉을 시기해서 그를 죽이려고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은 다음 지나가던 상인들에게 요셉을 팔아버렸다.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어느 고관의 종이 되었는데, 주인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다가 감옥에 갇히고 만다. 요셉은 감옥에서 꿈을 풀이하는 재능을 인정받고 파라오의 꿈을 해석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곳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총리대신에 오르고, 나라의 풍년과 흉년을 예측하여 이집트를 재난에서 구해낸다.
이후 요샙은 자신의 고향에 흉년이 들고, 이 때문에 형들이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 왔다는 것을 알게되는데 요셉은 형들을 옥에 가두거나 시험하고, 결국 이들을 용서해준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을 이집트로 데려와 풍성하게 대접하고 살곳도 마련해 준다. 야곱과 요셉의 자손들은 이집트에 정착해 살아가게 된다.
여기까지가 창세기의 내용이다.
출애굽기
창세기 다음의 출애굽기는 이집트에서 노예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야곱과 요셉이 이집트에 정착한후 어떤 사건들을 거쳐 그 후손들이 노예의 상태가 되었는지는 충분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출애굽기의 원래 제목은 엑소더스로 번역하면 탈출기 정도가 된다. 애굽이 이집트를 의미하므로 이집트를 탈출정도가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세
출애굽기의 주인공은 이스라엘 민족과 모세다. 모세가 태어나던 당시에 이집트에는 이스라엘 민족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있었다. 그래서 이집트의 파라오는 유대인 출산을 억제하려는 정책을 폈다. 대표적으로 여자아이들은 살려두고 남자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강물에 익사시키는 정책을 폈다. 이러한 인종 말살 정책의 분위기 속에서 모세가 태어났다.
모세의 어머니와 누이는 모세를 살리기 위해 바구니에 송진을 바르고 그 속에 아이를 넣어 강가에 두었는데, 우연히 파라오 딸의 눈에 띄어 궁궐에서 자라게 된다. 하지만 청년이 되었을 때,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민족이 억압받는 모습을 보고 모세는 이집트 감독관을 죽이고 광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토착민족인 미디안족을 만나고, 그곳의 종교 사제의 딸과 결혼하여 40년간 종교 지도자의 소양을 갖추었다.
모세는 80세가 되던 해에 시나이 산에 올랐다가, 불붙은 관목의 모습으로 나타난 유일신 야훼를 만났고, 그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러 이집트로 돌아왔다. 모세는 파라오를 만나서 이스라엘 민족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지만, 파라오가 노동력 상실을 우려해서 이를 허가하지 않자 모세는 열가지 재앙을 가져왔다. 나일 강을 피로 물들이거나, 무수히 많은 개구리와 이, 파리 떼, 메뚜기 떼가 나타나거나, 우박이 내리고 3일 동안 어둠이 찾아오는 등의 재앙이 나타난 것이다. 결국 파라오는 이집트를 떠나는 것을 허가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떠나고 얼마 후에 마음이 바뀌어 군대를 보내 이들을 추격하게 했다. 모세는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그 사이로 지나갈 수 있게 함으로써 추격을 피하고, 이후 쫓아오는 이집트 군사들이 갈라진 홍해를 지날 때 홍해를 다시 닫히게 하여 그들을 수장시켰다. 홍해의 기적 이후, 모세는 물과 먹을 것이 부족해서 불만 가득한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광야에서의 40년간의 방랑을 시작했다.
방랑을 시작한 지 3개월정도 되었을 때, 모세는 처음 불붙은 관목을 보았던 시나이 산에 다시 올라서 야훼로부터 열 가지의 계명을 받았다. 이를 십계명이라고 하고 모세율법이라고도 한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에 있어 중요한 규율이 된다. 십계명은 신이 직접 돌에 새겨 주었는데, 이 석판은 곧 깨졌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황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고 있었는데, 이 모습에 화가 난 모세가 석판을 깨버린 것이다. 이후 모세는 야훼로부터 다시 율법을 받아왔다.
십계명의 대략적인 내용은 야훼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지켜라, 살인하지 말라 등이다.
그리스도교
유대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메시아 사상은 유대인들에게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세상을 구원할 존재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그리스도교인들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세상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예수라는 인물을 메시아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유대교와 갈라진다.
그리스도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구약과 신약성서를 근간으로 하고, 유일신 야훼와 메시아로서의 예수를 믿는 종교.
그리스도교의 믿음의 근간을 이루느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 제자들의 행적에 대한 27권의 문서들을 묶은 것이다. 네 편의 목음서와 제자들인 사도의 행적이 한편, 그 밖에 사도들의 여러 편지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의 예언서로 구성되어 있다.
신약성서
복음서 :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도행전
서간서
예언서
예수 그리스도
유대교에서는 유일신 야훼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신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목수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호적등록차 여행을 떠났다가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았다. 예수는 출생후에 어머니 마리아, 아버지 요셉과 함께 나사렛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았다. 예수는 성인이 되어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기적을 행했다. 언덕위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도덕과 믿음에 대해서 설교하는 신상수훈과,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5천명을 배불린 먹인 오병이어의 기적이 대표적이다.
많은 유대인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랐지만, 유대인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위험인물로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 유다와 말을 맞추고 예수를 제거하기로 했다.
빌라도는 예수와 강도 바라바 중에서 한명을 선택할 것을 유대인들에게 미루었다. 유대인들은 바라바의 사면을 원했고, 이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는 그 당시 정치범들의 처형방식이었던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이후 예수는 올리브 산에서 승천했다. 예수의 희생과 부활은 이후 그리스도교인들의 종교적 신념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슬람
한국에서는 이슬람교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는 규모면에서 그리스도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종교다. 대략 세계인구의 1/4이 신자라고 추정된다. 이슬람 신도를 부르는 명칭이 있는데, 남성은 무슬림이고 여성은 무슬리마다.
이슬람 신앙의 핵심은 두가지를 믿는 것이다. 첫 번째는 구약의 절대적 창조주인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하느님의 사도로 인정하는 것이다.
예언자 무함마드 :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예언자 무함마드는 6세기 말인 570년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태어났다. 종교적 박해가 심해짐에 따라 622년에 70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메카를 탈출하여 북쪽의 메디나로 떠났다. 이슬람교에서는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도착한 날인 622년 9월 20일을 매우 중요한 날로 생각하며, 이를 헤지라라고 부른다.
상대적 다신교 : 힌두교, 불교, 티벳불교
비교적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절대적 유일신교와는 달리 지금부터 이야기할 상대적 다신교는 인도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아시아 지역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 지역의 종교는 가장 근원적인 뿌리로서 베다를 기원으로 한다. 베다는 구전되어 전해오던 내용을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신성한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편찬한 문서다.
베다 : 삼히타, 브라마나, 아라냐카, 우파니샤드(베단타)
우파니샤드의 핵심개념 : 우주(브라흐만),자아(아트만) 이둘은 하나다(범아일여)
베다는 인도의 오래된 지혜의 문헌이며, 그중 베다의 결론을 우파니샤드라고 한다. 우파니샤드의 핵심개념은 개인의 본질로서의 아트만이 우주의 본질로서의 브라흐만과 동일하다는 범아일여의 사상이었다. 이러한 범아일여의 깨달음은 깊은 명상을 통해 삼매에 들 때 가능하며, 이는 윤회를 멈추는 해탈을 위한 방법이었다.
베다에 대한 수용과 비판이 힌두교, 불교로 이어졌다. 단순하게 말하면 힌두교는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전통을 계승하고 대중적으로 확대한 것이라면, 불교는 베다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극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힌두교 (인도의 종교)
힌두교의 신 : 브라흐마(창조), 비슈누(유지), 시바(파괴)
비슈누는 유지의 신으로 가운데 자리에 위치한다. 비슈누는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화신을 의미하는 아바타라를 지상에 주기적으로 내려보낸다. 이 아바타라는 비슈누의 대리자이기도 한 동시에 비슈누 자신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아홉 가지의 아바타라가 내려왔고, 마지막으로 열 번째 아바타라가 내려올 차례다. 여덟 번째 아바타라는 크리슈나로, 인도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최고로 인기가 많은 신이다. 아홉 번째 아바타라는 놀랍게도 부처다.
열 번쨰 아바타라는 칼키라는 존래로 마지막 아바타로 예정되어 있다. 칼키라는 말은 영원, 시간을 의미한다. 선함과 종교가 무너지는 칼리 유가라 불리는 시기에 세상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기 위해 올 것으로 여겨진다.
불교
기원전 6세기 무렵에 고타마 싯다르타에 불교는 시작된다.
불교의 문제의식은 고통으로부터 시작한다. 부처가 깨달은 진리는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모든 것이 고통스럽다. 둘째, 모든 것이 덧없다. 셋째, 모든 것이 실체 없다.
따라서, 베다 철학에서 자아의 영원한 본질을 의미하는 아트만에 대해서 부처는 부정한다. 고정적이고 영원한 실체는 없다. 이를 무아라고 하고 이후 대승불교에서는 공으로 표현된다.
고정된 실체가 없고 모든 것이 변화한다면, 이 세상은 무엇인가? 부처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단순하고 우연적인 조건들이 순간적으로 모인 것뿐이라고 한다. 눈앞의 사물이나 개인의 성품이나 모든 것은 과거로부터의 수많은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어서 우연하게도 지금의 모습으로 잠시 놓이게 된 것이다. 이를 연기라고 한다.
고정되고 불변하는 실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무아와 연기를 받아 들일 때, 삶의 고통은 제거되고 개인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이를 부처는 고집멸도의 네가지 단계로 설명한다.
부처 : 불교의 창시자는 일반적으로 부처로 알려져 있는데, 부처는 특정 인물이 아닌, 깨달은 사람을 의미하는 일반명사다. 구체적인 인물로는 기원전 6세기에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를 말한다. 석가모니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고대 인도의 부족인 석가족에서 태어난 성자라는 의미다.
싯다르타는 지금의 네팔과 인도 국경 근처에 샤키야족의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싯다르타는 궁궐안의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만을 누렸으나, 어느 날 성 밖으로 외출하면서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사람이 힘들게 노동해야 먹고살 수 있음을 알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현실에 대한 충격으로 우울해하는 싯다르타가 혹시나 출가하지는 않을까 하여 왕은 싯다르타가 16세가 되던 해에 결혼실을 올리게 했고, 많은 미녀와의 향연을 마련해주어서 싯다르타가 현실에 만족하도록 애썼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고통의 문제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결국 29세가 되어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끝내는 방법을 찾고자 몰래 왕궁을 빠져나왔다. 갠지스 강을 건너서 선인들을 찾아 수행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숲으로 들어가 다섯명의 고행자를 만나 함께 6년간의 수행생활에 들어가고, 먹고 자는 것을 극도로 거부한 상태로 끝없는 명상에 드는 고행이었던 까달에 싯다르타는 정말 앙상하게 뼈만 남게 되었고, 주변 마을의 사람들은 뼈만 앙상한 싯다르타를 먼저 괴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그는 강둑에 쓰러졌다. 얼마 후 서서히 의식을 찾은 그는 강에서 몸을 씻었다. 마을의 소녀가 우유죽을 가져다주었고, 싯다르타는 그 음식을 먹었다.
기운을 되찾고 나서야 지금까지의 고행이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 싯다르타는 극단적인 고행도, 극단적인 쾌락도 모두 적절한 방법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편안하게 자리를 마련하고 고통이 없는 가운에 선정에 들었고, 결국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때 얻은 깨달음이 사성제와 연기에 대한 것이었다.
이후 부처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인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45년의 긴 세월에 걸쳐 설법과 교화를 계속하였고, 80세의 고령이 되었다. 파바라는 마을에서 받은 공양에 문제가 있었다. 그는 이질을 앓으면서 점차 위독해졌고 최후의 목욕을 마치고 숲으로 들어가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발을 포갠 다음 누웠다.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모든 것은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설법을 상기시킨 후에 마지막 가르침을 설파하고 입적했다.
티벳불교
불교는 일반적으로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그리고 금강승으로 구분한다. 그중 개인의 깊은 깨달음을 강조하는 소승불교는 동남아시아로 전파되고, 대중들의 해탈을 고려하는 대승불교는 동북아시아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밀교적 형태를 가진 금강승은 티베트로 전파되었다. 티베트는 초기 불교의 모습과 부처의 가르침의 요체를 잘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
달라이 라마 :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정치적 왕인 동시에 종교적 최고 지도자다. 달라이 라마는 개인의 이름은 아니고 정치, 종교 지도자의 세습명이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14대이고, 1대부터 14대까지 한명의 존재가 윤회를 반복한다고 믿고 있다.
최종정리
유대교,이슬람교,그리스도교는 구약 이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에서 차이를 보였다. 유대교는 구약이후에 메시아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그리스도교는 신약의 근간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슬람은 예수는 한 명의 선지자일 뿐이고, 마지막 예언자로서 무함마드가 왔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공통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창조주로서의 신이 절대적이고 완전하며 인간과는 완벽하게 분리된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을 극단적으로 추월하는 신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영광을 찬양하고 그를 믿으며 그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와 달리 상대적 다신교는 초월적인 능력을 갖춘 신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으나,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인간이었다. 상대적 다신교의 근간이 되는 베다와 그 결론 부분인 우파니샤드에서는 절대적 전체로서의 브라흐마와 개체로서의 아트만이 하나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기 자신이 신적 존잭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계승한 것이 힌두교다.
힌두교는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베다 철학을 인도의 민속신앙과 결부애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신화적 인물들로 설명했다. 그런데 힌두교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은 개인의 선호에 따라 믿을 수도 있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존재였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신과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의 깨달음인 것이다.
이후 베다와 힌두교의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가르침을 비판하고 현실의 고통을 제거하는 데집중해야 함을 설파한 불교과 등장하면서, 더 이상 신은 인간 삶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게 되ᄋᅠᆻ다. 삶의 고통을 직시하고 원인을 제거하고 깨달음을 얻어 궁극적으로 해탈해야 하는 존재는 인간 자신이며,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 초기 불교의 모습을 이어받은 티벳 불교 역시 인간의 죽음과 환생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제시한다. 누구나 언젠가는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윤회를 멈추고 스스로 해탈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베다, 힌두교, 불교는 세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신앙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인이 깨달음을 통해 초월적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신앙 안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수행하고 정진하고 끊임없이 삶을 성찰하는 것이다.
5. 신비
임사체험은 NDE라고도 한다. 임사체험은 의학적 기준으로 죽음에 이르렀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이후 특수한 체험을 기억하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이후의 네가지 가능성
무 – 시간단절
영생 – 시간지속
윤회 – 시간반복
영원회귀 – 동일한 반복
니체사상의 핵심인 영원회귀는 일단 윤회와 비슷하다. 죽음 이후 삶이 다시 반복된다는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윤회는 전생의 과업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만, 영원회귀에 따르면 죽음 이후에는 새로운 삶이 아닌 내가 살아왔던 삶을 정확히 다시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 없이 정확하게 동일한 삶의 영원한 반복이 영원회귀다.
자신의 삶을 정확하게 그대로 다시 사는 삶. 당신은 어떤가? 영원회귀가 맞다면 당신은 죽음 이후에 당신의 삶을 그대로 한번 더 살게 되는 것이다. 순간마다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워했던 사람들을 영원히 반복해서 보게 되는 것이다.
니체가 이렇게 끔찍한 사후관을 우리에게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영원회귀가 사실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영원회귀의 개념이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우리에게 있어서 100년의 인생은 매우 긴 시간이지만, 지금 당장의 순간은 매우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니체는 영원회귀 개념을 통해 정말 중요한 것은 인생의 목표나 인생 전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임을 밝힌다. 영원회귀에 따르면 이 순간은 무한히 반복되는 삶속에서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이 순간의 길이는 삶의 반복만큼 무한대로 길어진다. 반면 인생은 100년이라는 유한한 시간일 뿐이다. 순간과 인생의 길이는 역전된다. 순간은 무한한 길이를 갖지만 인생은 유한한 길이로 한정된다.
만약 지금 이순간이 힘겹고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은 영원할 것이다. 반대로 지금 이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이 행복은 영원할 것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현명해질 것을 요구한다. 내가 지금 소모해버리고 있는 이 순간은 내가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영원히 반복될 이 순간을 위해 우리는 나의 삶을 창조해야만 한다. 지금 당장 행복해지도록 삶을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존재. 지금 이 순간을 소모하지 않고 최고로 행복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존재. 이 존재가 니체가 말한 초인이다.
니체는 실제로 영원회귀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삶의 의미 – 인생
인생 전체의 의미는 죽음의 순간에 가서야 비로소 확정된다. 그렇기에 아직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고 먼 미래에 죽음을 앞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상으로나마 나의 죽음의 순간을 선취하는 것 뿐이다. 그 후에 그것을 가지고 현실로 돌아와 현재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스스로 해석해 보아야 지금 내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이러한 방법은 현대 철학자 하이데거와 가다머가 제시한 해석학적 순환에 근거한 것이다. 해석학적 순환은 의미가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이에 따르면 특정 텍스트의 전체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텍스트의 부분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부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텍스트 전체의 의미가 선행적으로 이해되어 있어야만 한다.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분을 이해해야 하지만, 부분의 의미는 반드시 전체 안에서만 확정된다는 순환.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의미가 발생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텍스트의 의미는 전체와 부분이 순환하면서 비로소 발생한다. 이를 해석학적 순환이라 한다. 해석학적 순환은 단지 특정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론을 넘어서 의미라는 것이 어떻게 파악되는지 알려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인생의 의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석학적 순환이 요구된다. 전체를 아우르는 끝으로서의 죽음에 대해서 앞서 생각하고 이해할 때 지금 현재 삶의 의미가 이해되고, 현재의 부분의 의미가 이해될 때에야 궁극적으로 인생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디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죽음은 필수적이다. 죽음이 없다면 삶의 의미는 확정되지 않고 이해될 수도 없다. 죽음을 회피하고 모르는 체하려는 현대인들은 그래서 일상이 허전하고 불안하며, 의미의 상실속으로 던져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식 –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진짜인가?
단적으로 말해서 지금 당신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정말로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머릿속의 세계다. 지금 보이는 당신의 팔이나, 손에 놓인 책이나, 건너편의 사람들이나 그것은 당신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머릿속에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진짜 외부에 있는 것은 없다. 외부 세계는 없다. 우리는 내 머릿속에 산다.
칸트는 그래서 세계를 현명하게 둘로 구분한다. 내 눈앞의 세계는 진짜 세계가 아니라, 내가 구성해낸 주관적인 세계로서의 현상세계다. 반면 내가 절대로 다가갈 수 없는 실제 세계, 전자와 광자가 회오리칠 것으로 예상되는, 빛이나 색깔은 없고 단지 신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진짜 세계를 칸트는 물자체라고 불렀다. 칸트에 따르면 나는 현상 세계에 살고 물자체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생각은 칸트가 처음 한 것은 아니다. 이 세계가 주관적 환영의 세계일 뿐 진짜 세계를 직접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는 이미 3000년도 더 전에 베다와 우파니샤드에서 밝혀지고 있다. 특히 사람들은 눈앞의 세계가 환영이 아니라 진짜 세계라고 믿는 경향이 강한데, 베다에서는 이렇게 눈앞의 환영이 실제라고 믿는 착각을 마야라고 불러 이를 경계하게 했다. 즉 눈앞의 사과가 사과 그자체라고 생각하는데서 오해와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지혜롭게 알려준 것이다.
진정으로 신비하고 심오한 깨달음을 주는 것은 자신이 내적 세계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실체라고 믿었던 세계가 사실은 나의 주관에 의해 구성된 것이며,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내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세계의 의미와 세계속에 살아 있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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