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알고 싶다 (안인모)
지은이 : 안인모
출 판 : 위즈덤하우스 (2019-10-23)
책 소개
누적 750만 히트로 증명하는 국내 최고의 클래식 콘텐츠. 2017년 9월 첫 방송을 시작으로, 음악 분야 독보적 1위 팟캐스트 ‘클래식이 알고 싶다’. 방송 2주년을 맞아 첫 단행본을 출간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 우리의 삶과 가장 비슷한, 그래서 가장 쉽게 공감이 되는 ‘낭만주의 시대’ 이야기다. 즉흥과 환상이 넘쳐나고, 문학과 자유롭게 결합하며, 자유로운 몽상을 담아낸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 이야기를 피아니스트 안인모의 쉽고 재밌는 설명으로 함께 따라가 보자.
책 내용
슈베르트 / 완벽한 미완성, 방황하는 봄총각
(1797-1828 / 오스트리아 빈 토박이, 매독으로 31살 나이 사망)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이들은 모두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작곡가들이지만, 빈토박이는 아닌 반면, 슈베르트는 순전한 빈 토박이였다.
슈베르트는 6세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독창을 할 정도로 노래를 잘했는데, 목소리가 아주 맑고 아름다웠고, 높은 도까지 또렷하게 노래할 수 있었다. 슈베르트가 합격한 이 국립신학교 소년 합창단지 현재의 빈 소년 합창단이다. 하이든도 바로 이 합창단 출신이다. 그리고, 슈베르트는 16세에 교향곡 1번을 작곡하게 된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천재성 앞에 크게 절망한 2인자로 나왔던 살리에리를 기억하나요? 왕실의 음악감독이면서, 당시 국립신학교 교사였던 살리에리는 슈베르트의 영재성을 눈여겨보고, 그에게 작곡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슈베르트를 떠올리면 학창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고, 또 얼마전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나와 화제가 된 가곡 마왕(D.328)이 바로 생각나죠. 슈베르트의 대표 작품 마왕, 놀랍게도 이 곡으 슈베르트가 인생에서 제일 처음 출판된 곡이에요. 그래서 작품번호 OP.1이죠.
<래알꼭알 : D번호와 Op번호는?>
Op번호는 작품번호로 작품이 출판된 순서로 정리한 것이다. 무려 1천곡에 가까운 슈베르트의 작품 중 생전에 출판된 것은 100여곡에 불과하니, op번호는 슈베르트의 작품번호를 나열할 때 좋은 도구가 아니라 도이치가 슈베르트 작품 998개를 작곡된 연대순으로 정리한 것이 도이치번호(D번호)다. 슈베르트 마왕은 작품번호 1번이지만, 도이치번호로는 무려 328번이다.
마왕 - 어느날 슈베르트의 친구들이 놀러왔는데 슈베르트가 방 안을 서성이며 큰 소리로 시를 낭독하고 있었어요. 그 시는 바로 괴테의 시 마왕이었죠. 마왕의 시에 멜로디를 넣는데 채 1시간도 안걸렸죠. 피아노 반주까지 전부다요. 등장인물은 해설자, 마왕, 아버지, 아이, 이렇게 네 명인데 이 곡을 부르는 가수는 이 네 명의 캐릭터적 특징을 각각 잘 표현해서 불러야 해요. 아버지가 아픈 아들을 안고 말을 타고 달려가는데, 마왕은 아이를 데려가려고 해요. 피아노의 음산한 셋잇단음표는 재빠른 말밥국 소리를 표현하고, 아버니는 나직한 목소리로 아들을 위로해요. 공포에 떠는 아들은 고음으로, 마왕은 간사하게 속삭이듯 말하죠. 마지막에 말밥국 소리가 사라져버리는 그 순간은 마왕이 아이를 지배(아이의 죽음)한 것을 상징해요.
최초의 상실, 첫사랑 테레제 – 슈베르트는 테레제에게 괴테의 시에 선율을 붙인 가곡 들장미(D257)을 선물하며 결혼을 약속해요. 그러나 그의 불안정한 직업으로 테레제 부모님의 반대를 뚫을 수 없었어요.
숭어 – 슈베르트와 포글은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음악적으로는 매우 잘 통하는 사이였어요. 한번은 둘이 함께 북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던 중 음악애호가인 귀족 파움가르트너를 만아요. 그는 슈베르트에게 자신의 가족이 다 함께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곳을 써 달라고 부탁해요. 슈베르트는 민물에서 송어가 힘차게 헤어치는 광경을 아주 우아하고 경쾌하게 그린 그의 가곡 송어의 선율을 4악장에 넣은 피아노5중주 송어를 작곡하죠. 간혹 바닷고기인 숭어로 잘못 오역되는데, 민물고기 송어랍니다.
슈베르트 교향곡 8번(미완성교향곡) - 이곡은 미완성교향곡으로 2악장까지만 연주되는데, 작곡하다가 죽은것도 아니고, 단지 추측건데 건망증이 아주 심한 슈베르트가 바쁘게 살다 보니 단순히 나머지 악장을 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슈베르트의 9개 교향곡 중 유일한 미완성이면서 동시에 가장 완벽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곡이죠.
매독,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 쇼팽은 사창가에 다니면서 결국 매독에 걸리죠.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해 작곡만 해요. 방랑자 환상곡, 그대는 나의 안식 등이 바로 이 무렵 만들어진 곡이에요.
쇼팽은 죽음에 관한 곡을 50곡이나 쓰는데, 죽음과 소녀를 작곡하고 7년후에 현악4중주 14번 d단조 족음과 소녀 D810. 제2악장에서 주제로 사용해요. 이 부분은 죽음의 공포에 떠는 소녀와 소져를 데려가려고 유혹하는 죽음과의 대화죠.
혼자하는 사랑 – 슈베르트의 참단한 현실과 고통이 내재되어 있는 비통하면서도 아름다운곡,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D.821이 이 무렵에 만들어지죠. 아르페지오네는 비올라와 첼로의 중간정도로, 여섯 줄로 된 현악기인데 현재는 비올라나 첼로로 이 곡을 연주해요.
아베마리아 D.839를 작곡하기도 하는데, 이곡은 서사시 호수의 여인을 바탕으로 만든 곳으로 원래 엘렌이 아버지를 기다리며 하프를 뜯는 소리가 피아노의 반주속에서 계속 들려오는 원내 제목은 엘렌의 노래다.
방랑의 아이콘(겨울나그네) - 1827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D.911을 작곡해요. 뮐러의 시에 의한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는 사랑에 실패한 청년의 이야기예요. 총24곡중 1번 밤인사, 5번 보리수, 6번 넘쳐 흐르는 눈물, 11번 봄꿈, 24번 거리의 악사가 대표적인 곡이죠.
어쩌다 가곡의 왕 – 31년의 짧은 인생동안 무려 998개의 작품을 남기고, 그중 3분의 2가 바로 가곡이죠. 시를 단지 읊는 것에서부터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승화시킨 슈베르트의 가곡은 노래와 피아노 반주가 혼연 일체된 독일 예술가곡, 리트의 시초가 되었지요.
아름다움의 결정체 (즉흥곡, 악흥의 순간) - 슈베르트는 즉흥곡 D.899의 4곡과 D.935의 4곡을 작곡해요. 또한, 6개의 악흥의 순간 D.780도 작곡해요. 또한, 슈베르트는 그의 인생 최초이자 마지막 공식연주회를 열어 피아노 3중주 D.929를 발표하기도 하죠.
슈베르트는 베토벤 옆에 안장되는데, 그는 10곡으 교향곡, 7개의 서곡, 20여개의 오페라, 15개의 현악 4중주, 7개의 미사곡, 21개의 피아노소나타, 600여곡의 가곡 등 1,000여곡을 남깁니다.
백조는 소리를 한 번도 안내고 조용히 살다가 죽기 직전에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한다고 해서,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을 백조의 노래라고 불르죠.
슈베르트의 음악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친근감을 줘요. 우리 곁에 늘 있는 평범한 청년, 그런데 천부적인 선율 감각을 가진 천재. 그러나 이 위대한 남자를 사랑해준 여성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가 그토록 처절하고 애절하게 원했던 건 사랑이었고, 그의 선율은 사랑을 갈망하는 몸부림이었어요. 그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한, 불운하고 불우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천재성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우리를 어루만져줘요. 힘들지 않은 삶은 없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갈 의미는 충분히 있는 거라고..
이별을 노래하는 피아노 시인 쇼팽
(1810-1849 / 폴란드태생 20세에 파리로, 폐결핵으로 39살 나이 사망)
쇼팽의 몸은 파리에, 심장은 폴란드에 – 쇼팽을 발음해 보면, 왠지 프랑스 이름 같지 않나요? 그럼 쇼팽은 프랑스인일까요? 반 정도는 맞습니다. 쇼팽의 아버지가 프랑스인이거든요. 그런데, 쇼팽은 폴란드가 조국인 폴란드인입니다.
마주르카 - 쇼팽은 폴란드의 민속음악인 마주르카를 통해 59곡의 쇼팽의 마주르카를 탄생시킵니다. 마주르카는 3박자의 폴란드 민속춤곡으로 둘째박 또는 셋째박에 악센트를 넣어서 아주 세련되고 독특한 느낌이 나는 곡이죠.
스무살의 쇼팽은 폴란드를 떠납니다. 쇼팽이 혁명군의 아지트에 출입하는 것을 알게 된 쇼팽의 아버지가 안전을 위한 도피 차원에서 쇼팽의 유학을 서두르게 된 것이었죠.
창밖으로 날아간 쇼팽의 피아노 – 파리로 이동중이던 쇼팽은 결국 바르샤바가 러시아에 의해 함락되었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접해요. 러시아의 기병대는 바르샤바에 도착하자마자, 쇼팽의 집에 가장 먼저 난입해서 쇼팽의 피아노를 창밖으로 내던집니다. 이 소식을 들은 쇼팽이 충격과 분노, 공포로 작곡한 곡이 바로 연습곡 12번 혁명입니다.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 - 쇼팽이 7세에 작곡한 첫 작품은 폴로네이즈였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작곡한 곡은 마주르카예요. 폴로네이즈는 역동적이고 강한 리듬의 귀족들이 즐기던 영웅적 기상이 담긴 폴란드 춤곡이라면, 마주르카는 농민의 소박한 정서가 담긴 춤이죠.
쇼팽의 전매특허 뉘앙스와 루바토 – 쇼팽은 170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는 45키로그램에 불과하여 피아노에서 큰 소리를 내기가 어려웠어요. 그는 이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음색을 구현하며 소리의 질감 표현에 집중합니다. 쇼팽 연주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루바토예요. 이 루바토를 개성적으로 잘 연주하는 것이 바로 쇼팽곡 연주의 핵심이죠.
래알깨알 – 쇼팽의 레슨포인트
1. 손모양과 손가락 번호에 늘 신경써라.
2. 페달로 인한 소리 변화에 집주하라.
3. 손목에 힘을 빼고, 오페라 가수가 노래하듯이 부드럽게 연주해라.
4. 바흐의 인벤션과 평균율 피아노곡집을 매일 연습해라.
5. 연습은 적당량 하고, 남는 시간에 산책이나 독서를 하고, 전시회에 가라.
쇼팽의 생활 – 레슨으로 큰돈을 만지게 된 쇼팽은 최고급품들을 걸치기 시작합니다. 특히 멋을 아는 쇼팽은 옷차림에 무척 신경을 썼어요. 그는 단골 양복점에서 점잖은 패턴의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소재로 된 양복을 맞춰 입었고, 모자, 장갑, 향수, 실크넥타이 상점의 단골 고객이었죠. 또한 쇼팽이 특히 신경을 쓴 것은 자가용 이륜 마차로, 마부와 비서도 따로 두었고, 세련된 가구들과 최고급 재질의 커튼으로 채워진 쇼팽의 살롱은 ㅇㄹ림포스라고 불렸어요.
쇼팽은 곧 피아노 – 쇼팽은 녹턴 21개, 연습곡 27개, 전주곡 24개, 마주르카 59개, 폴로네이즈 16개, 왈츠 20개 등 피아노라는 악기 안에서 더 특별히 선택해서 집중했죠.
쇼팽과 리스트 – 쇼팽과 리스트는 사실상 친구이면서 경쟁구도에 있었어요. 쇼팽보다 한 살 아래인 헝가리 출신의 피아니스트 리스트는 파리 사교계에 쇼팽보다 먼저 안착합니다.
래알꼭알 (성격소품) -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느낌과 감동을 자유롭게 표현한 곡이 성격소품이에요. 슈베르트의 즉흥곡과 악흥의 순간, 멘델스존의 무언가, 쇼팽의 연습곡과 전주곡, 브람스의 인터메조 등으로 이어져요
상드와의 이별(막다른 길을 가게 된 쇼팽) - 쇼팽 말년 쇼팽은 상드와 헤어지고 마주르카 2번 OP67. 그리고 그녀화의 행복한 추억을 그리는 듯한, 눈물이 툭 떨어질 만큼 슬픈 마주르카 4번 OP.68번을 작곡합니다.
마지막을 함께한 스털링 – 영국에서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스털링은 쇼팽보다 여섯 살 연상으로 상드와는 동갑이에요. 스털링은 상드와 헤어진후 히들어하는 쇼팽을 가까이에서 돌보며 생활비, 주거비 등 일체를 지불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쇼팽이 좋아하는 바이올렛 꽃을 일주일에 두세 번씩 보내는 등 소소한 일들을 챙겼어요. 결국 그녀는 쇼팽과 결혼하고 싶어 했지만, 쇼팽이 거절합니다. 쇼팽이 사망하자, 그녀는 유품들을 사들였고 현재는 바르샤바의 쇼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그녀는 대략 5,000프랑에 달하는 쇼팽의 장례식 비용과 묘비 제작 비용 일체 등을 챙겨줍니다. 쇼팽 사후에도 쇼팽의 땅을 사들여서 쇼팽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등 평생동안 쇼팽의 업적을 기리는 데 온 힘을 쏟았어요.
마지막 순간 – 쇼팽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폐결핵으로 3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사랑을 꿈꾸는 슈퍼스타, 리스트
(1811-1886 / 헝가리, 75살 나이 사망)
훤칠한 키, 날렵한 콧날을 자랑하는 옆선, 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수많은 여성 팬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현란한 피아노 기교에 화려한 쇼맨십까지...리스트는 동시대 작곡가들보다 훨씬 오래 살아 19세기 낭만주의의 시작과 끝에 있던 터주대감이에요.
엄청난 팬덤을 형성하며 각종 일활르 남긴, 낭만주의 시대의 유일무이한 아이돌은 바로, 헝가리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예요.
체르니와의 만남 – 아버지가 어느날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는데 리스트가 선율을 그대로 외워서 부르자, 당시 여섯 살이던 리스트의 재능을 알아채고 피아노를 가르키기 시작해요. 어린 리스트를 데리고 음악의 도시 빈으로 가 당시 최고의 피아노 선생인 체르니에게 철저한 교육을 받으며 피아노 테크닉을 혹독하게 갈고닦기 시작해요. 특히 소리를 고르게 내기 위해 각각의 손가락들을 독립시키는 훈련에 집중했어요. 빈에서의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리스트는 살리에리를 찾아가서 여러 가지 화성과 대위 등을 배웁니다. 이런 적극적인 후원을 받은 리스트는 훗날 자신이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제자들로부터 수업료를 받지 않았어요.
60년동안 500여명의 제자를 길러낸 리스트는 피아니스트라면 레슨이 아닌 연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말과 행동을 몸소 보여주었지요.
어릴적 리스트 – 그가 14세때 아버지가 장티푸스에 걸려 나흘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요. 그는 파리의 작은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며 피아노 레슨을 하며 닥치는 대로 돈을 벌기 시작해요. 이때 리스트는 유일하게 위로가 되어준 담배와 술을 가까이 하게 됐는데 평생동안 놓지 못하게 되요.
리스트의 롤모델, 파가니니 – 제2의 모차르트가 되기 위해 연주여행을 다니던 리스트는 1832년 파가니니의 연주를 보고 나는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어라고 다짐하고 혹독한 테크닉 연습에 들어갑니다. 리스트는 파가니니가 연주했던 바이올린협주곡 제2번 3악장을 주제로 작은 종에 의한 화려한 대환상곡을 작곡하지만, 너무 어려워서 연주가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아요. 현재도 이곡은 거의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이 손을 못대는 곡입니다. 또한, 리스트는 12개의 연습곡을 24개의 대연습곡으로 개작을 하는데, 이곡은 역사상 최고난이도의 작품으로 남아요. 가장 대표적인 연습곡이 6개의 파가니니 대연습곡중 3번 라 캄파넬라에요. 이곡은 연주가 불가한 작은 종에 의한 화려한 대환상곡을 개작한 것이죠.
래알꼭알 – S.번호 (슈베르트의 작품의 D번호처럼 리스트곡에는 S번호가 붙어요. 미국의 음악학자 험프리 설이 리스트의 작품을 형태별로 나누고 정리한 것을 설 번호(S번호)라고 불러요.
금지된 사랑을 위한 메쏘드 연기 – 22세때 유부녀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 임신까지 하게됩니다. 그 누구도 방해받지 않을 제3의 장소 스위스로 가기위해 무대위에서 기절하는 쇼를 선보이죠. 스위스에 와서 작곡하기 시작한 순례의 해 시리지는 음악으로 쓴 기행문으로 총3권으로 전체를 완성하기까지 대략 40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드디어 아빠가 된 리스트, 딸 블랑댕에게 일주일에 두세번 슈만의 어린이 정경을 피아노로 연주해 주기도 하죠.
시대를 리드한 트렌드세터 작곡가
1. 커버송의 대가 – 타인의 노래를 나만의 스타일로 재가공한 커버송이 유행인데, 슈베르트의 가곡을 편곡한 것을 계기로 리스트는 자신의 곡들뿐만 아니라 대략 100명의 작곡가의 작품을 300곡의 피아노 편곡으로 남깁니다. 어마어마한 작업이죠?
<래알깨알 – 리스트의 대표 편곡작품들 :슈베르트의 마왕,아베마리아,겨울나그네 /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 생상의 죽음의 무도 / 베르디의 리골레토 등>
2. 리사이틀의 창시자
<래알꼭알 – 비르투오소 : 비르투(덕)에서 나온 말로, 예술적으로 기교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뛰어난 연주자, 예술가를 말해요.>
3. 환상적인 피아노 쇼쇼쇼!
4. 피아노 킬러
5. 원조아이돌, 리스토 마니아 – 당시 무대는 피아노가 관객을 등진 채 놓여 있어서 관객들이 피아니스트가 연주할떄 표정이나 제스처를 전혀 보지 못했는데, 리스트는 피아노의 방향을 옆으로 놓는 파격을 보여, 자신의 매력적인 옆선과 재빠른 손놀림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또, 피아노 뚜껑을 열어소 소리가 관객에 잘 전달되도록 했어요. 이러한 리스트의 파격적인 시도는 전통으로 남아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죠.
불별의 연인, 비트겐슈타인 – 마리와 얻은 세명의 아이는 리스트에게 큰 행복이었지만 둘의 결별로 결국 아이들은 리스트의 어머니가 키우고, 리스트는 거액의 양육비를 어머니께 보냅니다. 이후, 러시아에서 열린 자선공연에서 리스트는 이 공연에 거액을 후원한 부인으로 현재 남편과는 별거중인 카롤 자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을 만나요. 리스트의 전 애인이었던 사교계의 인싸라 할 수 있는 마리와는 달리, 카롤린은 철학과 종교에 심치한 차분하고 지적인 여성이었어요.
리스트는 카롤린과 사랑에 ᄈᆞ지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 시기에 피아노곡 사랑의 꿈으로 알려진 노래 사랑할수 있는 한 사랑하라를, 슈만의 헌정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해서 그녀에게 헌정합니다.
<래알꼭알 – 사랑의 꿈 : 리스트는 19세기 독일의 시에 선율를 붙여 3개의 노래를 작곡하는데, 5년후 피아노곡 사랑의 꿈으로 편곡했어요.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오 사랑하고 싶을 때 마음껏 사랑하라, 언젠가 그대가 묘지에서 슬퍼할 시간이 오리니 >
바이마르, 새로운 전성기 – 카롤린과 함꼐 리스트 인생에거 가장 중요한 바이마르 시기가 시작됩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4층짜리 그림가은 저ᅟᅢᆨ에서 13년간 거주하며 안정된 생활을 이어가요. 리스트는 어느날 오케스트라로 시를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오케스트라로 쓴 산문시인 교향시라는 혁신적인 발명품을 고안해냅니다. 햄릿, 프로메테우스 등을 소재로 한 시나 소설, 회화 등에서 받은 인상과 영감을 내용으로 만들어서 으악이 굉장히 드라마틱해요. 리스트의 교향시는 후세 작곡가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주었고, 리스트는 총 12곡의 교향시를 작곡해서 카롤린에게 헌정해요.
카롤린과의 결혼 – 리스트와 카롤린은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카롤린의 남편이 이혼을 거부하면서 카롤린은 막대한 재산도 포기하죠. 리스트는 이혼 절차로 힘들어하는 카롤린을 위해 “6개의 위안”을 작곡해 줍니다. 15년간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마침내 카롤린의 이혼을 교황청으로부터 인정받고 리스트가 50세 생일을 맞아 로마에서의 결혼식을 계획하죠. 그런데, 결혼식 전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받아요. 교황이 둘의 결혼 허가를 다시금 철회했다는 편지였어요. 카롤린은 15년의 세월을 참고 견뎌왔지만, 바티칸의 반대속에서 리스트와 계속 동거할 자신은 없었어요. 둘은 이제 로마의 각자의 아파트에서 각자의 길을 갑니다.
슈퍼스타에서 검은사제로 – 아들 다니엘이 죽고 결혼불가 판정을 받고, 다음해 리스트가 그토록 아끼던 큰딸 블랑댕이 2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젊은 시절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바이마르에서는 드라마틱한 작곡가로 걸작들을 쏟아낸 리스트는 이제 로마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제로 살아갑니다.
클래스가 다른 마스터클래스 수업 – 리스트의 말년, 그의 명세를 찾아 전 유럽에서 연주자들뿐 아니라, 작곡가, 지휘자 등 다양한 제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와요. 리스트는 마스터클래스라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수업형태를 만들어내요. 마스터클래스란 다수의 일반인들에게 오픈된 형태로 학생이 연주를 하면 선생이 주로 예술적 표현에 집중된 레슨을 하는 방식입니다.
헝가리의 국민영웅 리스트 – 28세에 헝가리를 방문한 리스트는 헝가리의 비공식 애국가인 라코치 행진곡을 화려한 피아노 솔로곡으로 편곡해 연주하면서 국민 영웅 대접을 받고, 그때까지 큰 해정이 없던 조국 헝가리를 드디어 조국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헝가리광시곡을 만들어 내죠.
그의 마지막 – 리스트는 75세에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되며 혼수상태에 빠져 생을 마감합니다.
사랑할 수 있는한 사랑하라 – 에디슨이 축음기를 1년만이라도 일찍 발명했다면 우리는 건반위의 황태자 리스트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리스트는 즉흥연주를 하더라도 일일이 악보에 기록을 했기에 후세에까지 그의 음악이 남게된 것이죠. 그는 근면함과 섬세함 그리고 사명감으로 각종 음악 사업을 추진하고 후배 음악가들의 생계를 도운 큰 스승이자 후원자였어요. 그리고 독실한 신앙심과 화려한 연애는 도무지 한 사람의 일생으로 보기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죠.
리스트의 삶에서 보이는 여러 상반되는 면모들이 꽤 충돌을 일으키지만, 그는 많은 제자들을 키워내며 후세에까지 이어지는 혁신의 바람을 일르킨 새로운 시대를 향해 과감한 도전의 창을 던진 사람인 것 만큼은 분명하죠.
꿈꾸는 환상 시인, 슈만
(1810-1856 / 독일, 정신병원에서(매독) 46살 나이 사망)
포기할수 없는 음악의 길 - 슈만이 16세에 누이가 자살을 하고, 이에 충격받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요, 그뿐만 아니라 그의 스승 베버도 죽죠.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머니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슈만이 음악을 계속하도록 이끌어주지 않았어요. 결국 슈만은 법대에 진학하죠. 대학에서 우연히 비크선생과 만나는데, 비크는 곧바로 슈만의 천재성을 알아보죠.
슈만은 급했어요. 22세면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피아니스트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고 있었죠. 슈만은 손가락 힘을 기르기 위해 손가락에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달고 연습하기도 하고, 피아노 숙달 속성기라느 기계를 직접 발명해서 마비된 두 손가락에 끼우고 더욱 맹렬히 연습하죠. 결국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이 부저리고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꿈은 아예 접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22세 슈만은 결국 음악평론가와 작곡가로 살기로 결심하고, 피나니스트의 꿈을 피아노곡을 작곡함으로써 대체하려는 듯 작품번호 1번부터 23번까지를 전부 피아노곡으로 채웁니다.
악보위에 써내려간 시(사랑의 암호들) - 슈만이 비밀스럽게 즐기는 놀이가 있었는데, 문자와의 놀이에 빠진 슈만은 음표로 암호를 만들어서 놀았어요. 알파벳을 음이름과 연결시켜서 만든 이 암호는 음표라는 가면을 쓰고 슈만의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요. 아베그변주곡(작품번호1번)은 Abegg라는 한 소녀의 이름에서 a(라)-b♭(시♭)-E(미)-G(솔)-G(솔)음을 따와서 그대로 주제선율로 사용한다.
이중인격의 끝판왕, 누가 진짜 슈만인가 – 사실 슈만은 자신의 내면에 두 개의 다른 성격, 다른 자아를 가진 다중 인격이었어요. 그는 이 두가지 인격을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라는 두 개의 인물로 설정했는데, 전자는 굉장히 활력 넘치고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반면, 후자는 우울하고 몽상을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이죠.
음악비평의 시작(음악신보 창간) - 슈만은 1834년 음악신보란 음악잡지를 창간하고 10년간 왕성한 음악평론 및 비평활동을 합니다. 이런 활동이야 말로 슈만의 음악재능과 문학재능을 동시에 펼쳐 보이는 최고의 수단이었죠. 음악신보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등 지나간 선대의 주요 작곡가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쇼팽, 멘델스존, 브람스 등 당대의 라이징 스타들을 소개해서 알리는 대들보 역할을 해요.
슈만의 영원한 뮤즈, 클라라와의 만남 – 비크 선생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피아노를 배우던 슈만은 비크선생의 딸인 열한 살의 어린 소녀 클라라와 만나요. 그녀는 피아노 신동으로 유럽 전역에서 이미 이름을 날리던 피아니스트였죠. 어린소녀 클라라와 청년 슈만은 장난을 치며 놀던 친한 오빠 동생 사이였지만, 슈만이 약혼녀와 헤어진 그해, 슈만의 눈에 클라라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해요. 슈만은 그녀와의 수많은 감정과 느낌들을 작품속에 담고, 클라라가 만들어준 선율을 주제로 곡을 쓰기도 하죠.
슈만은 누이의 자살, 아버지의 죽음을 연달아 겪고, 형과 형수마저 콜레라고 떠나면서 줄곧 어머니에게 의지해 왔는데,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극도로 힘들어하죠. 설상가상으로 슈만과 클라라와의 밀회가 비크 선생에게 탄로가 나고, 둘의 만남을 금지시키죠. 이때부터 6년동안 비크선생을 상대로 한 슈만과 클라라의 힘겨운 연애가 시작됩니다.
이때 슈만은 수많은 피아노곡을 썼는데, 그중 피아노소나타 3번은 슈만의 참담한 심정을 반영하듯 단조의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어요. 3악장이 시작될 때 들리는 다섯 개 음으로 이루어진 멜로디 도시라솔파는 바로 클라라 이름에서 나온 클라라모토예요.
1838년 슈만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어린이정경 작품번호 15를 작곡해요. 미지의 나라들, 숨박꼭질, 난롯가에서 등 13곡을 들으면 마치 어른을 위한 동화책 한권을 읽는 듯 합니다.
슈만은 비크에게 결혼 동의를 위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죠. 비크선생과의 1년간의 길고 긴 법정 다툼 끝에 드디어 1840년 9월 12일, 클라라가 성인이 되기 하루 전 슈만과 클라라는 결혼합니다.
슈만은 힘들게 이뤄낸 클라라와의 결혼식 전날 밤, 결혼에 대한 감격과 환희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가곡집 미르테의 꽃(Op.25)를 클라라에게 헌정해요. 이 가곡집은 연애시절 둘이 모아둔 괴테, 바이런 하이네 등의 시에 곡을 붙임 26곡이죠. 특히 1번 헌정에서 슈만은 클라라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의 후주에 나오는 선율을 사랑했어요.
가곡 작곡의 시작 – 슈만은 돌연 1940년부터 가곡에 몰입, 무려 140여곡의 노래를 작곡합니다. 괴테 등의 당시 유명한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중 슈만이 고른 것을 기초로 만들죠. 슈만은 피아노를 성악의 곁을 지키는 악기가 아닌 핵심요소로 배치해요. 그래서 그의 가곡을 노래와 피아노의 이중주라고 부릅니다.
<래알꼭알 : 미르테의 꽃> 미르테는 순결을 뜻하는 흰꽃으로 결혼식에서 부케로 쓰이는 꽃이죠. 총 26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번 헌정, 3번 호두나무, 7번 연꽃, 24번 그대는 한송이 꽃과 같이와 같이 주옥같은 작품들이 들어있어요.
사랑의 결실, 첫딸 그리고 첫 협주곡 – 슈만과 클라라는 첫딸 마리를 얻고, 또다른 결실로 피아노 협주곡 a단조(Op.54)를 만듭니다. 슈만이 쓴 곡은 클라라가 연주여행에서 연주하며 홍보했죠. 클라라는 이 곡을 좋아해서 평생 동안 연주한 곡이죠.
우울증의 엄습(비에에 빠진 슈만) - 슈만의 가족사를 볼까요. 그는 사춘기 시절 누아와 아버지, 형과 형수를 잃고 심지어 동년배인 멘델스존과 쇼팽이 불꽃같은 나이에 요절하죠. 이런 중에 슈만은 조울증이 계속되면서 창작력은 점점 감퇴하고 음악신보 일마저 그만두죠. 이후로도 슈만의 우울증세는 계속해서 그를 힘들게 해요..
내면의 목소리(빠르기말,나타냄말) - 슈만은 다른 작곡가들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다양하게 악보에 지시어들을 써놨어요. 예를들어, 좋은 유머를 가지고, 내면적으로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처럼...이렇게요. 또, 슈만의 빠르기말에는 모순들도 보여요. 느리고 빠르게, 최고로 빠르게 등
지휘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 슈만은 40세가 되던해 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초빙되지만, 지휘는 서툴렀고 단원들과도 마찰이 잦는등 결국 계약만료도 되기전에 지휘자 직에서 내려옵니다.
떠오르는 샛별 브람스, 낙하하는 슈만 – 슈만의 지휘자에 내려오기 직전 그의 집에 젊은 청년이 찾아오는데 그가 브람스다. 베토벤의 정신을 계승할 후예를 찾던 슈만은 브람스를 한눈에 알아보고 스무살 신예 브람스를 음악신보에 소개하죠. 결국 슈만은 두명의 음악가를 세상에 알린셈이죠. 바로 쇼팽과 브람스죠. 하지만 브람스를 만나고 반년도 되지 않아 그의 우울증과 환청이 점점 더 심해지죠. 브람스는 슈만의 정신질환과 극단적 망상을 나중에야 알아차리죠. 결국 슈만은 더 이상은 자신의 정신을 통제할 수가 없게 됩니다. 1854년 슈만은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나서, 라인강을 향해 다리에서 뛰어내리지만 다행히 어부들에 의해 구조됩니다. 그러나 구조되자마자 또 뛰어들고, 결국 슈만은 집으로 돌아와요. 충격과 절망으로 넋이 나간 클라라는 당시 임신중으로 일곱 번째 아이를 가진 상태였죠.
슈만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1856년 4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혼자 남은 클라라는 무려 40년을 더 살다가 슈만의 옆에 묻히죠. 1994년 공개된 정신병원의 기록에 의하면 슈만의 병명은 매독이었고, 슈만 말년의 환청이나 환각 등의 증상은 매독 말기의 증상이었다고 합니다.
눈물의 로망스, 건반 여제 클라라
(1819-1896 / 독일, 심장마지로 76살 나이 사망)
낭만 시대를 살다간 수많은 음악가들, 그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독보적인 연주로 무대위에서 갈채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클라라 슈만이에요. 작곡가, 피아니스트, 교육자, 편집자, 편곡자로서 이루어낸 성공과 기록들, 그리고 일과 가정, 사랑과 우정의 시소위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투쟁한 그녀의 삶의 기록들을 따라가 봅니다.
아버지의 피아노 인형 – 독일에서 악기점을 운영하며 피아노를 가르치던 비크는 제자인 마리안과 결혼해서 다섯 아이를 낳는데 둘째로 태어난 클라라는 유일한 딸이었어요. 비크와 마리안은 이혼하고, 비크가 양육권을 가지고 클라라를 키우죠. 어린 클라라는 엄마와 떨어져 엄마 품을 잊은채 아버지의 강압과 억압 속에서 철저하게 살아 있는 연주인형으로 만ㄷ르어져갑니다.
최초의 암보연주, 클라라 센세이션 – 18세의 클라라는 피아노 연주의 역사를 새롭게 씁니다. 그 시대에는 연주자가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는 것이 관례였어요. 그런데 클라라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열정을 악보없이 암보로 연주해요. 오스트리아 황제는 두달후 클라라를 최고의 영예인 황실의 거장 연주자로 임명하죠. 이 타이틀은 18세 이하에게, 외국인에게, 개신교도에게, 여성에게는 수여된 적이 없는 것이었죠.
<래알꼭알 : 클라라의 결혼적 작품들> - 로망승 변주곡 Op.3은 슈만에게 헌정한 첫 작품이고, 저녘음악 Op.6은 쇼팽의 녹턴에서 영향을 받은 2번 녹턴은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클라라의 작품이에요.
하늘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기나긴 법정싸움) - 슈만과 클라라가 사랑을 피우던 때 클라라는 슈퍼스타였죠. 클라라의 음악회에는 티켓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질서유지를 위해 경찰이 동원되었고, 출판사들은 그녀의 작품을 앞다퉈 서로 출판하려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황제가 그녀에게 칭호를 내릴 정도였으니, 아버지 비크의 눈에 슈만이 사윗감으로 눈엥 찰 리가 없죠. 어찌되었든, 클라라는 슈만과 결혼하기로 약속합니다. 당시 법에 따라 결혼당사자가 양쪽 부모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경우, 상소 법원에 제청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슈만과 클라라는 비크에게 소송을 제기하죠. 1년의 기나긴 시간 끝에 법원은 둘의 결혼이 합법이라는 판결을 내리고, 둘은 눈물로 점철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죠.
원더우먼, 클라라의 미션 임파서블 – 둘이 결혼을 하고나서 클라라는 예술가로서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죠. 무엇보다 슈만이 작곡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집안이 조용해야 했고, 이는 클라라가 피아노 연습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어찌되었든 클라라는 결혼후 슈퍼 울트라 원더우먼으로 억척스럽게 살아갑니다.
브람스 하늘이 보낸 사람 – 클라라가 34번째 생일에 무명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스무살의 브람스가 찾아오죠. 그러나 이때 슈만의 환청은 점점 심해지고 정신이 붕괴되는 정도가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죠. 슈만은 라인강에 몸을 던지고, 슈만은 결국 정신병원으로 향하죠. 당시 스물한 살이던 꽃 청춘 브람스는 슈만을 대신해서 클라라 아이들의 아버지 역할을 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그녀를 대신해서 하인들의 월급이나 아이들의 학비, 슈만의 출판물 인세 등 금전출납부를 기록하는 등 지극히 개인적인 가사 일에까지 세심하게 직접 관여해요.
클라라와 브람스 - 둘은 깊이 사랑했죠. 비록 클라라가 브람스보다 14살이나 많았고 두 사람 다 슈만을 소중히 여겼지만요. 클라라는 아마 어느 지점에서는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을 책망한 것 같아요. 게다가 아이가 일곱이나 있는 워킹맘으로서 선택은 별수 없었죠. 아마, 미래가 밝고 젊은 청년을 자신의 불행한 인생에 욱여 넣을수 없다고 생각했을수도 있죠. 결국 클라라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브람스와 평생을 함께 좋은 친구로 남기로 해요.
비극과 환희, 클라라가 목격한 죽음 – 남편 슈만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죠. 4남 4녀중 첫 아들 에밀은 한 살에, 셋째 딸 율리는 27세에 결핵으로, 셋째아들은 몰핀중독으로, 막내아들도 25세에, 결국 8남매중 4명의 자식들이 떠나죠. 둘째아들은 23세에 정신병이 발병하며 평생을 정신병원에 갇혀 살죠. 결국 클라라는 남겨진 아이들뿐만 아니라, 여덟명의 손주와 며느리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죠.
피아노의 여제, 그 영광과 상처 – 클라라는 71세까지 연주자로 활동하죠. 11세에 데뷔해서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1,300회의 연주무대에 선 클라라는 19세기의 마지막까지 연주한 유일한 피아니스트였죠. 병상에 누운 클라라는 손자에게 슈만의 로망스 F#장조를 연주해달라고 부탁하죠. 슈만의 로망스를 마지막으로 들은 그녀는 76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요. 브람스는 11개월이 지난후에 클라라를 따라갑니다.
영원한 사랑, 가을남자 브람스
(1833-1897 / 독일, 63살 나이 사망)
사창가 마을의 학생(가난과 벌이는 음악의 항거) - 브람스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무려 17살이나 연상이었죠. 비록 그녀는 좋은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총명하고 지혜로웠어요. 악기를 연마해서 연주자가 된 아버지의 근면함과 바느질을 꼼꼼하게 했던 어머니의 섬세함은, 훗날 브람스의 성실함과 정교함, 최선을 다하는 장신정신으로 이어지요.
브람스는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날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단 하루 결석한 것이었다고 회고하죠. 브람스는 가정현편이 어려워지자 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 시장에 내몰리죠. 고된 노동, 술주정꾼과 매춘부들의 행각에 충격을 받은 브람스 시골마을에 요양도 다녀옵니다. 이후 16세에 정식 데뷔 연주회를 하고,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의 위치를 다져가기 사작합니다.
브람스의 눈물(현악6중주 1번 2악장) – 슈만이 죽고 브람스와 클라라는 결국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정리하던중 소프라노 아가테 지볼트와 잠시 사랑에 빠지죠. 그러나 결혼을 주저하는 브람스의 마음에 헤어지게 되고 작곡한 현악6중주1번은 브람스의 음악 중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2악장은 브람스의 눈물이라고 불려요. 브람스는 이 2악장을 피아노로 편곡해서 클라라의 41번째 생일선물로 헌정합니다.
함부르크를 떠나 새로운 도시 빈으로
남아있는 자들을 위한 위로(독일 레퀴엠) - 브람스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이별후 죽음에 대해 깊이 있는 고뇌와 통찰을 하며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인 독일 레퀴엠(Op.45)를 작곡합니다.
브람스의 숨겨진 흥, 헝가리안 댄스 – 피아노 포핸즈곡(피아노 듀오: 한 대의 피아노에서 두명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곡)인 헝가리 무곡으로 많은 수입을 올리게 됩니다.
또 다른 이름의 사랑 – 브람스의 어떤 행동들은 정말 이해 불가한 것이 있는데, 브람스가 클라라의 셋째 딸 율리와도 사랑에 빠졌다는 거죠. 브람스는 율리와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알토 랩소디 OP.53을 작곡해서 신부의 노래라고 말합니다.
브람스의 서재에서 – 브람스느 36세에 빈에 정착하고 38세에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갖게 되요. 거실에는 브람스가 좋아한 커피기구가 있고, 위쪽에는 베토벤의 흉상이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어요. 그리고 한편에 죽을때까지 간직한 그랜드 피아노가 있어요. 브람스는 특히 책을 좋아해서 고전주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악보를 들여다보며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연구하여 그들의 자필서명을 모으는 취미도 있었죠.
베토벤의 휴계자 – 슈만이 훗날 베토벤을 잇는 훌룡한 교향곡 작곡가가 될 것이란 예언에 브람스는 부담을 느끼죠. 그의 첫 번째 교향곡 작곡은 무려 21년에 이르러서 그의 나이 43세에 교향곡1번을 완성해요.
위대한 3B/바흐, 베토벤, 브람스 –브람스는 베토벤 정신을 이어받은 교향곡 1번으로 세 개의 B(바흐, 베토벤, 브람스)라는 칭호도 얻죠. 또한 브람스는 초보 작곡가로서의 미숙한 점들이 보이는 초기작품들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극도로 꺼렸어요. 자기 자신에게 매우 엄격했고, 완벽주의자로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악보를 없애거나 아예 출판을 하지도 않았어요.
3B(맥주, 수염, 뱃살) - 브람스를 상징하는 세 개의 단어. 20살의 브람스 초상화를 보면 가녀린 사슴과도 같은 모습이죠. 153센티미터의 키에 수염도 30대 중반이나 돼서야 나기 시작했죠. 50대가 되고 작품이 원숙해져가면서 브람스도 드디어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거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교향곡3번 3악장은 낭만적이고 애수에 찬 현악기의 선율로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는 곧이죠. 프랑스 작가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영화화한 굿바이 어게인이란 영화가 떠오르네요.
어쩌다 보니 얼리 어답터 – 1887년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후 에디슨 축음기로 유명인사들의 목소리를 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여기에 브람스의 목소리와 헝가리 무곡1번의 일부분의 연주가 녹음되기도 하죠.
<래알꼭알 :브람스의 독백 피아노 소품집> 브라스는 말년에 피아노 소품집 Op. 116-119를 작곡합니다. 쓸쓸함과 고독, 체념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을 담아 마치 읇조리듯, 독백하는 듯 노래합니다.
마지막 와인, 고득하지만 자유롭게 – 클라라가 세상을 떠난지 1년후 브람스는 친구 파버가 건네는 와인 한 모금을 간신히 마시고 아 아주 맛있네라고 말하고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무언가, 럭키 도련님인 멘델스존
(1809-1847 / 독일 유태인 집안, 뇌종줄으로 38살 나이 사망)
슈만이 19세기 모차르트라고 말한 사람은 바로 멘델스존입니다. 낭만주의 안에서 고전적 전통을 지향하며 낭만주의의 중심에 서 있어요.
멘델스존의 할아버지는 구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워낙 유명한 철학자였꼬, 아버지는 독일을 대표하는 은행을 운영하였죠. 바로 그 저명한 집의 아들 펠릭스 멘델스존은 1809년 독일 함부르크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1810년 쇼팽과 슈만이 1811년 리스트가 태어났으니 서로 비슷한 또래라고 할 수 있죠.
멘델스존은 어릴 때 함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옮기고 16세에 라이프치히로 이사해요. 멘델스존은 방이 19개나 되는 궁전 같은 집에서 개인교사로부터 여러 언어뿐 아니라 예술, 문학, 철학 등을 깊이 있게 배웁니다.
멘델스존 음악의 특징은 음악 외에서 받은 발상을 음악으로 구현하는 표제음악(Program Music)이었어요. 한여름 밤의 꿈을 작곡하는데 소리를 음악으로 묘사하는 그의 능력은 아주 뛰어나죠. 1829년에는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바흐의 마태 수난곡의 악보를 정리해서 직접 베를린에서 무대 위에 올립니다. 바흐사후 한세기가 넘도록 방치돼 있던 마태수난곡이 멘델스존에 의해서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된 거죠.
멘델스존 사후 1858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딸의 결혼식에서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에 맞춰서 행진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인의 결혼식에서 울려 퍼지게 된 연유죠.
멘델스존의 큰 그늘이 되어주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다행히 이 상실감은 18세의 화가 세실과의 새로운 사랑으로 치유되어갑니다. 그는 세실과 결혼해서 5명의 자녀를 낳았어요. 행복한 결혼생활중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노래의 날개 위에를 작곡하죠.
멘델스존이 21세부터 죽기 2년전까지 약 15년에 걸쳐서 작곡한 무언가 피아노곡집은 비교적 쉽게 쓰인 덕분에 중산층에서부터 빅토리아 여왕까지 집에서 피아노를 즐겨치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요. 무언가집은 8곡씩 총6권으로 48개의 곡이 있습니다.
멘델스조은 38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바로 그의 소중한 누이 파니가 세상을 떠난지 불과 6개월 후였죠.
그는 38년의 짧은 생애 동안 750곡을 작곡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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