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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추천 책

넘버스 - 세상을 바꾼 다섯개의 수(ebs)

by 책과 피아노 2018. 2. 6.


넘버스.hwp




책소개
수학의 본질을 밝히는 다섯 개 수들의 경이로운 탄생과 성장의 드라마!
수학 대중화에 기여해 온 EBS 다큐프라임 《문명과 수학》의 제작진이 다시 뭉쳐, 2년간 15개국에서 촬영하고 국내외 저명한 수학자들이 제작에 참여한 동명의 다큐 《넘버스》를 바탕으로 엮은 인문X과학 교양서 『넘버스』. 대한민국콘텐츠대상 국무총리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검증받은 다큐의 내용을 중심으로, 영상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했던 수학적 자료를 보강해 책으로 펴냈다.
인류 지성의 보고이자 문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다섯 개의 수 'Π, ∞, X, 0, I'. 흔히 ‘수(數)’라고 하면 일상에서 쓰는 아라비아 숫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수학에서는 다양한 문자들이 수로 사용된다. 그중에서도 'Π, ∞, X, 0, I'는 인간의 문명과 수학의 역사를 이끌어 온 대표적인 수이자 학자들의 숭고한 도전으로 이루어낸 지성의 보고로 꼽힌다.
이 수들의 탄생과 비밀을 둘러싼 아르키메데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갈릴레이 갈릴레오, 칸토어, 알콰리즈미, 오마르 카이얌, 갈루아, 가우스 등 천재 수학자들의 광기어린 도전과 좌절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이 책에는 국내외의 저명한 수학자, 수학역사학자들의 고증과 조언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수학의 본고장인 이란, 중국, 그리스, 독일 등 총 15개국을 넘나들며 촬영한 생생한 이미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의 김홍종 교수가 총 자문을 맡았으며, 2010년 필즈상 수상자인 세드릭 발라니, 2014년 세계수학자 대회에서 만난 세계 수학 석학들, 스티븐 호킹과 함께 ‘특이점 정리’를 완성한 이론물리학자 펜 로즈 등이 참여해 대중 수학서의 전문성을 높였다. 세상을 바꾼 다섯 개의 수를 통해 인간 지성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이 책을 통해 수학을 흥미진진하게 이해하고, 그 이해를 넓혀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더 나아가 그 고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소개
EBS 넘버스 제작팀
저자 : EBS ‘넘버스’ 제작팀
저자 EBS ‘넘버스’ 제작팀은
- 김형준 PD
1997년 EBS에 입사했다. 음악과 여행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세상을 배웠고 최근에는 과학 다큐멘터리의 재미에 빠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스페이스 공감], [수학대기획2-생명의 디자인], [문명과 수학], [마테마티카-수학의 원리], [빛의 물리학], [넘버스] 등이 있다.
- 김미란 작가
TV 다큐멘터리를 주로 집필했다. 초기에는 사람과 자연에 관해 최근에는 인문과 과학에 관심을 쏟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시대의 초상], [자연다큐멘터리 바람의 혼 참매], [문명과 수학], [빛의 물리학], [넘버스] 등이 있다.
감수 : 김홍종
감수자 김홍종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U.C.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독일 막스플랑크수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수학을 자연과 예술, 민주주의와 공평한 분배, 암호와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낸 교양 강의 ‘문명과 수학’을 진행했다. 주요 저서로는 『문명, 수학의 필하모니』(교육부 장관상 저술부문 수상), 『미적분학 1, 2』, 『현대수학입문』(공저), 『과학으로 수학보기, 수학으로 과학보기』(공저) 등이 있으며, 서울대학교 교육상, 대한수학회 교육상 등을 수상했다.

내  용
감수의 글 – 6
많은 사람이 數(수)란 셈을 하는 데에만 쓰이는 것으로 좁게 해석하지만, 넒은 의미의 수는 사물의 이치와 조화를 뜻한다. 우리마로 셈은 헤아림과 그 어원이 같다. 그러므로 수에 배울 학이 붙은 수학은 곧, 사물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문 | 인간의 논리와 사고를 확장시킨 다섯 개의 수 –10
자연을 커다란 책에 비유한다면, 그 텍스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거기에 쓰인 언어를 알아야 할 것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주장으로는 그 언어가 바로 수학이다. 결국 수학이란 추상적인 사고과정을 거쳐 자연 속에 내재한 패턴을 발견하고 증명으로 정리를 세우는 학문이라 할 수 있겠다.
제1부는 원주율 파이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출발점은 고대 이집트, 그리스,중국의 수학자들로부터 시작된 ‘원과 정사각형의 관계’다.
파이를 통해 초월의 관념을 만났다면 그다음은 무한이다. 무한대 또는 영어로 인피니티라불리는 기호는 신의 경계로 접어든 인간 정신의 표현이었다. 무한을 셀수 있는 것으로 인간계에 귀속시킨 칸토어. 신경쇠약에 쇠달리던 그의 말년은 정녕 신의 영역을 침범한 자가 짊어져야 했던 대가였을까?
제3부에서는 방정식의 역사가 전개된다. X로 대변되는 미지수의 비밀을 밝힐 지적 탐험이다.
네 번째 수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0이다. 공백, 없음을 뜻하는 단어인 순야, 인도인이 이러한 관념을 0이라는 수로 표현했을 때, 그들은 이후에 펼쳐질 수학의 격변을 예상이나 했을까?
마지막으로 우리의 지적 여정이 향하는 종착역은 허수 “i”다. 빅뱅 우주론자 조지 가모의 보물찾기 수수께끼로 시작되는 제5부는 추리하듯 답을 찾아가며 이 수가 지닌 매력을 드러낸다.    

제1부 하늘의 수 π (원주율 3.14159........)
원과 정사각형의 비밀코드, 원주율 파이 (원의 지름에 대한 둘레의 비율)
중국의 서쪽 변방인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바로 이곳 투루판에서 우리는 아스타나 고분군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발견된 무덤 가운데 한 곳에서 아주 귀한 그림이 하나 나왔는데, 널리 알려진 복희여와도가 그것이다. 어찌어찌하여 이 그림을 만나려면 현재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가야 한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뱀의 다리를 서로 꼬고 하나의 치마를 입은 두 존재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복희와 여와, 이들은 중국신화에 등장하는 창조신들이다. 해, 달, 별도 함께 만든 이 신들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데, 오른쪽 복희의 손에는 구라고 불리는 직각 자(곡척)가, 왼쪽의 여와에게는 규라고 불리는 컴퍼스가 쥐어져 있다. 만물을 창조한 이들이 가진 도구가 왜 하필 자와 컴퍼스일까? 중국인들은 그것들로 표현되는 형상속에 만물의 근원적 생성 원리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하늘과 땅을 재는 법
주비산경에 따라 곡척을 접으면 밑변3, 높이4, 빗변은 5가 된다. 3,4,5는 가장 작은 구고현값이다. 뒤이어 완전한 증명이 나온다. 어딘지 낯익지 않은가? 그렇다. 피타고라스 정리다. 이 말은 고대 중국인이 그리스인보다 이미 수백년 전에 구고현정리를 발견했음을 의미한다.
주나라가 세워진 때는 기원전 11세기였다. 그런데 주공의 시절부터 500-600년이 지나면, 그리스에서 우리는 원과 정사각형에 몰두한 또 하나의 인물과 마주하게 된다.
히포크라테스는 직선 도형을 이용해서 최초로 곡선 도형의 넓이를 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원적문제의 실마리가 풀린 것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아마도 이 증명 이후로 ‘원과 같은 넒이의 정사각형’을 구하는 일도 쉽게 해결될 것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이 문제가 2000년 넘게 풀리지 않을 수학의 골칫거리가 될 거라 생각한 이가 몇이나 됐겠는가?
다빈치가 들여다본 원적문제
원적문제의 역사에서 독창적인 인물이 또 나타난다. 15세기 바로 레오나르드 다빈치다. 그가 원과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을 작도하는데 사용한 방식은 매우 참신한 것이었다. 그가 직접 측정한 인간은 이전에 나온 방식과는 아주 달랐다. 배꼽을 하늘의 중심으로 해서 원을 그리고, 성기를 땅을 중심으로 삼아 네모를 그렸다. 사람의 키는 두 팔을 벌린 길이와 같다. 원과 정사각형의 바닥을 맞추면 두 사람이 겹친다. 르네상스의 인강형, 비트루비안 맨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후대 학자들이 넓이를 재 본결과는 정사각형이 153.51이었고 원은 153.94였다. 물론 정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것은 이때까지 한 인간이 닿을 수 있었던 가장 가까운 값이었다.
아르키메데스의 원의 측정에 대하여
욕조에서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기쁜 나머지 알몸으로 뛰쳐나와 유레카를 외치던 사람. 아르키메데스. 그는 연구 끝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놓는다.
“원의 넓이는, 밑변이 원둘레와 같고 높이가 반지름과 같은 직각삼각형의 넓이와 같다” 이런 주장을 하는 그의 방식은 누구나 알기 쉽게 증명된다.
또한, 그는 더나아가 원주율을 계산한다.
지름이 1인 원에 각각 내접·외접하는 정육각형이 있다. 지름이 1이므로 반지름은 1/2이다. 정육각형은 6개의 정삼각형이 모여 이루어진 것으로 정육각형 둘레의 길이는 1/2 * 6의 계산에 따라 3이된다. 외접한 정육각형의 둘레도 피타고라스정리를 이용하면 구할수 있는데 이때의 둘레는 3.4641이다. 따라서 지름이 1인 원둘레는 3과 3.4641사이에 있다. 다음에 내접하는 정육각형을 쪼개 정십이각형을 그려보면 둘레는 3.1058이고 외접하느 정십이각형의 둘레는 3.2154다. 이렇게 각을 계속 쪼개서 가다보면 점점 파이 값에 다가가갈 것이다. 무려 94각형까지 그렸다. 그래서, “모든 원의 둘레와 지름의 비율은 3.1408과 3.1429사이에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아르키메데스는 원의 넓이와 둘레, 구의 부피 등을 구하는데 있어서 돌파구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그 돌파구란 원주율이다. 원주율이 변하지 않는 수라는 것, 그 수가 원의 넓이든 둘레든 구의 부피든 항상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도 그가 증명해낸 사실이다.
작도 문제를 방정식으로 해낸 데카르트
아르키메데스의 원은 그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혁신적인 원적문제 접근법은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지만 끝내 원과 같은 정사각형을 구하지는 못했다. 아르키메데스 이후 근 2,000년이 지나고서야 인류는 하나의 실마리를 얻게 된다. 데카르트. 그의 혁신적인 생각이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17세기 데카르트는 좌표를 생각해낸다. 그동안 점은 그저 끝없는 허공 어딘가에 위치한 것일 뿐이었던 것을, 그는 좌표를 통해 방정식으로 표현해냈다.
좌표평면에 원을 하나 놓아보자. 원점을 중심으로 반지름이 4인 원이다. 원둘레 어디 점이 있든 x2+y2=4가 된다. 피타고라스 정리다. 이쯤되면 원과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을 그리는 일도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
땀 뻘뻘흘리며 작도를 하려 애쓰기보다는 간편한 수식으로 대신해서 답을 얻을 수 있다. 훌룡한 발상이었다.
가우스, 폰 린데만 / 파이 – 방정식의 해가될수 없는 수
데카르트의 이러한 유산은 그가 죽고 120여년뒤 또 다른 천재에게로 이어진다. 수학의 왕자 가우스다. 가우스는 정n각형의 작도를 Xn – 1 = 0이라는 방정식을 푸는 문제로 전환했고, 이것의 해를 구한다면 자와 컴파스만으로 작도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원의 넓이는 반지름*반지름*파이이므로, 반지름의 1인 원의 넓이는 곧 파이고, 따라서 같은 넓이를 가진 정사각형을 작도하려면 한변이 루트파이인 정사각형을 작도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X2 – 파이 = 0은 해를 가질수 있는가에 답해야 한다.
그러다가 1882년 페르디난트 폰 린데만이 파이가 초월수임을 밝혀내며 방정식의 근이 될수 없는 수라는 걸 증명했다. 결국 작도할수 없는 것이다.
결론은 파이는 인간의 힘으로 결코 닿을 수 없는 존재이며, 따라서 원적문제는 풀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라는 결론을 내게 된다.

제2부 천국의 사다리 ∞
끝없는 수를 세는 방법. 수학자의 천국, 무한
슈베르트의 '마왕'은 그의 가곡들 중 대중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곡으로 슈베르트가 18세때 작곡한 통절형식의 가곡이다.
'마왕'은 1782년 작시된 괴테의 시를 가사로 하여 작곡된 가곡이다. 슈베르트는 이 괴테의 시를 읽고 굉장히 흥분하여 단숨에 곡을 써내려갔다고 전해진다. '마왕'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해설> 어두운 늦은 밤 바람을 가르며 말타는 이 누구인가?
그는 아이를 품에 안은 아버지다.
아비는 팔을 한껏 감아 아이를 안고 간다.
안전하고 포근하게 안고 말을 달린다.
<아버지> 나의 아들아,
왜 그렇게 무서워하며 얼굴을 가리느냐?
<아들> 아버지, 마왕이 보이지 않으세요?
망토를 두르고 왕관을 쓴 마왕이요.
<아버지> 아들아, 그건 그저 엷게 퍼져있는 안개란다.
<마왕> 사랑스런 아이야, 나와 함께 가자!
함께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꾸나,
모래사장에는 알록달록한 꽃이 피어있고,
우리 어머니는 황금 옷도 많이 있단다.
<아들> 아버지, 나의 아버지,
저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내게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아버지> 진정하거라, 아가야. 걱정 말아라.
단지 마른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란다.
<마왕> 함께 가지 않겠느냐, 귀여운 아가?
내 딸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내 딸들이 너와 함께 밤의 춤을 출 것이야,
잠들 때까지 노래하고 춤을 출 것이란다.
<아들> 아버지, 아버지, 보이지 않으세요?
저 음침한 곳에 있는 마왕의 딸들이요.
<아버지> 아가, 아가, 아무것도 아니란다.
잿빛 바래버린 늙은 버드나무 가지일 뿐이란다.
<마왕> 네가 정말 좋구나,
사랑스러움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만약 오기 싫다면 억지로라도 데려가야겠다!
<아들> 아버지, 오 아버지,
저를 끌고가려 해요!
마왕이 제게 상처를 입히고 있어요!
<해설> 아버지는 공포에 질려 말을 더 빨리 몰아댄다.
신음하는 아이를 팔에 안고서,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
사랑하는 아들은 이미 품 속에서 죽어 있었다.
피아노 반주가 시작된다. G단조의 빠른 리듬은 강렬하고 급박하다. 높은도와 낮은 도, 8도 화음으로 내지르는 셋잇단음표의 맹렬한 리듬이 폭풍속 다급한 말발굽 소리를 묘사한다. 피아노 전주에 잠깐씩 끼어드는 음률, 말발굽 소리를 묘사하는 음률과 다른 낮고 둔중한 음색으로 잠깐씩 나타났다가 사라지던 멜로디. 어쩌면 불길한 암시처럼 다가서는 존재를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왕, 단지 어느 가곡의 노랫말일 뿐이라고? 어쩌면 이것은 아무도 본 적 없고 끝을 알 수 없는 수의 세계를 비유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한 인간이 두려움에 떨며 다가선, 무척이나 낯설고도 치명적인 매혹으로 가득한 어떤 세계...
게오르그 칸토어
19세기 후반이 되면 무한에 대한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건, 아니 사람들이 출현한다. 그중에 주인공은 단연 이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신을 사랑했던 젊은이. 어떻게 하면 신의 생각을 인간의 ᄄᆞᆼ에 드러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자신이 아주 잘하는 방법으로 그것을 해보자고 결심했던 수학자, 게오르그 칸토어였다.
1,2,3,4,5,6,7....이런 식으로 무한히 이어지는 것을 무한수열이라 한다. 이를 더한 것이 무한급수다. 1+2+3+4+5+6+7+... 이 덧셈의 끝은 뭘까? 무한대다. 이렇게 무한급수의 합이 무한히 많아질 때 우리는 그 결과를 발산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래의 무한급수는 어떨까.
1/2+1/4+1/8+1/16+1/32+.....언뜻 보면 이 답도 무한대가 될 것같다. 그런데 한번 분수를 소수로 바꿔서 보면, 0.5+0.25+0.125+0.0625+0.03125+..... 무한히 늘어나는게 아니라 끝없이 1로 다가서는 걸 알수 있다. 이처럼 무한급수의 합이 발산하지 않고 특정한 수로 다가서는 것을 수렴이라 한다. 칸토어는 여기서 무한의 실체를 느꼈다. 칸토어가 무한의 세계를 열어보인 것은 무한을 세는 법을 알게 되면서였다.
 무한으로 가기 전에 먼저 유한을 알아야 한다. 앞서 갈릴레오가 든 예의 또 다른 버전을 보자. 한 버스 안에 빈 좌석들이 있고 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때 빈 좌석과 사람들 중 어떤 것이 더 많은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일대일로 앉혀 보면 안다. 지금처럼 사람이 의자보다 하나 더 많으니 사람의 집합과 빈 좌석의 집합에서 사람 쪽이 더 개수가 많은 것이다. 이처럼 집합의 원소들을 일대일로 대응하면 어느 한쪽의 크기가 더 크고 작은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한한 집합은 어떨까?
짝수들의 집합과 홀수들의 집합 모두 자연수 집합의 부분집합이지만 자연수와 짝수, 자연수와 홀수는 모두 일대일 대응이 된다. 두 집합이 일대일 대응인 된다면 집합들의 크기는 같은 것이다. 따라서 자연수와 짝수, 자연수와 홀수 집합의 크기는 같다.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 고대 그리스때부터 내려온 그 공리의 문턱에 무한은 번번이 걸려 넘어갔다. 짝수는 자연수의 부분이니 자연수와 같을수 없었다. 자연수는 정수의 부분, 정수는 또 유리수의 부분이니 결코 같을 수 없었다. 그런데 칸토어가 일대일 대응으로 그 문턱을 넘어 버렸다. 이제 자연수 집합의 크기는 정수, 유리수의 집합과 같다. 기존의 세계가 그려놓은 우주를 칸토어가 훌쩍 넘어가 버린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차원이 다른 것들도 일대일 대응이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것들이 서로 같다는 것이다. 한 직선위의 모든 점들과, n차원의 연속공간에 있는 모든 점들은 일대일 대응이 된다. 그래서 1차원의 선에 있는 무한개의 점들과 2차원 사각형 안에 있는 무한개의 점들은 일대일 대응이 되어 서로 같다. 결론은 나뭇잎 위의 점과 지구 표면의 점도 개수가 같다고 할수 있는 것이다. 칸토어는 끝없이 커지거나 끝없이 작아져서 그 끝을 볼 수 없는 무한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유한한 우리가 두려워 발 디디지 못한 영역, 그 마왕의 세계를 명징한 인간의 이성으로 밝혀 준 것이다.
 
제3부 자유의 수 x
한 혁명가의 유서에 남겨진 5차방정식의 비밀, 미지수 엑스
우리는 항상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한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며, 아는 것을 설명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욕구에서 탄생한 방정식은 복잡하고 복합적인 현상에 놀랄만큼 정확한 예측을 해 주었다. 규정된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 미지수 x를 통해 모르는 양을 나타내고 나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사물도 지칭할수 있게 되면서, 인류문명은 거대한 관념적 진보를 이룰수 있었다.
소 5마리와 양2마리가 10냥이다. 소 2마리와 양5마리는 8냥이다. 소와 양은 각각 얼마인가?
방정식은 우리가 이미 아는 것 속에서 모르는 것의 정체를 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미지수라 부른다.
지금은 이란이지만 예전에는 페르시아로 불리던 땅, 1935년 국호를 바꾸면서 페르시아는 전설속 나라가 되었다. 이곳에서 방정식의 역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수학자이자 시인 카이얌을 만나게 된다.
카이얌은 x의 세제곱 3차원공간 3차방정식을 풀게 된다. 그가 찾은 3차방정식을 유형별로 정리하면 모두 14종류뿐이었다.
방정식의 건물에 올라갈 땐 열쇠가 필요하다. 한 층 한 층의 문을 여는 그것이 바로 근의 공식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2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기억하는가? ax2+bx+c=0의 꼴이다. 이것으로 모든 2차방정식은 답을 얻을 수 있다. 3차방정식 ax3+bx2+cx+d=0의 근의 공식도 마찬가지다.
700년만에 3차방정식의 열쇠를 찾은 이는 카르다노였다. 3차가 풀리지 머지않아 4차도 정복된다. 카르다노의 제자인 페라리가 해냈다.
갈루아, x의 여정을 끝내다.
1832년 5월 30일 파리 인근의 숲속, 심판관이 손수건을 떨어뜨려 신호를 보내자 한발의 총성이 고요한 새벽을 찢는다. 스무 살 청년의 상대는 명사수였다. 우리는 이미 그 대결의 결과를 안다. 갈루아는 복부에 총을 맞고 쓰러져 그대로 방치됐다. 인근의 농부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복막염으로 이튿날 세상을 떠났다. “울지마, 스무살 나이에 죽으려면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짜내야 하니까”이는 그가 죽기전 동생에게 남긴 말이다.
평온한 날 햇빛을 받으며 바하의 인벤션 6번 E장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끌어주고 따라가는 이 선율은 참 아름답다. 높은음자리와 낮은음자리의 음표들이 서로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며, 현란하지 않고 단정한 음률을 피워 올린다.마음을 차분히 정돈해 주는 이 음악에 담긴 것이 바로 대칭이다. 그런데 신기하다. 방정식에도 대칭이 있다는 것이다.
갈루아가 편지에 복구한 논문에는 충격적이 결론이 들어있었다. 5차방정식의 해법을 찾아 떠난 미지수 X의 여정이 생각지도 못한 종착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급히 쓰느라 편지를 고치고 지운 흔적에는 타들어 갔을 그의 심사가 보인다. 300년 가까이 안풀린 5차방정식의 비밀,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신의 본분을 알았지만, 결투전 갈루아가 보낸 마지막 하루는 수백년의 어둠을 비추는 불빛이 되었다.
5차방정식을 달랐다. 결국 열쇠가 없어 더 이상 상자를 열수 없었다. 이는 곧 근의 공식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5차에도 근은 존재한다. 2차,3차,4차 방정식과는 달리 어떤 경우에라도 근을 구할 수 있는 만능의 열쇠인 근의 공식만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갈루아는 그렇게 답이 없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해냈다.

제4부 신의 손짓 0
고대 그리스와 중세 유럽을 공포로 물들인 무(無), 영
푸리는 인도 동부 벵골만 가까이에 있는 도시다. 15만 인구가 사는 이곳은 해마다 7월경이면 온통 시끄러워진다. 걸어서, 혹은 차를 타고, 몇 날 며칠을 걸려 사람들이 푸리로 향하기 때문인데, 이는 ‘라트 야트라’라는 수레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축제의 풍경을 보고 있자면 인구 12억에 3억이 넘는 신이 사는 나라답다는 생각이 든다.
저 수레들이 축제의 중심이다. 라트 야트라의 라트가 바로 산스크리트어로 수레를 뜻하는 말이다. 많은 인도인이 저 수레의 여정에 참가하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여긴다니, 암튼 대단한 수레임이 틀림없다. 수레에는 둘레가 3m에 달하는 바퀴가 16개나 달려 있다. 우주가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끊임없니 순환한다는 표식이라는데, 이 수레를 만지기만 해도 수년간 참회를 한것이라 마찬가지라 한다. 수레를 둘러싼 축제 열기를 바라보다가 문득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오를지 모르겠다. 인생은 그 끝없는 순환의 바퀴가 잠시 스쳐가는 시간일까? 그처럼 만물이 끊임없이 왔다가 사라자는 세계는 공해 보이지 않는가? 그런 인도인의 세계관이 무엇을 낳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인도 수학자들은 순야, 즉 무로 어떻게 수학을 할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동야문화권에서는 무와 비 공간의 개념을 거부하기보다는 받아들였다. 그래서, 무 또는 0이 실제로는 값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실제로 다룰 수 있는 수학적 개념이란 것을 말이다.
0은 모순을 껴안았다. 없음이 절대적인 무가 아닌 존재하는 것임을 인정함으로써 순야가 수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브라마굽타는 바로 그 0을 1과 2같은 수처럼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며 계산 속으로 끌어들인 인물이다.
재산에 크기가 밭은 빚을 더하면 0이 되고, 재산에서 재산을 빼면 0이 된다는 논리다. 이것으로 수학에 멋진 일이 생겨난다. 바로 이항이 가능해지면서 방정식도 풀 수 있게 된 것이다.
힌두인의 그러한 정신적 풍토에서 태어난 0은 이제 또 다른 곳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0은 인도를 떠나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왔다. 로마교회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당시 쓰던 숫자는 인도와는 전혀 달랐다. 문자를 숫자로 썼는데 1부터10까지는 ⅠⅡⅢ.....ⅪⅫ으로 그 이후의 단위들은 L(50), D(500), M(1000)등으로 표기했다. 그래서 로마 간판을 보면 아래와 같다
10세기 말 유럽인들은 이러한 방식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지만, 한 젊은이만이 남몰래 갈등을 겪었다. 그는 바로 이교도 학문에 빠진 제르베르 도리악이라는 사제로, 훗날 카톨릭의 139대 교황이 되는 문제적 인물이다. 제르베르는 로마 카톨릭 수장이었지만 사실 학자에 더 가까운 사람으로 유럽에 소수점을 처음 도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후 2세기가 흘러 1202년 피보나치가 산반서를 펴낸다. 그 내용은 계산판의 책이란 제목처럼 겉만 보면 주판에 대해 쓴 것으로 알기 쉽지만, 실은 인도-아라비아 숫자의 사용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첫장을 넘기면 첫머리가 이렇게 시작된다.
“아홉 개의 인도 숫자는 9 8 7 6 5 4 3 2 1이다. 이 아홉 개의 숫자와 함께 있는 기호0을 아랍인들은 어떤 수와 붙어 있든 상관없이 제피룸이라 부른다.” 이것이 최초로 유럽에 소개된 0이었다. 1부터9 그리고 0. 그는 이것만 있으면 어떤 큰 수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로마 숫자처럼 일,십,백,천,만 같은 자릿수마다 새로 문자를 만들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인쇄기술이 형편없던 시절이던 탓에 이 산반서는 아주 더디게 세간에 알려진다. 그렇게 묻히는가 싶었던 0과 아홉 개의 숫자들은 어떤 이유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필요였다. 세상은 이미 그 수들을 필요로 할 만큼 진보하고 있었다.

제5부 천공의 수 I (허수)

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
2만년전 동물 뼈에 새겨진 흔적 – 브리쉘에 위치한 국립자연사박물관에는 2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뼈가 있는데, 이 뼈에 일정한 간격으로 새겨진 빗금이 있다. 이것이 수학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유물이라 할수 있다.
문명발달과 수의 진화 –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칼쿨리 항아리는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유물로 현재의 이란 수사 지역에서 출토된 것이다. 진흙으로 만든 항아리의 안은 비어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여기에 넣어 놓았다. 겉면에는 자기 소유라는 표시도 해 놓았다. 그런데 양을 어떻게 이 작은 항아리에 넣었다는 얘기인가? 바로 대용품을 썼다. 돌멩이였다. 통통한 양, 새끼 양, 갈색머리 양, 크기와 모양에 상관없이 각각 돌멩이 하나로 쳤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자연수만으로는 부족해졌다. 공동생산, 공동소비 방식으로 살던 원시시대에 개인의 소유가 늘어나면서 분배의 문제가 생긴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 자연수를 자연수로 나눈 수 분수가 등장한다. 이렇게 인류는 분배(나누기)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그리스인, 무리수를 발견한다 – 그리스“원론”은 공리를 하나씩 쌓아 올려 진리의 규명에 이르는 그리스적 사고방식이다. 수학에서 그러한 논리성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자와 컴퍼스였다. 이 도구들로 그릴 수 있는 기하학 도형만이 공리를 만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은 그처럼 자와 컴퍼스만으로 고집스럽게 수학을 건설했다. 그런데, 자와 컴퍼스로 쌓아올린 이 완고한 세계가 뜻밖의 수를 찾아내기에 이른다. 한변이 1인 직각삼각형을 놓고 고민에 빠졌던 사람을 알고 있는가? 피타고라스학파의 히파수스는 왜 이 삼각형의 빗변 길이가 안 나오는지 좀체 알 수 없었다.
그리스인에게 분수란 자연수와 자연수의 비로 이뤄지는 것이었다. 1/2은 1을 2로 나눈 것 즉 0.5다. 이렇게 나눠서 딱 떨어지지 않는다면 1/3처럼 1을 3으로 나눴을 때 0.33333.......같은 패턴으로 계속 순환해야 한다. 그런데 히파수스가 본 수는 무엇인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루트2이다. 나누어 딱 떨어지지도 않고 순환하지도 않는 수였다. 오직 유리수밖에 모르던 그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게 무리수였던 것이다.
방정식 속에 상상의 수, 허수
방정식에 통달한 카르다노였지만 그도 이상한 벽을 느낄때가 있었다.
더하면 10이고 곱하면 40인 두수는 무엇인가?
참 간단해 보인다. 일단 더해서 10이 되는 두 개의 수를 찾아보자. 1과2, 2와8, 3과7, 4와6, 그리고 5와5. 자연수안에서는 이것뿐이다. 그런데, 어느수를 곱해도 40이 나오지 않는다. 가장 큰수라고 해봐야 5와5를 곱했을 때 나오는 25다. 카로다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해결점을 찾아간다. (5+x)(5-x) = 40인 것이다. 일단 둘이 더해서 10을 만드는 자연수 5와 5를 가지고 5에 뭔가를 더하고, 늘어난 만큼 다시 5에서 빼면 두 개의 수를 얻을수 있고, 그 수들의 곱을 40으로 놓자는 것이다. 이것을 계산하면 x2(제곱) = -15가 나온다. 제곱해서 음수가 되는 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정신적인 고통을 무시하면 이들 두수를 곱했을 때 40이 되므로 확실하게 조건을 만족시킨다”라고....
결국, 5+(루트-15)와 5-(루트-15)를 곱하면 신기하게도 40이 된다. 쓸모없기는 한데 수학적으로 미묘하고 세련되게 사용할 수 있는 수, 루트-15다. 루트-15는 루트15 곱하기 루트-1. 루트-1 곧 I로 한수, 궤변적인 수, 불합리한 수, 결국 허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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