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 ||||
지 은 이 |
박경철 | ||||
출 간 일 (읽은 날) |
2011-10-05 (2012년 1월) | ||||
분 량 |
399쪽 | ||||
종 류 |
자기계발 | ||||
비 고 |
최 고 |
만 족 |
좋 음 |
보 통 |
기대이하 |
< 책 소개 >
시골의사 박경철이 제안하는 혁명가의 삶!
시골의사 박경철이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던지는 자기혁명의 메시지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청년은 세상을 어떻게 읽고 소통해야 하는지, 청년은 자기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지금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등에 대한 치열했던 고뇌와 시행착오의 기록을 담고 있다. 실천하는 지식인이자 비판가이며 청춘의 멘토로 떠오른 저자가 지난 6년간 청년들과 나눈 소통과 교감의 기록을 엮었다. 아프지만 청년들이 꼭 알아야 하는 냉정한 현실을 전하며, 스스로 만들어낸 한계의 경계를 허무는 '혁명가'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아찾기, 사회인식, 시간활용, 책읽기, 글쓰기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 저자 소개 >
현직 외과의사. 본명보다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투자전문가이다. 2005년 의사로서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겪은 사연을 담아 펴낸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2》로 뜨거운 화제를 모으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원래 그보다는 '국내 최고의 기술적 분석가'이자 '증권사 직원들에게 주식을 가르치는 외과의사'로 더욱 유명하다. 특히 그가 중앙 일간지나 유력 잡지 등에 기고하는 다양한 주제의 칼럼들은 유려한 필체와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통찰이 돋보인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실제 여느 연예인 못지않게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 내 용 >
프롤로그 당신은 지금 당신 삶의 주인인가!
1장 나를 찾아가는 시간
ㆍ 방황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신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지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일을 하던 금하지 않겠노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사람은 누구나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닌다. 그런 이유로 파우스트바사처럼 겉보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춘 듯한 사람도 나름의 고민으로 방황한다. 고민과 방황은 마치 숨 쉬고 밥 먹는 것처럼 우리와 함께한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방황하며 노력하는 것, 주저않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대신 노력하지 않는 방황이나 방종, 즉 욕망의 좌충우돌은 생에 대한 모독이다.
ㆍ 낯선 것을 통해 본질을 통찰하라
이렇게 해서 새로이 형성된 태도들은 막 거푸집에 부은 시멘트반죽과 같아서 습관하하려면 오랜 기간 의식적인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만약 생각만 가득하거나, 설령 새로운 생각을 정리했다 해도 그것을 습관으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행동으로 연결하지 못한 생각’즉, 관념에 불과하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을 행동으로 연결시키기 어려운 이유는‘저항의 중간지대’라는 방해물이 있기 때문인데, 이것은 나쁜 습관이 새로운 좋은 습관을 밀어내려는 무의식의 장난을 가리키는 말로, 육체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육체적인 것을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갑자기 운전을 배우기로 마음을 먹엇다고 가정하자. 운전연습 한 시간 만에 머리는 지끈거리고, 뒷목이 뻐근하고, 몸살이 난다. 이 때 두려움과 피곤과 몸살이라는 저항의 중간지대(무의식의 장난)를 건너가게 한다. 유혹에 저서 그 과정을 멈춘다면 불과 얼마전까지 새로운 도전이었던 운전은 좌절의 대상이 되고, 이후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한 새로운 환경을 만났을 때 그것에 다시 도전하고 저항의 중간지대를 극복하려는 나의 의지 또한 현저하게 약화된다. 나를 나쁜 습관의 포로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심리적인 문제다. 스스로 어떤 목표를 세우고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계획을 세울 때를 보자. 처음에는‘그래, 결심했어’하고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음은 새벽녘의 모닥불처럼 사그라들게 된다. 바로 심리적 저항의 중간지대가 존게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의식의 장난이다. 우리가 의식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마치 정교하게 편집된 한 편의 영화와 같은 것이다. 우리의 자아는 메이킹 필름을 편집하는 가위다. 스스로 자아라고 믿는 의식은 매끄럽게 연결하기 위해 무시해도 좋을 만한 것들만 남기고 기억을 싹둑싹둑 잘라버린 결과물이다. 이 때 잘려나간, 버리고 싶은 기억의 필름들은 의식의 호수 아래로 가라앉는다. 하지만, 이것은 실체하는 것이므로 마치 호수에 던져진 시신처럼 언제든 수면위로 떠오를 기회만 엿보고 있다. 만약, 나의 내면이 단단하게 정리되고 의식이 집중되어 망상의 찌꺼기가 파고들 틈이 없다면 그것은 강바닥의 진흙으로 퇴적되고 만다. 그러나 내 의식이 산만하거나 다른 것에 유혹되어 집중하지 못할 때는 순식간에 수면위로 떠올라 의식과 뒤섞여 버린다. 편집 안된 필름을 보면 화면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결심할 때는 반드시 주변을 먼저 바르게 정돈해야 한다. 난잡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없듯이 새로운 습관을 만들고 새로운 태도를 형성하고 싶을 때는 나의 의식을 방해할 만한 것들, 즉 심리적 저항의 중간지대를 우선 걷어내버려야 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좋은 습관을 만드려는 노력보다 나쁜 습관을 버리려는 의지요, 노력이다. 우리는 먼 길을 가는 여행자다. 그런데 그 긴 여정을 떠나면서 모래주머니를 주렁주렁 달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잘 돌아보면 우리의 어깨에는 나쁜 습관이라는 모래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당연히 걸음은 무겁고 몸은 지친다. 이 때 아무리 좋은 습관이라는 물을 마셔도 걸음은 점점 무거워질 뿐이다.
길을 떠나는 자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불필요한 짐을 내려놓는 것이듯, 우리도 나쁜 습관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생각은 문자의 정교한 조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내 생각의 범위는 내가 알고 있는 문자의 범위이고, 생각은 그 문자의 조합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나의 생각을 넓히기 위해서는 많은 문자를 알고, 그것을 조합하는 방법을 익혀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문자로 된 것들을 익히고 다른 사람의 표현방식(사유)을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이유다. 나아가서는 소위 ‘문·사·철’이라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는 것이다.
ㆍ 침묵은 가장 능동적인 대화다
ㆍ 극도의 몰입, 배움의 즐거움
농담처럼 얘기하는 孔子님 말씀이 아직까지 전해지는 이유는 그것이 정답이기 때문이고, 그 자존심 강한 철학자들 사이에서 데카르트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이유도 그가 말한 것들이 가치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운명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 이전에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다스리는데 주력하라” 세상에 어느 누가 공부에 대해 이보다 멋진 말을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ㆍ 나는 원본인가 이미지인가
만약 창의성을 고민한다면, 사람을 만나되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땅을 밟되 처음 밟는 땅을 밟고, 책을 읽되 생소한 분야를 읽어야 한다. 생소한 것들이 부단히 나를 자극할 때 그 자극에 의해 지각이 갈라지고 용암이 터져나온다.
ㆍ 진정한 행복은 과정의 몰입에서 온다
ㆍ 나의 존재는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ㆍ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ㆍ 발산하지 말고 응축하라
2장 세상과의 대화
ㆍ 언어는 그 사람을 말해주는 지표다
낭중지추라고, 송곳은 언젠가 주머니를 뚫고 나오게 되어 있다.
ㆍ 진실을 보고 행하는 참지식인이 되자
ㆍ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불행
ㆍ 한국사회에 닥쳐올 새로운 질서
1940년대 말까지 한국사회의 주류권력은 왕조와 이후 그것을 대행한 조선총독부였다. 이처럼 왕조와 총독부의 권력이 하나의 바퀴를 형성했다면, 다른 하나의 바퀴를 형성한 것은 주로 농경자본이었다. 5,000년 역사에서 4,900년간 한국 사회 자본의 주류는 농경자본이었다.
이러한 5,000년 역사의 중심이었던 농경자본이 산업자본에 밀려나는 데는 불과 20년, 그야말로 찰나적 순간에 무대의 주인공이 교체되었다. 해방과 5.16군사혁명 전후 20년 사이에 송두리째 바뀌었다. 1세대 산업자본의 시대는 그후 약 30년간 이어진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1세대 산업자본에 위기가 닥친다. 대중이 절대적 결핍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들에게 더 이상 절대적 갈망은 존재하지 않았다.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욕망이 충족되지 않았고 어느새 질과 수준을 따지게 된 것이다. 대중은 소유하지 못했던 것들을 대부분 소유했고 자본은 그런 대중에게 더 이상 상품을 판매할 수 없었다. 시장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산업자본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때가 1세대 산업자본들이 무너진 시기다. 한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섬유, 봉제, 식품 등의 산업자본들이 쓰러지고 30년간 이어온 주도권이 순식간에 깃발을 내렸다.
최종승자는 2세대 산업자본이었다. 1900년대 말 삼성, LG, 현대 등 소위 재벌기업들이 나머지 경쟁자들을 완전히 따돌리고 최종승자로 등극했다. 이들은 절대적 결핍의 해소에 주목했다. 원하는 것을 소유하지 못해서 결핍되었던 대중이 이제 그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 가진 것을 버리게 함으로써만 다시 다른 것을 소망하도록 할 수 잇다는 상대적 욕망에 주목한 것이다. 이로써 소위 상대적 결핍의 시대가 열렸다. 대중이 상대적 결핍을 느끼도록 하려면, 즉 갖고는 있지만 더 갖고 싶어하게 만들려면 대중의 상대적 욕망을 자극해야 한다. 여기에 초점을 맞춘 자본들이 승자가 되었는데 이를 가리켜 폐기를 바탕으로 한 성장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때 욕망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동원된 것이 테크놀로지, 브랜드, 스토리, 컬처 등이다.
하지만 이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불과 20∼30년 만에 한계를 드러냈는데 그 이유는 대강 이렇다.
첫째, 자본의 양극화다. 대중은 노동의 대가로 획득한 임금을 상대적 욕망을 해소하는데 주로 사용했는데, 이런 유행과 패턴에 대한 추종은 대중의 자본축적을 방해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소금물을 마신 대중은 멈추지 않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를 거듭했고, 이는 과잉소비와 그것에 바탕한 과잉생산으로 이어졌다. 과잉소비로 인한 대중의 빈곤은 외견상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나타났지만, 사실은 골다골증에 걸린 귀부인과 같았다. 과잉소비는 대중으로 하여금 자본을 축적할 수 없게 만든 결정적 독배였다. 반면, 과잉생산을 통해 시장을 실제 이상으로 키워온 자본으로 유입되는 부의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대중의 소비가 증가할수록 자본에게는 더 큰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20년간의 어리석은 질주는 파괴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 멀리는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부터 1990년대 일본의 버블붕괴, 최근 우리나라의 부채율 급증에 이르기까지, 이는 모두 자본과 산업의 유혹에 무너진 대중의 자기파멸적 소비의 결과다.
둘째는, 지구공동체의 문제다. 불필요한 것을 만들고 멀쩡한 것을 버리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의 악순환이 이어진 결과 자원의 고갈과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반성은 단순히 자원절약이나 환경보호, 대체에너지 개발 등이 아닌 생산시스템의 전면적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기계생산으로 대표되는 부가가치의 산출 대신 자원을 소모하지 않고 엔트로피를 증가시키지 않는 새로운 부가가치 생산시스템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근 기계 대신 사람이 화두가 되니 계기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청년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는 시각은 과거와 달라야 한다. 앞으로 닥쳐올 새로운 질서는 무분별한 대량생산 방식이 아니라 친환경적이고 화석연료나 자연자원을 많이 소모하지 않으면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산업시스템이 중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ㆍ 환경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기회다
이제 더 이상 선택 옵션은 없어 보인다. 항상성(생명을 유지, 존속시키려는 자정작용)을 유지하려는 인류의 생존본능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시스템은 이쯤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그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환경은 단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들이 조만간 맞닥뜨릴 새로운 패러다임 혹은 기회의 문제다.
그렇다면 그런 분야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엔트로피의 저주를 벗어날 수 없는 기계생산 분야가 아니라 레저,엔터테인먼트,코스메틱,교육,헬스케어,바이오,청정에너지 같은 사람 중심의 시스템이다. 이 분야들은 기계가 아닌 사람을 통해서 부가가치를 얻는다. 과거에는 기계의 효율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사람과 사람의 스파크가 바로 부가가치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ㆍ 행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이유
제러미 벤담을 비롯한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자아실현이 행복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인간이 스스로 완성되는 단계(가치있는 일을 함으로써 희열을 느끼는 단계)를 중시했고, 사회의 기능에 주목했다.
새뮤얼슨은 행복을‘가진 것 / 욕망’으로 규정했다. 가진 것을 늘리거나 욕망을 줄이는 것이 행복의 척도라는 의미다.
3장 나를 감동시키는 자기혁명
ㆍ 자기 삶의 혁명가가 돼라
우리가 실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태도의 변화다. 태도는 영어로는 attitude라고 번역하지만 심리학 용어로서 에티튜드는 태도라는 우리말과는 살짝 뉘앙스가 다르다. 애티튜드는 라틴어 aptus에서 기원한 것으로 준비 혹은 적응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며, 어원적 의미로 따지면 무언가를 행할 준비가 된 상태쯤을 지칭하는 말이다.
어쨋건 애티튜드 혹은 태도는 전생에 걸쳐 나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이런 어리석은 행동(말만 앞서는 수다)은 평생 반복된다. 사람은 지키지 못할 약속과 다짐, 목표를 내세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자신과 끊임없이 수다를 ᄄᅠᆯ지만,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거대한 위선에 불과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탈고 약속을 수십 번 어겼고, 그때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스스로 변명하며 수다를 떨었다.
중요한 것을 결국 말이 아닌 실천이다. 어떤 계획과 목표도 실천의 뒷받침이 없다면 무의미한 수다에 불과하다. 이때 수다의 함정에서 벗어나 실천에 이르는 탈출구가 바로 애티튜드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UN에서 일하는 국제관계 전문가 되기’를 당신의 목표로 정했다. 이때 당신은 역시 계속 수다를 떤다. 당신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먼저 세 곳의 외국어학원에 등록하고,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자서전을 구입하고, 해외연수와 봉사기관의 자원봉사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심은 점점 흐려지고 수다는 점점 늘어난다.
그렇다면 당신이 정말로 UN에서 국제관계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학원에 등록하고 교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 아침부터 10분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은 무언가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나태함의 달콤함을 버리지 않은 채 긍정적인 것을 손에 넣기란 불가능하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첫걸음은 지금 내가 반복하고 있는 나쁜 습관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사법고시에 합격해 법관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책상머리에 법의 여신상을 오려붙이고 법전과 교재를 사러 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평소 해야겠다고 생각만 했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던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끊지는 못하고 있다면 당신의 애티튜드는 아직 다른 더 큰 것을 실행할 준비가 됭어 있지 않은 것이다. 당장 필요한 것도 하지 못하는 태도가 습관이 되어 있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자신을 전부 던져야 하는 더 큰 결심을 어떻게 실천하겠는가? 보나마나 실패할 게 뻔하다.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정신과 육체와 시간을 갉아먹는 것들이 널려 있다. 이런 것들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먼 길을 가야 하는 나그네가 어깨에 모래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가는 것과 같다. 먼 길을 떠날 사람에게 필요한 애티튜드는 최대한 단출한 짐을 차리는 것이다.
필자는 2000년 1월 1일 술, 담배, 골프 등을 동시에 끊기로 결심했다.
청년들이 필자에게 고민을 상담하면 제일 먼저 자신의 장점과 단점 10가지씩 적어보라고 한다. 그러면 대개 장점은 서너 가지밖에 적지 못하지만 단점은 10가지를 다 채운다. 뜻밖에도 우리는 자신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를 앞에 놓고 당분간 장점을 채우려 하지 말고 항목에 적힌 단점 중에서 가장 버리기 쉬운 것을 버리려는 노력을 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서 다시 만나 자신의 장단점을 다시 적어보라고 하면 놀랍게도 줄어든 단점의 숫자만큼 장점이 늘어나서 그 수가 비슷해진다. 단점을 줄인 자신감이 장점을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만든다.
이렇게 자신의 나쁜 습관을 바꿀 작은 행동의 변화조차 시도하지 못하면서 인생의 꿈을 말하고 그것을 이룰 최선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허한 수다에 불과하다. 그러니 긍정적 에티튜드를 만드는 출발은 내일부터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일부터 무엇인가를 하지 않겠다가 먼저인 셈이다. 즉 나의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애티튜드는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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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이 만든 틀에 스스로를 가둔다. 성취한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자신이 규정한 틀 안에서 살아간다. 사람은 어떤 틀 안에 있는 것을 안정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모두 스스로 만든 틀 속에서 자신을 가두고 그 틀을 유지하느라 애를 쓴다. 물론 사람에 따라 그 틀이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지만 크든 작든 경계는 있기 마련이고 그 경계는 결국 그의 사유와 행동을 제약하게 된다.
혁명의 두 번째 대상은 한계다. 경계가 안주하려는 자신의 틀이라면 한계는 확장성을 제약하는 심리적 감옥이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무의식의 장난이다. 심하게 말하면 내 스스로 나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는 말은 반듯한 자기성찰의 결과물이 아니라 무의식에 농락당한 에고의 비명소리에 불과하다. 우리는 막연히 자신의 한계가 콘크리트와 같이 단단한 성벽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누구에게든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걸어가다가 주저앉는 자리가 바로 한계인 것이다.
삶의 본질이 바로 그와 같다. 혁명가의 삶은 늘 진취적이고 의욕이 넘치지만 안주하는 사람의 삶은 늘 회의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혁명가로 살아야 하고 이런 혁명가의 삶만이 자기가 주인인 삶인 것이다.
ㆍ 경계를 넘어서야 진보가 온다
엔트로피의 저자 제러미 제프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학자들은 지난 20만년간의 인류문명 발전이 그동안 이땅에 살아온 모든 인류의 노력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인류에 경의를 표하는 우아한 시각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지금까지 문명과 문화의 발달은 0.1퍼센트의 창의적 인간이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꿈꾸지 않는 것을 꿈꾸며, 모두가 보지 못하는 어두운 곳에 깃발을 꽂고 이곳이 젓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땅이라고 외치면, 0.9퍼센트의 안목있는 인간만이 그것을 알아보고 그들과 협력하고 후원하며 새로운 문명을 건설한 결과다. 나머지 99퍼세트는 이 1퍼센트가 모든 것의 기초를 닦고, 새로운 계단을 놓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위에 올라와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또다시 그곳에 안주한다.
ㆍ 내면의 불길을 가다듬는 시간, 청춘
그 길은 지식을 익히고 지혜를 쌓으며 실천하는 길이며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열정이 함께해야 한다. 하지만 청년기는 이렇게 뜻을 향해 나가려는 의지보다 유혹하는 것들에 대한 욕망이 더 큰 시기다. 사실 이것은 평생을 괴롭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분명히 바른 길이 있고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매번 유혹을 떨치기가 어렵다. 하지만 논어는 스스로 이기려는 열정이 없는 자는 가르칠 필요조차 없다는 가혹한 선언으로 답을 대신한다.
특히, 청년기는 바람직한 역량을 강화하려는 의지보다 감각적인 것들을 향한 욕망이 더 강한 시기이므로 열정과 정열 그리고 충동을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침묵과 사색, 교양과 문화다. 이런 것들은 대게 호흡을 가다듬는 역할을 한다. 청년기에는 무의식에 자리 잡은 충동적 욕망이 자아의 어리석은 선택을 계속 유도하는데 이때 의식을 집중해서 무의식을 누르고 자아를 곧추세우게 하는 것이 바로 사색과 교양이다.
청춘은 발산이 아니라 응축의 시기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말은 좌충우돌에 대해 책임질 필요까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청춘의 가슴에는 활활 타는 불길이 있지만, 그것이 뜨겁다고 함부로 토해내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은 의미없는 소진에 불과하다. 뜨거운 불길을 쉽게 토하지 말고 뱃속 깊이 삼켜라. 그리고 다듬고 응축해라. 그 불길이 뜨거운 구슬이 되어 가슴속에 여의주를 품게 될 때, 어느 한순간 벼락처럼 쪼개며 천둥처럼 울리는 것이 청춘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때 쓰는 말이다.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온다. 그런데 기회는 일정부분 행운과 함께한다. 때문에 준비된 도전이 행운을 만나지 못했을 때 그 실패는 가치 있고 다음에 다른 기회를 기다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절치부심이다. 하지만 좌충우돌에는 기회도 행운도 없으며 방종에 대한 가혹한 대가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행운의 여신은 끊임없는 도전에만 깃드는 까다로운 수호신이다.
ㆍ 철학을 통해 사유의 경계를 넓혀라
....하지만 통섭이라는 것이 말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기 자리에서 한 발 물러나 그 자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객관적 사유라고 할 때 그것이 잘 이루어진 것을 가리켜 비로소 통섭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통섭, 직관, 통찰을 기르는 가장 좋은 학습이 바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철학자 강신주 선생은 우리가 접하는 모든 학문의 근본은 수학과 철학이라고 말한다. 수학적 지식이 바탕이 된 학문들은 탑을 쌓아올리는 특징이 있다. 반면, 철학이 바탕이 되는 학문의 특징은 수평적이고 산발적이다. 데카르트 철학의 바탕위에 칸트를 쌓아올리고 그 위에 다시 헤겔을 올리는 것이 다니다. 철학적 사유는 각각의 사유 그 자체다. 철학적 사유의 특징은 자못 독립적이며 수평적이며 자유롭다. 인문학은 이런 철학적 특징을 바탕으로 한다.
철학적 사유를 도외시하고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나는 인수분해를 하지 못하면서 혜성의 괘적을 추적하려는 것만큼이나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이 때 철학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철학 자체가 사유라면, 철학사는 사유의 흐름을 보여준다. 만약 철학사를 건너뛰고 철학을 공부한다면 비약된 의식처럼 허술하고 기괴한 모형이 된다. 철학사는 당대의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왜 철학의 주제가 변주되었는지, 그리고 지금의 철학은 왜 등장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ㆍ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균형잡기
ㆍ 자신의 잠재력을 찾는 법
ㆍ 자신을 감동시켜야 진정한 노력이다
하늘이 어떤 이에게 장차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그 먼저 그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그 근육과 뼈를 지치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곤궁하게 해서 행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도록 가로막는데, 이것은 그의 마음을 움직여 그 성질을 단련시키며 예전에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을 더 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람은 언제나 잘못을 저지른 뒤에야 바로 잘을 수 있고, 곤란을 당하고 뜻대로 잘 되지 않은 다음에야 분발하고 상황을 알게 되며, 잘못된 신호가 나타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부적으로 법도 있는 집안은 제대로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외부적으로 적이나 외환이 없는 나라는 언제나 망하게 된다. 우리는 그 다음에야 우환이 사는 길이고, 안락이 죽는 길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孟子>
...........이렇듯 우리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징후들을 짜증스러운 일로 치부하거나 단순히 불운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리는 실수를 자주 범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 스스로 개선의 기회를 박차버리는 것과 같다.
ㆍ 자기주도적 선택의 힘
ㆍ 지금 이순간에 집중하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이 외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지금을 즐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당신의 미래요, 꿈이라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인생은 지금의 가치를 너무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늘 과거에 사로잡혀 있거나 미래에 대한 망상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늘 지금이다.
4장 자기혁명을 위한 배움과 성장
ㆍ 자기만의 색깔로 도전하기
ㆍ 경쟁심을 자기발전의 토대로 만들어라
...다시 강조하지만 그가 나와 계약을 맺거나 동업을 할 사람이 아니라면 단점을 찾고 그것을 비웃는 어리석은 행동보다, 어떤 부분이건 장점을 찾아 내 것으로 흡수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그런데 가끔 이런 경우에도 자기함정에 빠질 수 있다. 자기보다 객관적으로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관대해서 그의 장점을 칭찬하고 인간적으로 훌룡한 척하면서, 정작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대상으로는 질시하고 투기하며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가장 나쁜 행동이다.
ㆍ 청년에게 예의가 필요한 이유
ㆍ 안과 밖의 태도가 나를 말해준다
아우라(Aura)는 후광, 광채 등의 의미가 있는 그리스어로 인체와 관련하여 언급할 때 아우라는 신체에서 발산되는 보이지 않는 기나 은은한 향기 혹은 그 사람이나 물건을 에워싸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를 뜻한다.
앞서 설명한 애티튜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좋은 습관을 만드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몸에는 크든 작든 나쁜 습관들이 찌꺼기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 그 나쁜 습관의 찌꺼기가 나를 방해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저녁에 집에 가면 무조건 TV부터 틀고 소파에 드러눕는 습관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책상에 앚으면 일단 컴퓨터부터 키고 실시간검색어를 모두 눌러본 후에야 다른 일을 시작한다. 또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 잠자리에 누우면서 스마트폰을 잡고, 퇴근할 때는 누군가를 붙들고 한잔 어때를 남발하며 술친구를 찾는다. 모두 나쁜 습관의 찌꺼기들이다.
TV를 본다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거나 그것을 통한 휴식이나 위로가 다른 것을 희생할 만큼 가치가 있어야 한다. 컴퓨터를 켤때는 정보를 얻거나 작업을 할 이유가 있어야 하며, 술자를 가질 때는 그만 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그렇듯 습관의 관성에 빠져 다른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아우라가 없다.
아우라는 바로 이런 단점들이 제거된 상태다. 즉 자신의 삶에서 단점들이 제거된다는 것은 삶에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고 자신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의미다. 마치 진흙이 묻은 구슬처럼 장점이 햇살에 드러나는 반짝이는 상태가 바로 아우라인 것이다.
......이처럼 자세와 주변의 모습에 나의 마음가짐이 드러난다. 그것은 역으로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혈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책상정리, 작은 화분 하나 키우기, 자세 바로하기, 좋은 언어 골라하기 같은 습관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너무 관념적인 것을 선호한다. 무언가 목표를 세우면 이를 깨물고 실행할 다짐을 하고 산에 올라 일출을 보면서 “그래, 결심했어!”를 외치지만 그 결심은 며칠도 안돼 오뉴월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기 일쑤다. 왜 그럴까? 관념은 허무한 것이기 때문이다.
관념이 나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해오던 습관이 관성이 되고, 관성이 태도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태도의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게 사실은 더 실효성 있는 실천의지인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먹은 학생의 우선순위는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책상을 정리하고 주변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것들을 없에고 책상에 앉을 때 의자를 당겨않는 것이다. 또 직장에서 성과를 내고 싶으면 책상에 작은 선인장을 하나 놓고 볼펜과 메모지부터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ㆍ 시간의 가치는 밀도가 결정한다
삶의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시간이 없어서라고 변명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곧 나태함이다. 시간은 누구든 열 배, 백 배로 압축할 수 있다.
....이렇게 습관화된 시계시간의 관점에서 벗어나보면 시간은 곧 가능성의 크기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는 순간 모든 인간의 가능성은 100퍼센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취의 공간은 점점 커진다. 즉 시간에 따라 가능성은 감소하고 성취는 증가하는 것이다.
.....필자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서 성공에 이른 이를 만난 적이 없다. 우리가 쫓기는 시간에는 찌꺼기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그만큼 찌꺼기를 버리면 된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달콤하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결국 시간활용은 계획보다는 금기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ㆍ 지식과 지혜, 영감과 창의
지식은 외부사회와 관계된다. 지식은 누군가로부터 배우고 다른 사람과 교류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만 쌓은 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회가 쌓아놓은 업적들, 즉 역사 속의 인류가 이어달리며 남긴 업적을 계승·발전시켜야 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 지혜는 내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어서 배우거나 가르친다고 이어달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지만, 지혜를 늘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대로 이질적인 것들을 만나야 한다. 새로운 생각은 이질적인 환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사는 사람은 100년을 살아도 지혜가 없고,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사는 사람은 서른 살에도 지혜의 포도나무가 주렁주렁 열리게 된다.
ㆍ 학과 습이 병행되어야 진짜 공부다
ㆍ 책을 통해 저자의 진짜 생각과 만나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람의 생각은 언어로 고정되어 있고, 언어는 맥락이 있어야만 뜻이 형성된다. 언어, 즉 어휘가 부족하면 생각이 풍부할 수 없고 언어를 맥락화할 수 없다면 체계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유’란 맥락화된 생각을 가르킨다. 그래서 독서는 사유를 배우는 제1의 수단이며 창의력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독서는 먼저 문자(텍스트)를 읽고 거기에 담긴 저자의 생각과 사상과 지식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해한 것들을 기반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내면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서는 우연의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생을 통해서 독서를 해난간다는 것은 언젠가 새로운 기회를 만날 씨앗을 뿌리는 행위이며 나를 준비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곧, 독서는 가능성이다.
ㆍ 독서법
필자의 서재와 책창고에는 대략 만 권의 책이 있는데, 독서가 습관처럼 몸에 베서 요즘도 대략 이틀에 한 권 이상은 책을 읽는다. 필자는 책을 읽을 때 3∼4일을 끌면서 단어 하나 음절 하나를 물이 될 때까지 꼭꼭 씹어서 삼키는 경우도 있고, 마치 쌈밥을 먹듯이 한 시간에 책 한 권을 그냥 삼켜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책을 읽는 비결이다.
독서의 원칙? - 늘 새로운 것에 선의를 가질 것! 모르는 장르,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책을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공공부가 아닌 이상 익숙한 것의 포로가 되면 독서에 의한 자기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는, 완독과 다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독서 후의 사유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그 책을 읽는데 투자한 시간 이상 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는 지식을 체계화하고 사유의 폭을 넓히는 수단이다. 성찰의 실마리를 던져주지 못한 책은 시간을 파막는 좀벌레에 불과하다. 셋째는, 쓰기도 같은 맥락이다. 먼저 좋은 글을 골라 수차레 반복해서 필사하고, 다음에는 그 글에서 아쉽게 느껴지는 점을 고쳐 써보고, 마지막으로 같은 주제로 내가 다시 써서 내 글이 원본보다 낫다고 여겨질 때까지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책을 고를 때는 신간과 고전을 교대로 읽는 것이 좋다.
ㆍ 글쓰기과 말하기
필사를 할 때는 열 번 이상 반복해서 그대로 베껴써야 한다. 키보드를 이용해도 좋고 연필을 쥐어도 좋다. 다음 순서는 개작(改作)이다. 필사의 대상으로 삼은 글에서 부족한 점을 찾아 고쳐 써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내가 고쳐 쓴 글이 원작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여러번 반복해서 고쳐 쓰는 것이다. 특히 불필요한 문장이나 단어를 삭제하고 글을 축약시키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실제로 글을 써보면 대개는 중언부언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래서, 따라서 등의 남발은 앞선 문맥을 지키려는 일종의 콤플렉스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처음부터 내가 쓰는 것이다.
처음에는 필사하고 다음에는 축약과 삭제와 가필을 하고, 마지마으로 내가 직접 쓰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세 개의 글이 나란히 놓이게 된다. 필사한 글, 내가 고쳐쓴 글, 내가 새로 쓴 글, 이 가운데 내가 새로 쓴 글이 가장 훌룡하거나 최소한 그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 글을 다루는 훈련은 얼추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칼럼이나 주장을 담은 글은 초두효과를 이용하면 상당히 효과적이다. 다만 초두효과를 이용할 때는 반드시 마지막 문장이 첫 문장과 조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것에 대한 선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호의를 가져라. 니체의 말이다”로 시작했다면, 마지막에 “아직도 창의력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이 땅에서 죽은 것은 신이 아니라 니체인 셈이다”로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것이다.
5장 미래를 여는 변화와 도전
ㆍ 이 시대의 희망부재와 우울
개인의 문제로 보면 우뇌 활동이 왕성한 경우 우울의 소인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경우 모두 우울증으로 연결될까? 상대적으로 많은 우울의 소인을 가지고 있는 우외형이라 하더라도 긍적적인 환경을 만나면 그 씨앗은 영원히 냉동된 채로 묻혀 발아되지 않는다. 반면 상대적으로 적은 우뇌형 소인을 가지고 있어도 부정적 환경을 만나면 우울의 씨앗이 바위을 뚫고 틔운다.
ㆍ 운명론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의 위험성
운명의 신은 여신이므로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끔은 쓰러뜨리거나 제압할 필요가 있다. 운명은 거리를 두고 망설이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들에게 승자의 면류관을 씌워준다. 즉 운명은 여자와 같아서 젊은 청년의 편이다. 왜냐하면, 혈기 왕성한 청년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민첩하고 과감하게 여자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ㆍ 건강한 사회를 위한 시민의식
관리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전환되는 지난 몇십 년간의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서 산업자본의 발전이 근로자와 대중의 삶의 질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전통적인 믿음이 사라졌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본권력이 대의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해 대중의 위임을 받은 정치권력을 누르고 국가사회의 어젠더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의 금융위기다. 2000년이후 2010년까지 10년간 미국의 개인소득은 증가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GDP는 19퍼센트나 증가했다. 그럼 늘어난 19퍼센트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이것이 위기의 핵심이다.
ㆍ 소셜네트워크가 만드는 스마트월드
ㆍ 전세계적 슬로건, 공존과 공생
선량함의 근원에는 두 가지 핵심기제가 작용하는데, 하나는 동정심(sympathy)이고 다른 하나는 공감력(empathy)이다.
ㆍ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통섭하라
ㆍ 패러다임 변화를 읽어내는 주인공이 돼라
필자가 주역을 필독서로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이 수천년 전부터 아우성치고 있는 변화의 원리를 읽어내라고 말하고 있으며, 아울러 수동적인 역(易)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는 능동적인 역(易)으로의 전환이 지금 이 시대에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취해야 할 주역의 기본원리는 계사전(繫辭傳)의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라는 구절에 모두 녹아 있다. 이 아홉 글자의 뜻을 우리말로 풀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영원하다”는 뜻으로, 이 말은 사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선언이기도 하다. 여기서 궁하다는 것은 난관에 부딪혔다는 뜻이다. 우리는 커다란 난관에 부딪히면 대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좌충우돌하거나 상황을 원망하며 자포자기한다. 하지만, 주역은 ‘막히면 변하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즉, 스스로 변하는 것이 해법이라는 뜻이다. 바위가 길을 막고 있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굶어죽기를 기다리지 말고 두더쥐가 되어 굴을 파든지 나비가 되어 날아갈 궁리를 하라는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뚜벅뚜벅 걸어가 꽝하고 부닥쳐야 한다.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더라도 그냥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지는 말라는 정언명령이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렇게 변하면 결국 통하게 될 것이니, 늘 그렇게 통함으로써 영원하라는 말은 실로 감격적이기까지 하다.
ㆍ 새 시대의 패러다임 이해하기
새 시대의 패러다임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사람’이다. 과거 시대의 키워드가 ‘기계’였다면 지금은 사람이 부가가치를 창출의 핵심 수단이라는 점을 인식함으로써 새 시대 새 패러다임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자원고갈과 폐기물의 문제에서 자유로우며 무한한 부가가치를 창출 할 수 있는 생산수단이 곧 사람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엔터테인먼트, 레저, 에듀케이션, 핼스캐어, 바이오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헬쓰케어의 중요성은 향후 30년간 전세계 산업의 화두가 될 것이다. 현재 인도를 제외하고 30세 이상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곳은 아프리카밖에 없다. 전지구적인 고령화는 기계산업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대신 건강과 생명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생명과 헬스케어, 기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산업의 물결은 남태평양의 지진처럼 이제 막 거대한 쓰나미를 준비하는 초기단계라고 할 수 있다.
ㆍ 공공의식을 가진 공감형 리더십의 요구
온전히 자기가 경험한 만큼이 자신의 세계다.
시대의 요구는 시대의 과잉이 아닌 결핍과 일치하며 그 결핍은 다음 세대의 필수 덕목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지금 청년들은 현재 대표적 과잉 중 하나인 무모한 스펙전쟁이 아니라 대표적 결핍인 공공성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사회적 건강성에 헌신함으로써 차세대 리더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과거에는 잘난 사람의 리더십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대중의 팔로십이 중요한 시대다.
국가지도자건 사회지도자건 ‘팔로 미’가 아닌 ‘위드 미(with me)'를 말하는 사람, 함께 가고 헌신하며 먼저 실천하는 사람이 리더로서 인정을 받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ㆍ 정의와 공정성에 관하여
에필로그 우리는 늘 두근거리는 시작 앞에 있다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 견제와 균형을 반복한다. 의식을 가다듬고 집중해서 무의식을 들여다보면 마치 지독하게 잘게 부서진 파편 같다. 그런데 이 파편들은 나의 의식이 약화되었을 때, 수면 위로 떠올라 의식을 교란한다. 의식이 정돈되어 무의식을 잘 통제하고 있을 때는 바닥에 가라앉지만, 의식이 산만하거나 집중력이 느슨해지면 장마철 호수 위에 떠오른 쓰레기더미처럼 나의 의식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긴장을 늦추며 살아가면 나의 의식은 늘 무의식과 함께해야 된다.
무의식은 치명적인 약점들이다. 부정적이고 잊고 싶은 것들은 의식이 가위질로 편집되어 깊은 심연 속에 조각조각 던져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을 잘 통제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적어보라고 하면 장점과 단점 항목을 최소한 비슷하게 나열하지만, 무의식이 통제되지 않고 의식의 틈애세 얼기설기 끼어 있는 사람들은 장점은 두세개만 적고 단점은 수십개나 적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가치관과 목표의 이정표를 바로 세울 수 없다. 자치관에 대한 판단도 명료하지 않고, 그에 따른 목표도 자신의 장담점을 분석한 결과가 아니라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결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의식이 끼어들지 않기 위해서 의식을 명료히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방법은 나쁜 습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나의 단점들 중에서 버릴 것을 검토하고, 하나하나 차례로 제거해 나가야 한다. 나쁜 줄 알면서도 달콤함에 취해 포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해서 끝까지 그것을 결행할 인내심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리지 못하면서, 새로운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명심할 것이 있다. 단발적으로 버리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버려야 하는 대상은 정기적 인내가 필요한 것들이어야 한다. 잠을 참아내거나 담배를 참아내거나 술을 참아내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늘 그것과 투쟁해야 하는 것들을 버리기로 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긴 투쟁을 이겨나가면 그것이 곧 새로운 습관으로 이어지고, 의식은 명료해진다. 의식이 본능을 투쟁하고 극복하면서 필요한 일을 행하는 인내로 이어졌다면, 이미 의식의 통제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 그것을 습관화함으로써 강고한 자아를 구축하고, 산만하고 저급한 무의식을 의식의 바다 밑 골짜기로 밀어버리면 된다.
그로써, 우리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다음 우리가 단단한 바탕을 딛고 자신의 길을 심장이 터질 만큼 힘차게 달려나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아우라’를 획득할 수 있다.
이런 삶은 불행하지 않다. 우울의 여지도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달콤한 말에 현혹될 필요도 없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무의식의 노예가 되라는 것이다. 긍정은 당의정이 아니다. 긍정의 태도를 몸에 익히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느껴지는 자존감이 바로 긍정의 힘을 발휘한다.
이 길에서는 무언가 이루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최선을 다하는 삶 그 자체가 중요하다.
주어지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최악/차악뿐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상황에서 던지는 주사위에는 최선/차선의 선택이 있다. 기다린다고 상황이 명료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밤안개는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진다. 빨리 지나가야 한다. 안개가 옅어지기를 기다리다 결국 새벽을 맞는다. 인생이 바람처럼 지나가버린 것이다.
다만,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새로운 것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마리의 토끼를 좇지 말라는 것은 패배자의 논리다. 지금 만약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를 쫓아라. 지금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그만큼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불필요한 순서대로 나에게 붙어 있는 나쁜 습관의 찌꺼기를 뗴어내고, 시간을 압축해서 밀도를 높이고, 코피가 터지고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집중해가면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성급해할 필요는 없다. 물은 99도가 될 때까지 끓지 않는다. 100도가 되기를 기다리는 인내와 여유가 필요하다. 내가 노력하고 있다면 기다림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발효과정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시작해서 당장 성과를 얻는 것은 그야말로 운이다. 우연히 시작한 사업으로 대박을 터드렸다는 이야기에 솔깃하고 주눅이 드는 것은, 이탈리아의 어떤 사람이 사상 최고액의 로또에 당첨된 것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과 같다.
하필 행운의 여신이 나만 피해갈 리 없고, 하필 불행의 여신이 내 발목만 잡을 리도 없다. 인생은 정직한 것이다. 묵묵히 걸어가라.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 나의 감상 >
시골의사 박경철... 말 그대로 현직 외과의사이다. 그러나, 박경철은 의사보다는 작가이자 주식투자가로 독서광으로, 아울러 청소년들을 비롯한 많은 세대들에게‘이 시대의 멘토’중 한 명으로 더 유명하다는 소개가 더 적절할 듯하다. 나는 박경철이란 인물을 몇 년전에 우연히 읽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란 그의 책을 읽고 접했다. 책을 보면서 눈물을 펑펑 나게 만든 사람...그는 어쩌면 평범하게 지나칠 듯한 일상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깊게 맺고 있으며, 또한 깊은 관찰력과 그것을 잘 표현해내는 사람으로 느꼈었다.
그런 그가 청소년들을 위한 지침서‘자기혁명’이란 책을 집필하였다.
이 책의 주된 요점은, 난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첫 번째는,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그의 인생을 좌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애티튜드’ 즉 우리말로 하면 태도라는 것이다. UN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외국어학원에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10분 일찍 일어나는 것이 먼저라는 것...사법고시에 합격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두꺼운 법전을 사고 결심을 써서 벽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장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쁜 습관 하나부터 바꾸는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내일부터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일부터 무엇인가를 하지 않겠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습관을 만드려는 노력보다 나쁜 습관을 버리려는 노력이 더 우선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위에서 이런 주장을 펴는 논거는, 바로 ‘무의식과 의식’이다.
무의식이란 나의 삶의 치명적인 약점들, 부정적이고 잊고 싶은 것들이 잘게 조각나서 깊은 심연속에 조각조각 던져진 것들이다. 이런 무의식의 파편들은 나의 의식이 무의식을 잘 통제하고 있을 때는 바닥에 가라앉지만, 의식이 산만하거나 집중력이 느슨해지면 장마철 호수 위에 떠오른 쓰레기더미처럼 나의 의식을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나의 가치관과 목표를 제대로 세울 수 없고, 오직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 엉뚱한 방향으로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의식을 명료화해서 자신의 무의식을 잘 통제하는 것이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무의식이 끼어들지 않고 의식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저자는 나쁜 습관을 제거하는 것이 첫 번째 단추를 채우는 것이고, 이것이 곧 애티튜드의 첫 발걸음이라는 것이다.
저자 역시 2000년 1월 1일 버리는 것을 실행했다. 바로 술, 담배, 골프를 끊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저자는 좋은 습관을 만들려는 노력보다, 나쁜 습관을 버리려는 노력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곧 무의식을 통제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는,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인간이 생각하는 범위는 결국 그가 알고 있는 문자의 범위이고, 그의 생각은 결코 그 문자의 조합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넓히기 위해서는 많은 문자를 알아야 하고, 아울러 그것을 조합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문자로 된 것들을 익히고 다른 사람의 표현방식과 사유를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이유고, 그 길은 곧 독서라는 것이다.
두 가지, 애티튜드와 독서! 모두 신선한 관점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얼마나 인문학에 해박하고 방대한 독서를 한 인물인지 잘 말해 주고 있다. 단순한 시중에 나 와있는 얄팍한 지식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수많은 인문학적 지식과 고찰에서 나온 상당히 수준 높은 책이고, 그래서 그의 설득력은 더욱 깊고 영향력 있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 저자의 해박한 인문학적 고찰과 지식이 뚝뚝 떨어져 묻어남을 독자 모두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애티튜드...무의식의 통제....그러기 위해서는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는 저자의 주장을 난 실천할 수 있을까? 어찌됐든, 무의식을 통제하지 않고 내린 나의 삶에 대한 가치관과 목표는 오직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 내린 잘못된 결정이라는 말이 공감간다.
인생에 걸쳐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무의식의 통제이며 애티튜드라는 말에 공감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나오는 인상 깊은 구절을 끝으로 감상평을 끝내려 한다.
“하필 행운의 여신이 나만 피해갈 리 없고, 하필 불행의 여신이 내 발목만 잡을 리도 없다. 인생은 정직한 것이다. 묵묵히 걸어가라.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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