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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김애란 첫소설집)을 읽고...

by 책과 피아노 2022. 1. 28.

달려라 아비 (김애란 첫소설집)

출판 창비 / 2005년 출간/ 20221월 읽음 / 302

책속에서

스카이콩콩) 해가지고 바람이 불었다.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아무도 모르게 일어났다. 담장 밑 우산이끼도, 오래도록 수리되지 못한 냉장고 속 어둠도, 내 키도 무럭무럭 자랐다.

달려라,아비) 반지하 안으로 사포처럼 반짝이는 햇빛이 빳빳하게 들어오던 여름날이었다.

어머니는 농담으로 나를 키웠다. 어머니는 우울에 빠진 내 뒷덜미를 재치의 손가락을 이용해 가뿐히 잡아올리곤 했다.

어머니가 내개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사랑의 인사) 사람들은 네시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그를 잊었고 그러다가도 어느새 널어둔 빨래를 깜빡했다는 듯 다시 떠올렸다. 1930년대 처음 등장한 이래 21세기가 될 때까지 네시 이야기는 반복됐다.

내가 해양대학에 갔던 것도 할수 있는 한 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하나라도 줄여보자는 마음에서였다.

내가 수족관 관리요원이 된 이유는 사소하다. 발 밑에 뒹구는 전단지, 잘못 폰 표지판, 누군가의 인사 한번처럼 작은 우연들과 스스로 만들어낸 의미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만든 것이 우연과 의미였다면 그 다음부터 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일련의 규칙과 의무였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그녀는 텔레비전이 가족과의 단절을 야기한다는 말을 믿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만일 대한민국에 텔레비전이라도 없다면 가족 사이가 더 끔찍해질 것이라 확신했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리하여 2003년 서울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뭘까 항시 고민하는 창백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편의점을 지어 주었다. 그것은 많이 그리고 신속하게 생겨났다. 도로위 퇴근 차량이 긴 트리를 만들며 깜빡이는 시간, 나는 종종 편의점에 들렀다.

나는 집에 화장지가 있지만 화장지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므로 화장지를 산다. 나는 집에 밥이 없지만 밥은 언제나 해먹어야 되는 것이므로 참치캔을 산다. 나는 참치캔을 샀으니 밥을 해먹을 것이고, 밥을 해먹으면 입가심을 하고 싶을 것이므로 요구르트를 산다.

큐마트의 자동문은 코가 예민한 짐승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기웃거리는 손님이 있으면 컹 하고 짖듯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내가 편의점에 갈 때마다 어떤 안심이 드는 건, 편의점에서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한다는 실감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닐봉지를 흔들며 귀가할 때 나는 궁핍한 자취생도, 적적한 독거인도 무엇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이자 서울시민이 된다.

 

책소개

스물다섯의 나이로 올해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신예 김애란(金愛爛)의 첫 소설집. 사상 최연소인데다 아직 창작집을 내지 않은 신인이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친 터라 많은 화제를 모았다. 김애란은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창비 지면에서 등단한 뒤 2003년 현대문학상 최종심에 올랐고, 2005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에 선정되는 등 최근 평단의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 이 소설집에는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달려라, 아비를 비롯,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 등으로 상처입은 주인공이 원한이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기긍정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단편 9편이 실렸다. 일상을 꿰뚫는 민첩성, 기발한 상상력, 탄력있는 문체로 익살스럽고 따뜻하고 돌발적이면서도 친근”(문학평론가 김윤식)한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책내용

(달려라 아비) 한번도 본적없는 아버지를 상상하는 딸의 이야기로 엄마와 아버지가 첫날밤 피임약을 구히가 위해 정신없이 달렸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엄마로부터 듣고 딸이 상상한 것이다. 아버지는 엄마가 임신했음을 알게되고 도망치지만, 딸은 지금도 어딘가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달리고 있는 아버지를 상상하죠. 딸은 영어로 적힌 아버지의 부고 편지를 받게 되는데, 편지의 내용을 묻는 어머니에게 일부를 거짓으로 전달한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20대중후반 여자의 이야기로 편의점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노출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상대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리고, 편의점에선 결국 외상도, 개인적인 부탁도 되지 않는다.

(스카이 콩콩) 세 부자의 이야기로 주인공의 형은 초등학교 과학경시대회에서 고장난 고무동력비행기가 추락하는 시간이 길어서 우연히 일등을 차지하죠. 형은 그뒤로 과학자라는 꿈을 가지고 엉뚱한 짓들을 하곤 하고, 동생은 그런 형이 좌절하고 실망하면서 내적으로 성숙해져 가는 과정을 바라봅니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젊은 여자, 그리고 어느날 그의 아버지가 찾아온다.

(사랑의 인사) 주인공은 아홉 살때 놀이공원에서 아버지에게 버려졌지만, 아버지가 실종된 것이라 상상하며 살아간다.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어머니가 부재하는 나가 아버지에게 자신은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집요하게 물어보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농담스러운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종이 물고기) 내가 가장 재밌고 감명깊게 읽은 단편. 20대 중반의 청년이 주인공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벽면에 도배지로 사용된 신문을 읽으며 자란 주인공. 군대를 다녀와서 무작정 서울로 거처를 옮기고 허름한 옥탑방을 얻은 그는 벽면을 포스트잇으로 채우기 시작한다. 첫 번째 벽면은 그가 읽은 책에서 좋아하는 부분을 적고, 두 번째 벽면은 자기자신에 관한 이야기들이며, 세 번째 벽면에는 스쳐가는 생각이나 단어들을, 네 번째 벽면에는 공사장 인부들의 걸쭉한 대화를,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벽면인 천장에는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창문을 여니 포스트잇이 파닥거리며 마치 물고기 비늘이 파닥거리는 종이물고기속에 있는 것 같다.

(노크하지 않는 집) 대학가 주변 원룸같은 다세대 1.5층에 사는 주인공여자는 5개의 방에 각자 5명의 여자들이 살고 세면,목욕,용변,빨래등의 일은 공동의 장소에서 해결한다. 그런데 어느날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구두를 잃어버리고 범인을 찾기 위해 몰래 다른 사람들의 방에 들어가는데...5개방 모두 각 방에 비치된 물품과 위치가...그런것들이 모두 똑같다.

 

달려라아비(김애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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