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정보 : 344쪽, 최은영(지은이), 문학동네, 2021.7.출간,
나의 한줄 평 : 은근 재미있었다. 정말 은근히... 4대의 이야기
(증조모,조모,엄마..그리고 32살의 여주인공인 나)
알라딘 책소개
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와 서정적이며 사려 깊은 문장,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한 뜨거운 문제의식으로 등단 이후 줄곧 폭넓은 독자의 지지와 문학적 조명을 두루 받고 있는 작가 최은영의 첫 장편소설. 작가가 2020년 봄부터 2020년 겨울까지 꼬박 일 년 동안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작품을 공들여 다듬은 끝에 선보이는 첫 장편소설로, 「쇼코의 미소」 「한지와 영주」 「모래로 지은 집」 등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편소설에서 특히 강점을 보여온 작가의 특장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밝은 밤』은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비추며 자연스럽게 백 년의 시간을 관통한다. 증조모에게서 시작되어 ‘나’에게로 이어지는 이야기와 ‘나’에게서 출발해 증조모로 향하며 쓰이는 이야기가 서로를 넘나들며 서서히 그 간격을 메워갈 때, 우리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건 서로를 살리고 살아내는 숨이 연쇄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 자체가 가진 본연의 힘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책속에 글귀들
60쪽) 그(증조부)는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사람이었다. 가진 모든 것을, 목숨까지도 버려 천주에 대한 사랑을 지키려 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감화를 받았다. 그는 증조모를 알게 되면서, 그녀가 사는 모습을 보고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를 했다.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결과로 그는 평생을 억울함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부모를 떠날 때만 해도 몰랐던 것이다. 아니, 그는 평생을 몰랐다. 자기가 얼마나 작은 손해에도 예민하고 속이 좁은 사람인지. 자신은 부모를 떠날 만큼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저 충동일 뿐이었다. 떠나고 싶은 충동. 그는 그가 누릴 수 있는 인생을 그녀가 빼앗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와 정해준 여자와 결혼했다면 여전히 그 집에서 그 좋은 것을을 누리며 살았을 텐데. 자신이 잃은 그만큼을 아내는 보상해야 했다. 그런데 아내는 자신의 기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감사하는 마음은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그는 생각했다. 나는 너를 돕기 위해 모든 걸 버렸는데, 왜 그만큼의 대접을 안해주고 내 기분을 맞춰주니 않는 거지?
103쪽) 나는 이혼하기 전까지는 가족없이 혼자 사는 삶을 상상하지 못했다. 결혼 제도를 겪고 난 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시는 결혼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지만. 그렇지만 내 상상력은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혼자 살면서 나이들어가고, 나의 원가족 모두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법적 보호자가 없는 삶, 허술한 가족이나마 사라진 삶이 어떤 것일지 상상할 수 없어서 막막했다.
156쪽)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쳤고 익숙한 구덩이에 굴러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218쪽)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할머니는 그때 자신이 스스로를 속였다는 것을 인정했다. 증조모의 눈에 보였던 남선의 단점들을 할머니 또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선을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면서 그저 노처녀가 되고 싶지 않아서, 남들 보기에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서 자신을 속였다. 남선 정도라면 남편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기면서 마음속의 경고를 무시했다. 증조부의 목소리로 할머니는 생각했다. 내가 잘난 게 뭐가 있는데...
233쪽)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날 아침 의사가 내게 귀리의 죽음을 알렸을 때 느낀 감정이 슬픔만은 아니었음을 기억했다. 나는 안도했다. 나의 일부는 안도했다. 귀리의 고통이 이제 사라졌다는 사실에, 고통을 받는 그애의 모습을 보고 겪어야 했을 나의 괴로움이 끝났다는 사실에. 그 이기적인 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313쪽) 엄마의 결혼사진이 담긴 앨범에는 신혼여행 사진과 신혼시절의 사진도 있었다. 그때의 엄마는 즐거워 보였는데, 그것이 엄마의 젊은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사진이 순간을 미화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가 그 시절을 실제로 그렇게 즐겁게 보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진은 엄마가 분명히 그 순간 빛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의 감상
서른 두 살의 주인공 여자는 이혼을 하고 어릴 때 할머니랑 잠시 같이 지냈던 희령 천문대 연구원에 취직하여 다시 희령으로 향하는 걸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리고, 희령에서 주인공 여자는 할머니를 만나고, 그러면서,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증조할머니(이정선/삼천아주머니)는 백정의 딸이었다. 그가 결혼한 증조할아버지는 증조모가 군인에게 잡혀가는 것이 안스러워(?), 증조모가 사는 모습이 안타까워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가 되었다고 착각하며, 마치 너를 구하기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하겠다는 허영심으로 증조모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증조부)는 몰랐던 것이다. 본인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속좁은 사람인지, 부모를 떠날 만큼 용기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단지 충도이었음을..그러면서 증조부는 증조모가 본인의 인생을 빼앗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증조모에게 적어도 자신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왜 그만큼의 대접을 안해주고 내 기분을 맞춰주지 않느냐고 늘 불만이었다.
그리고....할머니는 증조모의 충고에,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할아버지와 결혼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남선)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증조부에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전혀 좋아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그저 노처녀가 되고 싶지 않아서, 남들 보기에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서, 할아버지 정도면 남편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자신을 속이며, 마음속의 경고를 무시하며, 또 본인 스스로 잘난게 뭐가 있는데라는 약간의 자포자기(겸손이라 말할수 있을까?)로 할아버지와 결혼했던 것이다. 결국 할아버지는 유부남이었고 자기 원래 부인으로 돌아가며 호적에 자기딸(엄마)을 가지고 가며 엄마는 실제 할머니가 키웠으니까....
그렇게 엄마는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결혼할 때 그것이 스스로에게 약점이 되어 또 당당하지 못하였고...
여자들의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남자에 대한 피해,핍박을 말하고 있는데, 난 왜 여기서 나의 이야기를 보게 되는 걸까?
증조부의 마음이 얼마나 바보같은지..근데 그게 내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할머니의 결혼하겠다는 이유는 얼마나 바보같은지..근데 그것 또한 내가 아니었을까?
내가 결혼을 하게된 것이 어쩌면 증조부와 할머니(조모)가 결혼하려는 생각,의도,태도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조부와 조모..모두 자신에 스스로 솔직하지 못하고, 자신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그저 허영심에 현실도피로 결혼을 선택했다...어쩌면....내가 그랬다.
책내용
1부
다시 희령에 내려가던 날, 서른두 살의 나는 자동차 뒷자석에 살림살이를 가득 싣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희령 천문대의 연구원 채용공고를 본 건 이혼을 하고 한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증조할머니 성함이 뭐예요? 이정선 그런데 사람들은 삼천이. 삼천이 아주머니라고 불렀어.
증조할아버지는 목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어. 할아버지는 옹기장이였다고해. 그 왜, 예전에 천주고 신자들이 있었잖아. 아버지는 그런 조상의 후손이었어.
어떻게 백정의 자식과 혼인을 할 수 있느냐는 고조부의 말에 증조부(박희수)는 백정도 천주의 자식이며 인간은 귀천이 없다는 것을 교회에서 배워 알았다고 되받아쳤다.
증조모는 할머니에게 그런 이야기를 자주했다. 그래도 그때 군인들에게 끌려가지 않았던 건 너희 아버지 덕분이라고. 그대로 병든 어머니 곁에 남았더라면 자신도 동네의 힘없는 집 여자애들과 함께 끌려갔으리라고 말이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나를 구했어.
나의 증조할머니는 백정의 딸이었고 자기 어머니 곁을 떠나 낯선 남자와 결혼했다. 나의 증조할머니 이정선.
나는 나와 꼭 닮은 사진속의 증조모의 얼굴을 바라봤다.
남편(증조부)는 나(증조모)의 고통에 관심이 없어. 그녀는 생각했다.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그런데 왜 그랬을까? 왜 내가 군인들에게 잡혀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말했던 걸까? 그것이 그녀 평생의 의문이었다. 허영심의 힘이 얼마나 센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럼 증조할머니는 새비 아주머니를 언제 만난 거예요? 엄마가 열아홉살 떄였어. 나를 임신했을 때였는데, 그때 새비 아저씨랑 새비 아주머니도 개성으로 올 수밖에 없었지.
봄비가 온종일 내리던 날,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의 유방암 재발 소식을 들었다.
2부
히로시마에서 돌아온 날, 새비 아저씨는 씻지도 않고 잠자리에 들어서 그다음날 해가 질 무렵에야 일어났다. 그러고는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새비네 가족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3부
엄마가 멕시코에서 돌아온 주 주말에 서울에 올라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1953년 7월 휴전이 되었다. 증조부는 죽지도, 포로로 끌려가지도, 부상을 입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바이 말 신경쓰디 말라. 증조모가 할머니를 지친 얼굴로 바라봤다. 남선인 너의 아바이랑 비슷한 사람이야. 나두 영옥이 너이 어마이가 아니었다면 남선이레 공손하고 괜찮은 사내라구 생각했을지도 모르갔어. 기런데..... 아니야, 너를 귀하게 대할 사람이 아니다. 할머니느 증조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였다. 증조부는 일평생 할머니에게 만족하지 않았다. 아들이 아니었으므로 무슨 수를 써도 증조부의 기대를 채울 수없다는 걸 알았지만 할머니는 그래도 증조부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아주 작은 부스러기 같은 인정이라도 받아내고 싶어서 평생 증조부의 눈치를 살폈다. 남선을 남편으로 맞아들인다면 할머니는 남선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증조부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할머니가 마음을 정한 이후로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증조모도 더는 할머니를 말리지 않았다. 그는 할머니에게 무엇하나 주는 법이 없었다.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단 한 순간도 할머니를 채워주지 않았다. 그 목마른 느낌은 할머니가 증조부와의 관계에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증조무의 말이 맞았다. 그는 여러모로 증조부를 닮은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중조부의 그런 행동이 너무 익숙해서 서운하지조차 않았다. 할머니와 남선의 관계는 그런 익숙함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배려하는 남자, 아내와의 관계에서 손익을 따지지 않는 남자를 자신의 배우자로 상상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기대하고 실망하는 대신 그 안에 주저앉아 포기하는 편을 선택했다. 그편이 훨씬 더 쉬웠기 때문이다. 남편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체념하고 나니 그런 삶도 견딜 만했다.
할머니는 남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그들과 겨루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의 마음은 그 어느때보다 차가워졌다.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속이고 중혼을 한 그에 대한 분노도 그 순간에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4부
5부
조국을 빛낸 해외동포 시리즈는 1988년 여름부터 1993년 여름까지 방영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암호학자 김희자 박사편은 1992년 9월 28일 방송했다.
대전에 있는 연구소에 합격했다는 말을 나는 할머니에게 전하지 못했다. 봄이 되면 희령을 떠나야 한다는 말을 할 용기가 없었다.
할머니는 엄마가 자신의 아버지를 증오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길남선이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한 이유를 거짓으로 꾸며냈다. 너희 아버지는 자기 가족이 전쟁통에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나에게 분명히 이야기했으니 나와의 결혼은 중혼이 아니라 재혼이었다. 세상을 떠난 줄 알았던 가족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너희 아버지는 우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너를 데겨가길 원했지만 내가 요구해서 너와 나와 함께 살게 됐다.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부탁한 것도 나였다. 네가 혹여 아버지를 만나서 상처를 받게 될까봐 두려웠다. 할머니의 말에 엄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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