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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단편소설)

by 책과 피아노 2021. 6. 5.

책소개

2005년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발표, 반짝이는 상상력으로 단숨에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 김애란. 문단과 언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반겼다. 2년이 흘렀다. 다시 김애란의 새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그녀를 향한 또 다른 평가가 기대되는 시기이다. 그래서 그녀가 두 번째 단편집 <침이 고인다>로 돌아왔다.

문학평론가 차미령의 말을 빌리면 "두루 환영받은 첫 창작집 이후, 김애란 소설은 더 몸을 낮추고 더 낮은 자리로 향하고 있다." 전작들의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편의점과 원룸 역시 세련된 일상과 거리가 먼 남루한 자리였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여인숙('성탄특선')과 반지하 방('도도한 생활') 등이 새로운 소설들의 공간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제목들은 각 단편이 그리는 비루한 일상을 더 아프게 드러낸다. 지상의 방 한 칸마저 끝내 허락되지 않는 가난한 연인에게 매해 '역병'처럼 돌아오는 성탄절은 '특선'이라 할 수 없고, 물이 들어차는 방 안에서 연주하는 피아노는 도도하기는커녕 비애가 뼈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꿈을 꾸는 그들의 우주 속으로 들어가보면, 단물처럼 입 안에 고이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에서.....

< 도도한 생활 >

만두 가게를 운영했던 엄마는 주인공을 피아노 학원에 보낸다. 이윽고 이내 피아노를 사게 되는데, 그들은 생계와 주거의 공간인 만두가게 안에 피아노를 놓게 된다. 그녀가 대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해야 하는 시기와 맞물려 그녀의 집은 어려워져 압류 딱지를 떼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집에서 값이 나가는 물건을 팔지만 어머니는 피아노만큼은 팔 수 없다며 작은 반지하방에서 언니와 둘이 살게 될 주인공에게 피아노를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라고 한다.

서울 자취방에서 어느날 저녘 폭우가 내렸다. 주인공의 언니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늦는다고 한다. 반지하로 물이 새어 들어왔다. 물은 방안 발등까지 차올랐다. 물은 퍼내도 퍼내도 계속 차올랐다.

그러던중 언니의 예전 애인이 자취방에 찾아오고 술에 취한 그 사내를 피아노 의자위에 누이고..빗물은 어느새 방안 무릅까지 차오르고...

검은 비가 출렁이는 반지하에서 나는 피아노를 치고(......), 발목이 물에 잠긴 채 그는 어떤 꿈을 꾸는지 웃고 있었다.

(책속에서)

나는 체르니를 배우고 싶기보단 체르니란 말이 갖고 싶었다.

학원에는 피아노를 잘 치는 애들이 많았고 못치는 애들은 그보다 많았다. 조율 안된 중고 피아노는 모두 축녹증에 걸려 있었다. 학원연습실 액자속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초등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속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서울 자취방으로 피아노를 실고 온 그날, 우리는 트럭 앞에 모여 피아노를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몰락한 러시아 귀족처럼 끝까지 체면을 차리며 우아하고 담담하게 서 있었다.

학교 선배가 그러는데, 요즘 계급을 나누는 건 집이나 자동차 이런 게 아니라 피부하고 치아라더라

 

< 침이 고인다 >

이 작품은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영역에 타인의 입장을 허락했으나, 결국 더 이상의 침범을 허락하지 못하고 내쫓은 뒤 편안함을 느끼는 이야기로 개인의 영역에 통찰이 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소재는 껌이다. 대학후배는 엄마가 준 껌을 씹으며 도서관에서 엄마를 기다렸듯히, 후배는 그런 껌을 주인공인 그녀와 나눠가짐으로 인해 함께 고독을 견디는 관계가 된다. 하지만 후배가 떠나고 그녀는 후배가 줬던 껌을 씹는다. 기꺼이 혼자가 되고, 드디어 확보된 개인의 영역에 대한 안정감이다. 후배가 엄마와의 이별을 힘겹게 견디며 껌을 씹었다면, 그녀는 후배와의 이별에 쾌재를 부르며 기쁘게 껌을 씹는다는데 차이가 있다.

(책속에서)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들때마다, 월급날은 번번이 용서를 비는 애인처럼 돌아왔다.

 

<성탄 특선 >

오빠와 여동생 이 남매는 작은 집에서 아니 방에서 함께 살고 있다.

이 두사람에게는 개인의 공간이 없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보낼 때도 단 한번도 편안해 본 적이 없었다.

눈이 내리는 성탄절 날 오빠는 홀로 길을 걸으며 헤어진 여친을 떠올리다 괜히 여동생에게 문자를 보내고 여동생은 4년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함께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에 두근거려 한다. 그동안 세 번의 크리스마스는 함께 못보냈기 때문이다. 입을 옷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잠시 헤어져서..그런 사연 때문에..

하지만 여동생은 어찌어찌하다가 여인숙에 들어갔다가 너무 더러워서 나오고 집에 와서 피곤에 쩔어 잠이 든다.

(책속에서)

여자의 옷차림은 스카프를 둘러맨 오리처럼 어정쩡한 구석이 있었다. 여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한동안 새로 산치마 한 벌에도 기분이 좋아, 온종일 혼자만의 자신감에 휩싸여 캠퍼스를 날아다니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여자는 알게 되었다. 세련됨이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오랜 소비 경험과 안목, 소품의 자연스러운 조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옷을 잘 입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잘 입기 위해 감각만큼 필요한 것은 바로 다름아닌, ‘생활의 여유라는 것을.

 

<자오선을 지나갈때>

서울 사립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26살 아가씨.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학부 2학년때부터 강사를 하였고 졸업후에는 30번도 넘게 회사에 원사를 냈지만 번번히 떨어져 현재 백수이다.

때는 2005년 가을 계속 백수생활을 할 수 없어 학원 강사로 들어가고자 면접을 보고 지하철을 타고 오던중 노량진 역을 지나갈 때, 20살 재수시절 노량진때를 회상하며 이 소설은 시작된다.

199920살 그녀는 한 달에 11만원 짜리의 4인승 '여성 전용 독서실'로 들어간다. 필승 학원 수강증을 끊기 위해 날밤을 새며 줄을 선 경험, 민석과의 지나가는 만남, 독서실 책상 위의 포스트잇 등 다양한 소재거리가 나오고 그녀는 수능을 끝으로 서울 사립대에 합격하며 노량진을 떠난다.

다시 현재 속의 '’...계속 원서를 넣을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지 모르겠다. 노량진의 다리량 자와 나루터진 자가 동시에 들어간 곳. 1999년 내가 지나가는 곳이라 믿었던 곳. 7년이 지난 2005....지금도 나는 여전히 지나가는 중이라 느낀다.

(책속에서)

자그마한 플라스틱 전구위로 종착역까지는 녹색불이, 이미 지나간 역 위로는 빨간 불이 켜졌다.(지하철) 도시의 이름을 가진 점과 그 사이를 잇는 직선. 나는 그것이 카시오페이아나 페르세우스, 안드로메다라 불리는 이국 말로된 성좌처럼 어렵고 낯설었다. (p117)

동네마다 보습 학원이 너무 많이 생겨난 탓에 대학만 졸업하면 웬만해서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학원 강사였다. 일반직장인보다 고소듯을 올리는 유능한 강사도 많지만, 한편으로 먹물들의 막장이라고 은근히 폄하되곤 하는 것도 학원이었다. (p119)

이따금 좁고 어두운 학원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면, 내가 쓰는 화장실이 나를 말해주는 것 같아 울적해지곤 했다. (p119)

1999년 봄 20, 나는 장기판 위에 놓은 한 마리 말()처럼 대책 없고 수줍었다. (p123)

온몸으로 푸른 하능을 인 채 수백장의 금빛 비늘을 얌전하게 펄럭이고 있던 그것, ...63빌딩이다. (p123)

 

<칼자국>

칼자국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는 딸의 회상으로 시작됩니다.

무책임한 남편을 대신해서, 그 몫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만 했던 주인공의 어머니는 맛나당이란 칼국수집을 20년 넘게 운영합니다. 한 평생을 을 지닌 채 살아야만 했고, 부엌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주인공은 어머니가 한 평생 사용해온 칼로 요리한 음식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음식 재료에 난 무수한 칼자국을 먹으며 성장했습니다.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녀의 몸은 엄마의 칼자국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가게 부엌에서 손님에게 내놓을 칼국수 육수의 간을 보다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발인 직전 고향집을 들립니다. 임신 초기입덧 때문인지 긴 장례를 치르는 동안 음식은 입도 대지 못한 상태였죠.

엄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집에서 긴장이 풀리며 노곤해지는 몸으로 잠이 든 주인공. 부스스 잠에서 깬 그녀는 엄마의 오래된 칼을 들고 사과를 깍습니다. 그리고 세상 맛있게 사과를 먹습니다.

자신이 평생 먹고 자란 칼자국을 몸이 기억하는 것이겠지요.

(책속에서)

식칼이 배추 몸뚱이를 베고 지나갈 때 전해지는 그 서걱하는 질감과 싱그러운 소리가 나는 참 좋았다.

오른손이 칼질을 하는 동안 왼손 손가락 두 개는 칼 박자에 맞춰 아장아장 뒷걸음쳤다. 어머니의 칼질에는 아무런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한 가지 기술을 터득한 사람의 자부와 먹고살고 있다는 안도와 단순한 일을 반복할 때 나오는 피로가 뒤섞에 있었다.

 

<기 도>

청년 실업자의 좌절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지방에서 상경해서 살아온 나와 그리고 언니. 나는 화장품회사를 다니다 현재 실직자가 된 신세다. 그리고 공시생 언니가 노량진에서 신림동 고시원으로 이사 간 날. 배게를 놓고 온 언니를 위해 베개를 사서 언니에게 가는 길이다. 9급 공무원 준비생인 언니와 청년 취준생인 나.

(책속에서)

일산화탄소나 질소, 배기가스의 부피만큼 많은 휴대폰 메시지들이 공기 속을 부유하고. 우리는 그 메시지에 둘러싸인 채 메시지를 마시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p184)

우리는 어느 시간이든 간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휴대폰이다. 아마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음악을 듣는 사람도,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도, 트위터를 하는 사람도, 그냥 서핑을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카카오톡을 하는 사람들도 많겠지. 아니 십분이 멀다하고 페북엔 새로운 글이 올라오고, 카톡은 쉼 없이 알림을 알리고, 그런 나날들이 이어지고, 그런 나날들 속에 우리들은 얼마의 의미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이 문득 들었다.

친구들을 만나도 예전처럼 즐겁지 않은 이유는, 조금만 공백이 생겨도 시선이 휴대폰으로 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모든 것의 이유가 될 순 없겠지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의 선에선. 그 공백에선 우리는 침묵을 알았었는데.. 그런 침묵의 시간 동안 서로를 생각하기도, 서로의 생각을 배려해주기도 했었는데.

어째서 점점 그런 나날들이 줄어만 가는 것일까?

휴대폰 속에 있는 수많은 단어와 이야기들엔 과연 얼마만큼의 진심이 묻어 있을까? 정말 요즘 같아선 김애란의 말처럼 내가 메시지에 둘러싸인 채 그 메시지들을 마시며 살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아무리 마시고 마셔봤자 공허함밖에 남지 않는 것들인데..

- 네이버 어느 블로그의 글에서 발췌 -

토라진 얼굴로 서 있던 언니에게 엄마는 엉거주춤 10만원을 쥐여줬고, 두 사람은 어색한 작별을 했다. 어쩌면 둘 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얼떨결에 성난 얼굴을 보였는지도 모른다. 미안할수록 이게 아닌데 싶을수록 얼굴은 굳어졌을 거다. (p185)

 

<네모난 자리들>

과거를 기억해 낼 때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처럼 찾을 수 없는 기옥의 조각들이 있다. 작가는 이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을 네모난 자리들이라고 명한다. 주인공인 나는 10살 때 살았던 산동네를 엄마와 다시 방문한다. 어릴 적 살았던 그 동네와 집은 기억나지 않고 막연하게 서늘한 기운말을 느낀다. 그리고 현재 20대인 나는 그 서늘한 느낌을 짝사랑하는 선배에게서 동일하게 느낀다. 이 네모난 자리들은 실제로 물리적인 공간이라기보다 나의 부정적 심리적 기억의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 나는 선배의 방의 불을 끄고 나가나 이내 다시 원래처럼 방의 불을 켜놓고 나간다. 네모난 자리가 생성됨에 따라 생겨나는 서늘한 불안함이 자신의 인생에서 반복될 것임을 예측했기 때문에 선배의 방의 불을 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책속에서)

먼 곳에서, 나이를 많이 먹은 해가 또 한번의 나이를 잡숫느라 고꾸라지는 동안, 산동네 위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지구 어디선가 어둑함이 몸을 불려가는 속도와 함께 땅 식는 소리가 들려왔다.

 

<플라이데이터리코더>

외딴 섬 플라이데이터리코더라는 섬의 37번지 파란색 슬라이드 지붕 밑에 살고 있는 한 아이와 할아버지 그리고 삼촌의 이야기다.

부모님의 따뜻한이라곤 느껴본적 없는 그아이. 그 아이의 엄마는 결혼한지 몇 달 안돼 과부가 되고 어느날 친정에 다녀온다 말하고 타지에서 죽었다. 화재가 난 여관방에서 벌거벗은 사내와 함께였다. 그래서, 그 아이의 할아버지는 엄마란 얘기도 꺼내지 못하게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날 그 외딴섬에 추락한 경비행기.

아이는 대밭에서 발견한 그 블랙박스를 들고와 삼촌에게 묻는다. 삼촌은...이건 니 엄마야...아이는 삼촌의 엉뚱한 말이지만 블랙박스를 엄마라고 믿는다. 아니, 아마 믿고 싶었던 것일 게다.

블랙박스를 찾기 위해 조용한 섬에 찾아온 정보원들. 드디어 이 블랙박스를 정보원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순간이 온다.

아이는 목놓아 울며 엄마인 블랙박스에게 입을 맞추여 기도한다. 그리고,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안녕이라는 작별인사를 한다.

그제서야 소년은 엄마에 대한 애도...즉 상처 입은 곳으로 돌아가 그때 충분히 슬퍼하며 울지 못한 울음을 다시 우는 작업을 하며 엄마를 떠나보내게 된다.

 

나의 감상(이광호님의 해설에 곁들여)

다시 김애란이다. 누추한 생을 상상적 공간으로 전이하며 위트 넘치는 문체로 표현해 내는 그 투명한 감성의 작가.

동 시대의 젊은 작가들이 탈 현실적인 상상력으로 재무장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작가는 더 낮고 누추한 자리에서부터 다시 소설적 상상력을 가동시킨다.

김애란은 동시대 젊은 세대의 사회문화적인 궁핍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면서 그 개인성의 균열과 심연을 탐사하고, 그 안에서 실존의 지리학과 우주적 공간을 발견하는 상상적 모험을 펼쳐 보인다.

이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아직 계급과 제도에 소속되지 못한 비정규직 여자들이다. 도도한 생활에서 나에게 피아노는 자존의 상징이었다. 침이 고인다의 주인공은 학원강사로 일하며 혼자사는 여자다. 그녀는 결국 우연히 함께 동거하게 된 여자후배를 내보내고 푹신푹신한 고독을 즐긴다. 고독의 욕망과 소통의 욕망의 교차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껌 씹기와 같다.

자오선을 지나갈때의 여주인공은 학원강사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을 돌아다니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그리고 과거 재수할떄 노량진에 있었던 기억을 회상하며 지금도 여전히 지나가고 있는 자신을 본다.

기도에서는 막내와 작은 원룸에 살고 있는 나와 달리 언니는 교육행정직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고 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한 나의 하루 여정이다.

성탄특선에서 사내는 방에 대한 상처를 갖고 있다. 연인과 온전하게 사랑을 나눌수 있는 방은 그에게 없었다. 지금은 그녀는 이미 떠나갔지만. 그리고 그 사내의 여동생 역시 남자 친구와 네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지만 한번도 연인들의 정상적인 성탄절을 보낸 적이 없다.

또한 네모난 자리들에선 선배와 나의 유년의 방이 나온다. 둘다 부재의 방이라 할수 있다. 그리고 칼자국에선 평생 칼국수집을 운영하다가 뇌졸중으로 돌아가신 엄마. 어머니의 장례도중 다시 엄마의 방으로 들어온 나는 어머니의 칼을 보고 이상한 식욕을 니끼며 사과를 깎아 먹는다. 마지막 플라이데이터리코더에서 모성은 블랙박스라는 금속성의 물질 속에 있다.

김애란은 이렇듯 조금 남루하고 그런데도 희극적이어서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심한 듯 말하고 있다.

 

침이 고인다(김애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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