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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음악편지

by 책과 피아노 2016. 1. 2.

 

 

책 제 목 :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저 자 : 손열음 (피아니스트)

출 판 사 : 중앙북스 (2015. 5. 28)

읽 은 때 : 201511

한줄감상 : 피아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책 (★★★★)

 

                                                                하노버에서_온_음악편지 (손열음).hwp

챕터 1 피아노와 음악

피아노라는 것이 어쩌면 노래한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사람이 부르는 노래와 비교해 보면 간단하다. 목소리는 한 번 냈다고 해서 끊겨버리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의 주인이 임의로 지속시키거나 그 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는가? 그래서 음과 음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도 있고, 그리고 음과 음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일련의 내용을 만들어 내는 것을 우리는 선율이라고 하는데, 결국 음들을 연결할 수 없는 피아노라는 악기는, 애초에 선율을 만들어 낼 수도 없는 악기라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무게와 속력을 동시에 사용하는 현악기와는 달리 피아노의 해머는 오직 속력으로만 조절할수 있다. 다시말해 빨리 누르면 큰 음량을, 느리게 누르면 작은 음량을 얻는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이론상으로는 건반을 누르는 것이 사람의 손가락이든 나무토막이든 똑같은 속력을 가히기만 하면 모두 똑같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쇼팽은 자신을 F단조와 가장 닮았다고 했다는데 그의 최후의 곡이 된 마주르카 역시 F단조다. 그들은 음계에서부터 이미 자신의 메시지를 상당량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실은, 두 번째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나의 내성적 성향이었다. 엉뚱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이건 리듬감과 가장 직결되는 문제였다. 쉽게 말해, 어디서든 남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어 댈 수 있는 성격이 리듬감에 훨씬 유리한 거다.

16년전 김대진선생님은 앞으로 잘된 연주란, 계획대로 충실히 이행하고 내려오는 것으로 하자고 하였다. 그렇다.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전체적으로는 어떻게 계획한 대로 다 해냈다면 누가 뭐라든 스스로는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가 느끼는 지독한 슬픔이야말로 다른 어떤 감정보다도 오래가고, 쉽게 남의 호응을 얻으며, 재빨리 주변으로 전이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임무인 음악가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소재인 셈이고, 그래서인지 오래도록 모든 음악가들에게 편애 받는 소재로 사용되어 온 것일게다.

암보.......그정도 무대의 배신은 모두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다만, , 머리, 귀 모두가 완벽하게 곡을 외우고 있으면, 한쪽 기관이 배신당했을 때 다른 기관이 재빨리 수습해 줄 수도 있게 된다.

손이 곡을 외우는 과정은 실상 간단하다. 길들이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근육이므로 계속 반복해서 치면 된다. 하지만, 그런 만큼,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머리를 이용하는 걸 병행해야 한다. 악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것을 통째로 마치 그림처럼 저장하는 연습도, 음악을 들으며 눈으로 악보를 따라가는 연습도, 머릿속에서만 음악을 끊임없이 되감아보는 연습도 모두 머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만 플레이하는 것이 어려울 때 사용하는 것이 바로 귀다. 귀는 자신이 들은 것을 그대로 머릿속에 남겨주니까. 많이 들을수록 더 진하게...그래서 급할 때는 아예 외워야 하는 음악을 귀에 걸어 놓은 채 밥도 먹고, 이동도 하고, 자기도 한다. 특히 선잠을 잘 때 듣는 음악은 꽤나 효과가 좋다.

이 세 가지 만큼이나 암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음악적인 논리다.

아참, 제일 중요한 다섯 번째 요소를 잊었다. 완벽하게 외우고서도 심장 쿵쿵거리는 소리에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난 완벽하게 외웠다고 스스로와 관객들에게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마음이다.

페달...이 과정들이 모두 숙련이 되면 발이 자동으로 귀와 링크가 된다. 울림이 너무 적어 건조하게 들린다 싶으면 오른발이 자동으로 페달을 누르고, 반대로 화성이 섞일 정도로 너무 지저분하게 들린다 싶으면 오른발이 자동으로 페달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페달이 지저분한 사람은 귀가 예민하지 않거나, 아니면 귀는 예민하되 크게 개의치 않는 사람이든가 둘 중 하나라는 얘기가 된다.

440HZ의 도...나는 440을 좋아했다. 1925년에 미국에서는 440HZ를 받아들였고, 1939년에는 이것이 세계적으로 채택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440HZ를 그 어디서도 사용하지 않는다. 피아노도 오케스트라도 이제는 442HZ를 표준으로하고 서유럽에서는 심지어 444HZ를 사용하기도 한다.

 

챕터 2 , 우리 곁의 클래식

꿈꾸기를 대놓고 좋아한 독일의 작곡가, 1850년의 로베르트 슈만..

그의 또 다른 사랑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아내 클라라와 무려 여덟 명의 아이를 둔 것만으로 섣불리 추측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를 위한 앨범 Op68에 그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꿈을 눈물을 머금고 접어야만 했던 그로서는, 자신의 피아노곡들이 클래식 역사상 가장 빛나는 피아노곡들이 된 것을 특히 기뻐하지 않을까? 또 문학을 더없이 사랑했던 그였으니 괴테, 뤼케르트, 바이런의 시를 눈부시게 재창조한 가곡들이 스스로의 대표작이 된 것에도 더없이 흡족해하지 않았을지...

스스로를 모차르트의 후예로 여긴 공상의 작곡가..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날쌘 음표들이 똑똑한 화성들과 함꼐 유머러스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하이든의 곡임을 짐작하고, 비슷하긴 한데 훨씬 더 성악적인 멜로디에 극적인 분위기를 가졌으면 그건 모차르트임을, 거기에 반음계적 선율과 화성이 더해지고 가벼움이 더해지면 멘델스존임을 구분해 낼 수 있다면 이미 당신은 그들 고유의 언어와 어법을 파악한 것이나 다름없다.

베토벤의 자유에의 쟁취를 슈베르트는 절망속의 희망을 슈만은 사랑을 쇼팽은 그리움을 브람스는 결핍을 차이코프스키는 꿈을 쇼스타코비치는 고발이라는 각각의 키워드를 일생동안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이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1891-1953)의 키워드를 나는 귀소본능이라 하겠다.

20대에 그가 작곡한 덧없는 환영op22는 그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사고 구조다. 이 작품은 1분을 넘길까 말까하는 20개의 소곡들을 묶어놓은 모음곡이다.

음악에의 변명,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바흐시대의 키워드가 종교, 베토벤 시대의 키워드가 자유, 슈만 시대의 키워드가 사랑이었다면 쇼스타코비치가 살았던 20세기 초반의 키워드는 이념이었다. 끔찍한 전쟁을 양산한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 처음으로 음악까지 난도질당하기 시작했다.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소비에트 연방을 막 출범시켰을 당시 청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Op10 등을 발표하며 국내외에서 명성을 높여가고 있었다....

양극의 샴쌍둥이, 슈만과 브람스

둘은 겉보기엔 비슷한 점이 많다. 먼저, 당시 유럽 음악계에선 의외로 드문 순수 독일 혈통이었다. 멘델스존은 유대계, 쇼팽과 리스트는 동구권 태생이었던 반면..

그러나, 악보에는 차마 숨기지 못한 본질적 성향은 그야말로 정반대에 가까웠다. 슈만의 음악이 훗날 정신착란으로 발전될 정도의 무한한 환상성에 뿌리를 두었다면 브람스의 음악은 보다 순수한 이성이 그 원천이었다.

나는 상스러운 놈이지만 내 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는 생전 600여곡이나 곡을 남겼는데, 내가 가장 진심을 다해 좋아하는 모차르트 음악은 따로 있다. 바로 그의 종교음악들이다. 유작으로 남은 레퀴엠(진혼미사곡 k626)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덜 알려졌지만 이 음악들이야말로 실로 그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음악사에도 한 획을 그은 새로운 좌표였다.

수십번을 고쳐 쓴 흔적이 역력한 베토벤의 악보와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마치 누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적기만 한 것 같은 그의 악보. 지운 흔적 한 번 없이 써내려간 그것들을 보노라면 흡사 인간세계 저 너머엔 분명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에겐 너무 어려운 사람 프란츠 슈베르트

왕년의 최고 스타 리스트.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못 칠 줄 알았던 초절기교의 곡들을 200년 후 대한민국의 입시생들이 눈 감고도 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너무 쓸데없이 어렵다며 연주를 거절당했던 차이콥스키의 협주곡 1.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3번도 이제는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의 십팔번이 된 지 오래다.

가곡의 왕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는 다작의 왕이었다. 650곡이 넘는 가곡 외에도 미사곡, 극음악, 교향곡, 관현악곡, 실내악곡, 피아노곡 모두 합쳐 800곡에 달하는 곡을 쏟아냈다. 그처럼 방대한 양의 작품을 그토록 다양한 종류로 써낸 사람은 바흐 이래 슈베르틑 한 사람뿐이다. 서른둘에 박명한 그가 마흔만 넘겼어도 바흐의 작품수 1000곡을 훌쩍 넘겼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최고급 재료에 걸맞게 최고급 기계로 짜낸 주스에 비유할 만한 것이 모차르트 음악이라 한다면, 그에 비해 슈베르트의 음악은 직접 손으로 짠 주스라고나 할까?

아직까지는 슈베르트를 연주하며 손이 꼬이지 않는다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를 단 한명도 보지 못했다. 스케일은 불규칙해서 도저히 손에 익지 않고, 화성 전개마저 엉뚱하기 그지없어 머리로도 익혀지지 않는 이 곡들의 문제는, 전혀 다른 듣는 이의 사정, 떠오르는 시상을 그대로 악보에 옮긴 뿐인 그의 음악이 어렵게 들릴리 만무하다.

하나뿐인 고향에 보내는 마지막 인사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1917년 혁명은 러시아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개개인의 삶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남자도 그 희생양 중에 한명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는 소수의 부르조아였지만 하루아침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 이야기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인생은 딱 반으로 나뉜다. 1873년생인 그가 피아노협주곡 1번을 작곡한 것이 1890년이니, 그로부터 이때까지 러시아인으로서의 산 삶이 1, 미국 망명후 1943년에 숨을 거두기까지의 삶이 2막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대부분 1막의 모습이다. 그의 일새의 히트작은 모두 러시아인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이다.

차가운 불인지, 뜨거운 얼음인지, 음마다 알알이 아이러니를 담아 넣은 1960년대 말의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집은 언어로 불가능한 표현을 음악이 어떻게 대체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예술의 성역이라 하겠다.

챕터 3 내 인생의 영감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냉전이 절정이더 1958, 자국 문화의 위대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소련이 창설한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큐르. 여기서 미국 출신의 밴 클라이번이 1등을 차지해버린 일은, 센세이션 이상의 사건이었다. 적국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차 있던 관중들은 만면에 미소를 띤 큰 키의 금발 텍사스 청년이 무대로 입장하자 단번에 무장 해제되었다.

같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실내악이나 협주곡을 듣는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물론 제일 좋아하는 교향곡은 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9D944. 2악장을 들으면 어느 순간부터 앞이 안보이는 기분이 든다. 내가 처음 제대로 빠진 슈베르트의 기악곡은 아마도 피아노 소나타 D960이였을 것이다.

우울할땐 아예 슬픈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고 싶은 심리가 있다던데 나는 그런 심리로 대신 음악을 찾는다. 심지어 그럴 때 듣는 음악들을 컴퓨터 속 폴더 하나에 모두 모아 놓기까지 했다. 그 목록을 살짝 공개하자면...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1번중의 1악장 뱃노래,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22악장, 그리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32악장, 보로딘의 현약 사중주 2번중 3악장 노투르노,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 드뷔시의 렌토보다 느리게, 쇼팽의 유작 왈츠 18Eb...

또한, 언제 들어도 기분이 나아지기에 장시간 여행 중에 특히 많이 듣는 음악은 거슈원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다.

챕터4 우리 시대의 음악

이 세계는 당연히 그 기준조차 없다. 너무 모호하다 보니 0점에서 가산점을 하나씩 붙여 점수를 완성시키기보다는 100점에서 하나씩 감점을 해서 마지막 남은 점수를 세는 편이 쉽다. 그래서 종종 그 누구의 비위도 건드리지 않은 가장 안전한 연주를 한 사람이 우승자가 되는 것이다. 콩쿠르 우승자와 예술성은 거리가 멀다는 통설이 여기서 나온다. 이렇게 모호한 그것, 예술을 가지고 경쟁을 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일진대 그 과정 자체도 이렇게 아이러니하니, 여러모로 음악 하는 게 쉽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 것 같다.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의 이름은 프레데릭 쇼팽이다. 한 나라의 수도의 공항에 음악가의 이름을 따온 경우는 흔치 않다. 오죽 나라의 자랑이어야...그런데, 이 쇼팽도 사실은 아버지가 프랑스 사람이었다. 심지어 쇼팽은 20살에 고향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로 간 뒤로 죽을때까지 거기서 살았다. 거의 모든 작품에 고국에 대한 그림움을 절절히 묻어내면서도, 실은 그리 멀지도 않은 고향에 단 한번도 돌아오지 않은 쇼팽....그러니, 그는 되레 프랑스에 가깝지 않았을까?

19세기 초반 여전히 음악의 수도로 그 위용을 자랑하던 오스트리아 빈은 자기내 음악이 최고라고 자부하는 배타적 성격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당신 빈 음악계의 최고 거장 베토벤, 그의 뒤를 이어 낭만주의 시대의 빈을 주름잡은 브람스. 이 둘은 모두 고사한 빈 시민들이 촌뜨기라 놀려대던 독일인들이었다.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열리는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는 명실상부 세계 초고 권위의 바이올린 콩쿠르다. 그런데 20149월 열린 이 콩쿠르의 결선에 무려 한국인 5명이 올라가는 사건이 발생헀다. 이 결선 무대로 말할 것 같으면 수백 명의 지원자 중 단 6명 바이올리니스트에게만 허락된 무대다. 전번 대회인 2010년 대회에서 콩쿠르 사상 30년 만에 한국인 둘이 우승과 준우승을 휩쓰는 쾌거를 이룩한 지 불과 4년 만에, 이제는 아예 대회가 한국인에게 점령당해 버린 것이다.

2010년 우승 클라라 주미강, 2014년 우승 조진주

여기 몇 년 전까지 국제 콩쿠르를 휩쓸고 다니던 또 다른 친구의 회고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콩쿠르를 나가야 하는데 딱 한부분이 죽어도 안되는 거예요. 날마다 500번씩 연습을 해도 레슨만 가면 꼭 틀리는게 너무 화가 나 그 부분을 매일, ᄄᆞᆨ 1000번씩 연습했어요. 그랬더니 정말 콩쿠르에서 안 틀리는거 있죠....‘

나의 감상

난 개인적으로 손열음씨 연주가 참 좋다. 그런 그녀가 책을 냈다고 하니, 바로 서점에서 사게 되었다. 피아노에 대해서 그리고, 피아노연주에 대해서, 그리고 피아니스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었다.

또한, 그녀가 즐겨듣는 음악도 나도 곧 들어볼 생각이다.

쉽지 많은 않다고 생각되는 피아노가, 피아니스트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암보에 대해서 말한 부분 (, 머리, , 그리고 마음)에 많이 공감한다. 이제 나도 피아노 암보를 도전해보는 입장에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하노버에서_온_음악편지 (손열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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