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 : 중독의 심리학
◉ 저 자 : 크레이크 네켄
◉ 분 류 : 자기계발
◉ 출판사 : 웅진 지식하우스
◉ 출간일 : 2008-07-30
◉ 읽은기간 : 2008년 11월
◉ 분 량 : 220쪽
< 책 소 개>
20여 년간 중독치료 분야에 종사해 온 지은이가 모든 중독은 공통된 특징이 있으며 그 회복 또한 같은 과정을 갖게 된다고 얘기한다. 중독자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생활해온 그는 중독을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광범위하고 피해가 큰 질환”으로 정의한다.
중독은 알코올이나 기타 향정신성 약물과 연관된 아주 제한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회가 다각화됨에 따라 범위가 확장되어 많은 사람들이 각종 중독으로 인해 정서적인 고립, 수치심, 절망 속에서 산다. 흔히 중독은 의지력이 부족하거나 세상을 대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빠지는 것으로 인식해 왔으나 중독이라는 질환은 인간의 내면에서 시작되고 깊숙한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에 쉽게 거부할 수 없다.
<저자 소개>
크레이그 네켄 - 사회복지석사학위, 임상사회복지사 자격, 결혼 및 가족치료사 자격을 소지했으며 중독치료분야의 전문가다. 중독과 회복 분야에서 20여 년간 일해온 경력을 바탕으로 2008년 현재 미네소타의 세인트폴에서 심리치료소를 운영한다.
오혜경 - 이화여대 사회학과와 서울대 심리학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현재 번역가들의 모임인 '바른번역' 회원이며 독자와의 만남공간 왓북 운영진으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나이 듦의 기쁨>, <죽음과 함께 춤을>, <슈퍼내니>, <오디세우스 전기> 등이 있다.
<내 용>
1부 치명적인 유혹, 중독 (중독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자주 사용될 “실행”이라는 용어는, 중독자가 중독 행동이나 중독적인 강박관념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섹스 중독자가 매춘부를 만날 것 같은 거리를 배회하는 행동, 강박적인 도박 중독자가 경마신문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행동 등을 말한다. 무엇보다도 중독자는 이 “실행”을 통해서 자신이 통제한다는 착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피하고 싶은 문제, 고통, 좌절, 기억 등이 있다. 때로는 우리들 누구나 이러한 것들을 피하기 위해서 물질이나 행동을 이용한다. 그렇지만, 중독은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그 사람이 물질이나 행동에 걷잡을 수 없이 의존하고 삶을 정서적으로 회피하는 상태에 갇히게 만든다. 중독자는 삶의 문제들을 계속 미루는 방법으로 자신을 보살피려 한다. 그렇지만, 물질이나 행동 등의 중독적인 방식으로 책임과 현실을 회피하는 것은 자기를 보살피기에는 효과가 없는 방법이다. “실행”으로 얻는 기분변화는 보살핌을 받는다는 착각을 일으킬 뿐이다.
중독이라는 질환은 인간의 아주 깊은 내면에서 시작되며, 그 사람의 고통은 정서적인 수준에서 일어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친밀함은 논리적으로 평가되지 않는 정서적 체험이다. 중독은 중독자가 친밀함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물질이나 행동과 맺는 정서적인 관계다. 중독은 논리적인 진행과정을 따르지만, 이러한 진행은 지적인 논리가 아니라 내가 정서적인 논리라고 부르는 논리에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다. 정서적인 논리는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며, 지금 당장 그것을 원한다”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정서적인 욕구는 종종 아주 긴급하고 강박적으로 느껴진다. 정서적인 논리는 비록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가장 유익한 일은 아닐지라도, 이러한 급박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강박전인 도박사가 자기는 이번 주에는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불편해지자 기분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경마신문을 훑어본다. 아직까지는 이번 주에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에게 이르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경마신문을 훑어보다가 그는 확실한 건수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자신의 정서적인 논리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싸우기 시작한다. 그는 결국 자신의 충동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중독에는 정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정서적인 긴장을 해소시키려는 뿌리깊은 욕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붙잡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스스로를 설득시키고 난 후에 굴복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리가 보통 물질이나 행동과 맺는 관계는 종종 ‘편의에 따라 맺는 관계’다. 즉, 우리가 삶을 더 쉽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편의에 따라 물질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독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정서적이고 친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하면서 물질이나 행동이 그 사람에게 점점 더 중요해진다. 결국 그것은 중독자에게 가장 중요한 정서적 관계로 자리 잡는다. 그들은 기분 변화를 체험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서적인 욕구가 충족되었다고 믿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다.
사람이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서 물질이나 행동을 찾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 대상과 중독관계를 형성하는 기초를 쌓는 것이다. 중독은 물질이나 행동을 대상으로 애정과 신뢰를 쏟는 병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음식, 도박, 약물은 새로운 기능을 하게 된다. 즉, 중독자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행동이나 물질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다른 사람, 자신, 공동체, 보다 높은 존재와 두루 친밀한 유대를 맺음으로써 정서적이 욕구와 친밀함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정상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중독자가 이러한 용도로 물질이나 행동과 맺는 관계는 병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삶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도 친밀함을 얻기 위한 정상적인 방법들 중의 하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해서 그리고 내면의 자신에 다가가려고 노력함으로써 자신을 양육한다. 그런데, 중독에서 무엇엔가 다가가려는 행동은 거의 전적으로 내면으로 움추러드는 행동일 뿐이다. 중독은 사람의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중독자가 중독적인 방식으로 몰두하거나 행동을 할 때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중독이 오래 진행될 수록 그 사람은 스스로가 다른 사람과 의미있는 관계를 맺을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중독은 삶을 무척 외롭게 하고 고립시키며, 그럼으로써 중독자가 중독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를 더 많이 느끼게 한다. 보통 사람들은 상처를 입으면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서 배우자, 친한 친구, 영적인 믿음을 향하지만 중독자는 중독에 의존한다. 중독자는 중독행동으로 기분이 변화되면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중독자는 어떤 물질이나 행동에 중독됨으로써 생겨나는 기분의 변화가 일정하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을 신뢰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중독의 유혹적인 면이다. 즉, 중독자는 물질,행동에 몰두하면 욕구가 충족된다는 거짓 약속과 거짓 충족감, 예측 가능한 기분의 변화를 신뢰하고 의존할 뿐이다.
중독자가 대상이나 행위와 맺는 중독 관계가 그토록 매혹적인 이유는 그것이 기분을 변화시켜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은 언제나 효과가 있다. 그리고 또한, 확실하게 보장까지 되어 있다. 어떠한 인간관계도 그 정도 확실하게 보장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내 친구 한사람은 중독의 유혹을 잘 설명해주는 액자를 벽에 걸어 놓았다. “타인을 속이는 것은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을 속이는 것은 치명적이다”
2부 중독의 3단계
1단계: 내면 깊숙한 곳에서 변화가 시작되다
사람들은 지원, 보살핌, 안내, 사랑, 정서적, 영적인 성장을 구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자연스러운 관계들 - 즉, 가족과 친구, 보다 높은 영적 존재, 자아, 공동체 - 과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사람이 이러한 네 분류의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다른 관계에 의지하게 된다. 그럴 때 중독이 개입된다. 중독은 사람의 내면에서 물질이나 행동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중독 관계는 사람이 불쾌한 느낌이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위안을 받는다는 착각을 추구할 때 시작된다. 이렇게 회피를 함으로써 보살핌을 받으려는 방법은 정서적인 욕구를 다루는 자연스럽지 못한 방식이다. 이 시점에서 중독자는 자연스러운 관계들과 그 관계가 제공하는 위안을 포기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관계를 중독적인 관계로 대체한다. 중독자는 불편함을 느낄 때 그것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과 연결되라는 신호가 아니라 ‘실행’하라는 신호를 받아들인다.
바로, 중독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즉,
괴로워진다 => 실행을 할 욕구를 느낀다. => 실행을 하고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한다 => 실행을 했기 때문에 괴로워진다 => 무한반복
마른 주정뱅이(dry drunk)란 약물남용, 도박, 성행위 등을 절제하고는 있지만 삶이 중독 성격에 지배당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마른 주정뱅이들은 중독 행동을 절제하면서도 여전히 중독과정을 믿으며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연스러운 관계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
중독자가 치러야 할 최초의 대가는 바로 “수치심”이다. 수치심은 중독자에게 의식되기도 하지만 대게는 무의식에서 일어난다. 중독자가 중독을 통해서 위안을 구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는 점점 더 수치심을 느끼고 중독적인 관계를 자신에게 정당화시킬 필요를 느낀다. 수치심은 자기에 대한 존경심, 자존감, 자신감, 스스로 기율을 세우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능력, 자기가 중요한 존재라는 인식, 자기 사랑을 앗아간다. 처음에는 수치심이 그냥 전반적인 불편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중독된 사람이 중독 관계 때문에 치러야 할 최초의 대가다.
중독은 중독된 사람이 그토록 피하고자 하는 바로 그 대상인 고통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중독 과정은 고통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중독관계가 지속되기를 원하는 모순적인 욕구도 만들어낸다.
중독자는 마치 아이처럼 기분을 좋게 해주는 일이라면 그냥 한다. 그들은 탐색을 하다가 논리가 아니라, 존재의 가장 핵심에서 나오는 감정적인 충동을 따른다. 이 단계에서 그 사람은 불편하고 불안해지며 죄책감을 느 낄지도 모른다. 이것은 내부에서 보내는 경고신호지만 이러한 경고 신호를 무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중독과정의 일부분이다.
현재 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실행을 할 생각만 하면 미묘한 기분 변화가 일어난다. 그럴때마다 그는 통제력을 조금씩 잃으며, 그렇게 잃은 통제력은 중독에게로 넘어간다. 우리는 중독과정에서 자아가 어떻게 서서히 상실되는지, 그리고 내면의 중독자가 어떻게 점점 더 강하게 장악하는지 보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아가 축소되면서 중독 성격이 강해지는 것이다.
중독과정에서는 언제나 자아와 내면의 중독자 사이의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예외 없이 내면의 중독자가 이긴다. 바로 통제력이 상실되는 것이다. 따라서, 회복과정에서 있는 사람들은 바로 복종을 배운다. 자신이 이병을 정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면서부터 그 사람은 싸우기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힘을 발견하는 것이다.
중독관계는 사람을 내면에 집중하게 만들고 고립을 부르며, 실행을 함으로써 기분을 변화시켜주기 때문에 유지된다. 이러한 관계는 수치심을 증가시키며 부정이라는 방어기제를 더 빈번히 사용하게 만든다. 결국,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아를 밀쳐버리고 내면에 자리 잡은 중독자는 주위 사람들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실행을 통해서 황홀감에 이르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내면의 중독자는 자아도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점점 고립되게 되는 것이다.
중독자는 서서히 그들이 생각하는 패턴도 변화된다. 불편함을 일으키는 모든 느낌은 실행하라는 신호가 된다. 불편함을 알리는 내면의 신호는 곧 실행하라는 내면의 단서가 된다. 예를 들어서 섹스 중독자가 슬픔을 느끼면 내면의 중독자는 이러한 슬픔이 실제 느낌이 아니라 섹스를 하라는 단서라고 해석한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의 느낌은 정신적인 강박관념이 된다. 1단계에서 그 사람은 실제적인 감각을 이런 식으로 왜곡시키는 해석을 거듭 선택한다.
중독된 사람은 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느낌을 중독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그 사람은 자신이 통제한다는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독자는 완전하게 전적으로 통제하면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열심히 통제를 추구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불완전하고 무력한 존재이므로, 통제한다는 착각을 추구하는 것은 곧 그러한 인간 존재의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중독자는 그렇게 인간성 대신에 완벽함을 추구한다. 중독자는 자신이 무력하고 주체할 수 없고 약하다고 느낄 때면 중독적인 선택을 할 것이다. 중독적인 선택은 적어도 잠시 동아느 자신이 통제력을 지녔으며 거의 완벽하다고 느끼게 해 준다. 비록 착각일지라도 통제한다는 느낌을 얻고 싶은 유혹은 아주 강하다. 반면 인간이 무력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란 정말로 어렵다.
때때로 그 사람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었으며 중독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는 서서히 형성되고 있는 병적인 관계에 대해서 내면에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의문 때문에 중독자 특유의 중독적인 사고방식이 발달하는데, 나는 그것을 중독논리가로 부르겠다. 중독논리는 내면에서 막 자리 잡고 있는 미묘한 변화를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면서 발전한다. 중독에 빠진 사람은 중독 논리를 발전시키면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항하는 방법을 발견한다. 중독 논리는 진실이 아니라 중독관계에 대한 착각에 기초하고 있다. 중독논리는 중독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중독된 사람은 문제가 다른데 있다고 믿거나 너무나 심각해서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1단계에서는 실행을 해서 기분의 변화를 체험하면 즐거움, 흥분, 새로운 아이디어, 자극이 생겨난다. 그러나 2단계로 접어들면 실행에 따르는 매혹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물질이나 행동은 언제나 기분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힘을 보존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로 인한 즐거움은 상당부분 사라지고 실행은 그저 현상유지적인 성격을 띄게 된다. 즉, 그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중독과정이 일으키는 고통과 좌절을 은폐하고 도피가기 위한 목적에서 점점 더 자주 실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중독이 진행되면서 기만체계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경직된다. 기만체계는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것은 첫째, 내면의 중독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자신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둘째, 중독적인 관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사람들을 차단하는 것이다.
결국, 고립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회복의 첫 단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중독으로부터 발달된 이중성격을 수용하는 것이다. 중독에 들어 있는 자아와 중독자라는 두 면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람들은 세상으로 열리는 문을 만들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수치심에서 해방된다. 결론은, 중독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회복의 기초가 된다. 자신의 성격에 중독자의 면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승인을 구하고, 그 다음 중독 논리를 이해하고 귀를 기울임으로써 중독자는 회복의 길로 들어산다. 회복 프로그램은 자아에게 전적으로 정직해지고 내면의 중독자가 아니라 자아를 믿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강조한다.
2단계: 삶의 양식이 변하다
2단계로 접어들면서, 기분변화나 물질이나 행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중독성격에 의존하게 된다. 중독적인 신념체계가 그 사람의 근본을 이루며 생활방식으로 굳어진다.
그는, 이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며, 다른 사람을 탓하기 시작하며, 자신의 행동을 의식(儀式)으로 굳히기 시작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움츠러들기 시작하며, 중독자는 정서적 ․ 정신적으로 움츠러들어갈 비밀스러운 세계가 있을 뿐 아니라 중독적인 양식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물리적으로도 비밀스러운 세계를 가진다.
중독자가 실행을 하고 자신의 행동을 변명할때마다 그들은 의도하지 않은 채 중독에 더욱 전념하게 된다. 중독된 사람이 실행을 할 때마다 그들은 그러한 행동을 지원받기 위해서 정서적, 정신적으로 중독 성격으로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면으로 향하는 움직임은 그를 주의의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고립시켜며 점점 더 인강성을 잃게 만든다. 이러한 현상은 외로움과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유대를 맺고 싶은 갈망을 만들어내며 그러한 갈망은 실행을 하라는 또 다른 내면의 신호가 되어, 중독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중독자들은 나름대로 선호하는 의식(儀式)이 있다. 퇴근해서 집으로 출발한 한 섹스 중독자를 따라가 보자. 그는 한 가게에 들러서 포르노 잡지를 산다. 집에 도착하면 일단 술을 한잔 마신후 앉아서 천천히 잡지를 들춰본다. 두어잔 마시고 어느정도 흥분되면 자기가 실행할 때 입는 곳을 걸친다. 그리고 몇잔 더 마시기 위해서 집을 나서서 토플리스 바에 간다. 그 다음 그는 매춘부를 찾기 위해서 도시의 특정지역을 배회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흥정을 하면서 대화를 하지만 거기 있는 사람과 섹스까지 하지는 않는다. 그런 다음 성인용품점에 들러서 잡지들을 훑어본다. 집에 오는 길에 그는 단골 사우나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매춘부와 섹스를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수치심을 느끼고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는 한 달에 두세번씩 이런 의식을 실행한다. 이 의식에 포함된 각 절차는 바로 앞서 치른 절차와 연관되어 있으며,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서 그는 자신이 그 정도로 저질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길거리의 매춘부와는 섹스를 하지 않는다. 이렇게 그만의 독특한 중독 논리 때문에 의식에서의 그 부분은 그가 자신의 행동을 덜 수치스러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중독자는 실행을 하면서 느끼는 수치감으로 인해 또다른 종류의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만난다. 그러나 행동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내면의 긴장은 그 순간, 선택과 결정하는 순간에 해결된다.
예를 들어 섹스 중독자는 매일 밤 집으로 들어오는 동안 실행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내면에서 논쟁을 한다. 대개는 집에 안전하게 돌아오지만, 그가 첫 번째 포르노숖에 들러서 잡지를 사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내면의 중독자가 그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막상 결심하는 순간에는 자아와 내면의 중독자 사이에서 일어났던 갈등이 끝나기 때문에 편안해진다. 그는 자신의 중독에 굴복한 것이며 그때 느끼는 긴장의 완화와 평온함이 중독과정을 선택하도록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것은 부정적인 굴복이라고 부른다.
건강한 의식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 친구, 가족, 유익한 영적인 원리, 상부상조에 기초하고 있는 공동체에 묶어준다. 우리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려는 것이 중독 의식의 주목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에서 중독의식은 의식을 역행하는 의식이다. 건강한 의식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좋은 느낌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반면에 중독적인 의식은 자신에 대해서 얺짢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건강한 의식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연결시켜주지만, 중독의식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중독자라는 위험한 면에 연결시켜준다. 건강한 의식은 우리가 더 나은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지만, 중독의식은 관계를 파괴한다. 건강한 의식은 우리가 자신과 친구들에게 자부심을 느끼도록 도와주지만, 중독의식은 수치심을 일으킨다. 건강한 의식은 삶을 찬양하지만, 중독의식은 죽음을 추구한다.
중독적인 생활방식이 매력적인 한가지 이유는 자신이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중독자가 통제력을 추구할수록 결국 점점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물질과 행동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중독자가 통제를 더욱 강렬하게 추구하다가 통제력을 점점 더 상실하며 수치심이 증가될수록, 그는 점점 더 정서적으로 고립되고 엄청난 정서적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중독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하려면 2단계에 들어간 중독자는 자신의 에너지의 방향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 그는 더 많은 에너지를 중독과정에 쏟아 붓게 된다. 과거에 중요했던 활동이나 사람들은 이제 덜 중요해진다. 중독으로 고통 받는 사람은 이중생활을 하기가 버거워짐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는 포기를 해야 한다.
가족, 옛 친구, 취미에 쓰던 시간을 중독에 쓰기 위해서 따로 할애한다. 다른 사람과 자아를 보살피기 위해서 쏟았던 에너지를 이제 중독 관계를 유지하는 데 사용한다.
중독이 오래 진행될수록 그 사람은 점점 더 영적으로 고립된다. 이것이 중독에서 가장 무섭고도 슬픈 부분이다.
사람들이 중독과정의 시초에는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삶, 영혼과 자아를 보살피기 위한 방편으로 중독에 매달린다. 그러나, 회복 과정에 들어간 많은 중독자들은 자아, 영적인 각성, 그리고 다른 사람과 풍부하고 의미있는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되찾은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기 때문에 영혼의 회복과정에 단단히 매달린다.
3단계: 삶이 무너지다
중독이 심한 고통, 두려움, 수치심, 외로움과 분노를 일으키기 때문에 세 번째 단계가 이어진다.
3단계에 이르면 실행은 더 이상 별다른 쾌감을 주지 못한다. 몰두와 실행은 여전히 기분의 변화를 가져오지만 이쯤에 이르면 도망치기에는 너무나 고통이 강하다. 중독자는 실행하는 동안은 고통으로부터 잠시 멀어지는 것을 느끼지만 고통의 존재는 이제 거의 언제가 느껴진다.
중독된 사람은 정서적인 과부하를 받으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중독의 마술적인 면(도취,황홀감)은 그러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효력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실행은 점점 지루하고 판에 박힌 의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수 있다.
중독자는 아주 경직된 생활방식에 집착하며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중독은 무척 집중된 생활방식이며, 경직성이 중독자의 삶에 어느 정도의 편안함을 준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에는 익숙한 의식과 물질에서 평화와 안정감을 느낀다. 중독된 사람은 중독 행동의 실행을 무척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실행할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는 실행을 통해서 안정감을 찾아내는 데 아주 능숙하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처하면 얼른 물러나서 실행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단계에서 중독자는 중독적인 생활방식에 보탬이 되는 사람과 아이디어만을 대하고 다른 모든 것은 그냥 흘러가게 된다. 그는 철저히 고립으로 가는 것이다.
어찌됐는 중독자의 실행의식은 대게 아무도 없는 곳이나 아른 중독자들이 있는 곳에서만 치르는 고독한 행독이다.
그러나, 내면의 중독자는 혼자 있고 싶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아는 혼자 남겨지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3부 회복이 시작되다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보다 중독을 더 증오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중독..중독자 혼자서는 중독과정을 깨뜨릴 수 없다.
회복되려면 중독자는 중독적인 생활방식을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서서히 교체하면서 새로운 생활방식을 배워나가야 한다. 내면의 중독자의 세게는 안으로 향하는 흐름에 기초하고 있다. 회복되려면 그 사람은 바깥 세상에 다가가고 외부로의 흐름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인간은 크게 3가지의 욕구를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힘의 욕구(drive for power), 쾌락의 욕구(drive for pleasure), 의미를 추구하려는 욕구(drive for meaning)이다.
우리는 힘만을 추구하면 두려움을 느끼고, 쾌락만을 추구하면 상심하게 된다. 불행히도, 중독에 취약한 많은 사람들은 의미를 제외한 다른 것들만 추구하는 상태에 갇혀 버린다.
<<쾌락의 욕구>>
쾌락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문을 열어준다. 쾌락은 우리가 신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첫 번째 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키스를 하거나 석양을 바라보는 등 즐거움이 중심이 된 모든 행동은 초월적일 수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은행의 잔고, 범죄율, 최근의 비행기 추락사고를 잊지 않는가..
즐거운 체험은 우리에게 잠깐이나마 영원함을 맛보게 해준다. 우리는 영원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 근심 없는 평화로운 영역에 잠시 정지한 채 머문다는 것이 어떤 맛인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즐거운 감각은 비록 초월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지속되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쾌락 중심적이며 중독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쾌락을 추구하고 숭배하는 것이 결국은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체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파괴시킨다는 사실을 깨단지 못한다.
“비통함”은 쾌락에 헌신하는 삶으로부터 따르는 중요한 정서적인 부산물이다. 반드시 사라져서 우리를 공허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어떤 것에 영원히 집착한다면 어쩔 수 없이 비통에 빠지고 결국은 권태롭고 우울해 질 것이다.
<<의미를 추구하는 욕구>>
의미 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완전하게 발달시키려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또한, 의미 중심적인 사람은 자기 안에 다른 본능들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또한, 의미중심적인 사람은 물질이나 행동에 집착해서 순간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가려고 애쓴다.
우리의 중독과정에서 나타나는 순환들
고통=>실행=>순각적인 쾌락=>더 큰 고통 또는 통제력,정의감,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느낌, 더 많은 힘의 필요성이 되풀이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재생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재생과정은 정직함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회복 중인 중독자는 자신이 힘과 쾌락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속에서 살고 있다고는 위험성을 정직하고 진지하게 인정해야 한다. 중독자는 자신의 중독성격을 인정하고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회복중인 중독자는 정직함을 지키는 데에 삶을 헌신함으로써 미묘하게 중독으로 다시 빠져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위안해주고 보살펴주며 자신이 중요하고 자랑스러운 존재라고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관계를 갈망한다. 우리가 일단 건강한 관계를 정립하면 우리는 그 안에서 안전하고 서로 존중한다는 느낌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중독자는 이런 건강한 관계를 맺는 일에 서투르다.
회복과정에서 주의할 일은
중독자들은 자기가 행하는 특정한 행동이나 의식으로부터 금욕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어떤 중독자는 금욕을 너무나 느슨하게 정의하기 때문에 중독이 재발한다. 예를 들엇, 어떤 섹스 중독자가 매춘부를 찾아가는 것은 안되지만 성인영화를 보는 것은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이를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포르노도 매춘부를 찾아가는 것만큼 중독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4부 가정환경이 중독자를 만든다
중독과정에서 자란 자녀가 자신의 가정을 꾸리게 되었을 때, 그들은 닮은 꼴을 찾는 경향이 있다. 상호중독자가 중독자와 결혼하거나 중독자가 상호중독자와 결혼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중독의 대물림이 이루어진다. 가족들은 중독의 언어를 배운다. 그래서 가족 밖에서 관계를 형성해야 할 때가 오면 그들은 같은 언어를 말하는 사람을 구한다. 이러한 선택적인 탐색은 의식하는 수준이 아니라 훨씬 더 깊은 정서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좌절감을 느끼는 내담자들이 “왜 나는 자꾸 중독자하고만 엮이는 거죠?”라고 물을 때가 종종 있다. “당신들이 같은 언어를 말하기 때문이죠”가 그 대답이다.
<< 나의 감상 >>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잡게 된 책...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중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고, 2부는 그러한 중독이 발전되는 과정, 3부는 중독으로부터 회복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중독에 대해서 그만의 독특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중독이란, 사람이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서 물질이나 행동을 대상으로 애정과 신뢰를 쏟는 병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독자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통제하기 위해서 중독과정에 빠져든다고 말한다. 중독자는 “실행”을 통해서 자신이 삶을 통제한다는 착각을 하고, “실행”을 통해서 보살핌과 위안을 받는다는 착각을 하게되고, 이렇게 기분이 변화되면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었다고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독의 가장 큰 폐해는 무엇일까? 저자는 중독자가 가장 최초로 치러야 할 대가는 수치심이라고 말하면서, 중독자가 가장 치루어야 할 큰 댓가는 바로 고립이라고 말한다.
우리 인간들은 다른 사람을 향해서, 그리고 내면의 자신에게 다가갈려고 노력함으로서 자신을 양육한다. 그런데, 중독은 무엇엔가 다가가려는 행동은 거의 전적으로 내면으로 움추러드는 행동일 뿐이고, 중독은 사람의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중독자가 중독적인 방식으로 몰두하는 행동을 할때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점점 더 중독자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중독이 진행될수록 중독자는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며, 이러한 외로움은 누군가에게 다가서서 유대를 맺고 싶은 갈망을 만들어내며, 그러한 갈망은 실행을 하라는 또 다른 내면의 신호가 되어, 중독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중독이 심화될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중독과정에 쏟아 붓게 되고, 과거에 중요했던 활동이나 사람들은 이제 덜 중요해지며, 중독자는 이중생활을 하기가 버거워짐을 느껴 무엇인가를 포기하게 된다. 즉, 그는 가족, 옛 친구, 취미에 쓰던 시간을 중독에 쓰기 위해서 따로 할애하며, 다른 사람과 자아를 보살피기 위해서 쏟았던 에너지를 이제는 중독관계를 유지하는데 사용하게 되면서, 철저하게 고립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독의 가장 큰 폐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독자의 회복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러한 중독적인 생활방식을 스스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서서히 교체하면서, 새로운 생활방식을 배워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중독자는 자신이 중독에 대한 고립의 위험성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을 위안해 주고 보살펴주는 대상을 물질이나 행동의 실행에서 찾는 대신, 다른 개방적인 관계에서 찾음으로써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중독자가 치루어야 할 첫 번째 댓가는 수치심이고, 중독자가 치를 가장 무서운 댓가는 고립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중독의 가장 큰 폐해는 바로 고립인 것이다. 스스로 고통을 삶을 통제하기 위해서 중독에 빠지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자신도 모르게 고립되어 가고, 그러한 외로움을 탈피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다시 중독에 빠지는 것이다.
중독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다. 난 그동안 중독이란 몸과 마음을 망쳐놓은 것이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했는데, 중독의 피해는 단지 몸을 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큰 중독의 무서움은 철저하게 고립되어 간다는 것이다.
결국은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 오히려 삶을 통제할려고 중독에 더 빠지기 쉽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책이다.......
'데이지 추천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내가 춤추면 코끼리도 춤춘다- 저자 동영상 (0) | 2009.03.07 |
---|---|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0) | 2009.02.21 |
0.2평의 기적 - 완전운동 108배로 마음까지 다스린다. (0) | 2008.11.15 |
호모 부커스 (이권우) - 독서이유와 독서방법에 대하여 (0) | 2008.09.14 |
거침없이 걸어라(비소설) - 유인촌 (0) | 2008.07.18 |